“인생 두 번의 비상계엄… 1979년엔 주인공 2024년엔 주변인”

신재우 기자 2025. 7. 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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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중심에 있던 혁명가는 이제 스스로를 '주변인'이라고 칭한다.

1979년 비상계엄 당시 '서울대 무림사건'의 주동자로 옥살이까지 했던 김명인 문학평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마르크스의 책 속 구절처럼 그는 1979년 비상계엄에 울고, 2024년 비로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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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의 계엄령 사이에서’ 출간 김명인 문학평론가
“서울대 무림사건 주도 옥살이
과거에는 나도 권력자도 과격”
최근 경기 파주에서 만난 김명인 문학평론가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광장의 중심에 있던 혁명가는 이제 스스로를 ‘주변인’이라고 칭한다. 1979년 비상계엄 당시 ‘서울대 무림사건’의 주동자로 옥살이까지 했던 김명인 문학평론가. 그리고 45년이 흐른 뒤 두 번째 계엄 앞에서 그는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선 이들을 지켜봤다. 혁명의 중심에서 멀어지며 세월의 무상함과 쓸쓸함을 느꼈을까. 아니다.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마르크스의 책 속 구절처럼 그는 1979년 비상계엄에 울고, 2024년 비로소 웃었다. 최근 경기 파주 출판단지에서 만난 예순일곱 살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이 도대체 어떻게 끝나나 좀 보자. 인생 서서히 정리해가는 늘그막에 그렇지 않아도 따분하던 차에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네.”

지난날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독재정권에 맞섰던 그가 “한 사람의 시민의 자리”에 내려와 웃을 수 있는 배경에는 ‘성찰’이 있다. 그 때문에 그가 최근 출간한 ‘두 번의 계엄령 사이에서’(돌베개) 또한 회고록이 아닌 ‘회성록’(回省錄)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40년을 돌아본다. “1980년에는 나도, 그리고 우리도 과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공안당국이나 전두환 정권도 과했죠. 민주화운동을 하면 되는 건데 거기에 민중변혁이니 민족혁명이니 하는 온갖 종류의 채색을 했으니. 그때는 그래야 할 것 같은 정동이 있었어요.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싸웠고 내가 마치 적한테 포로로 잡힌 것 같은 느낌이었죠.”

본래 이번 책의 제목은 ‘멜랑콜리아 로맨티카’, 즉 낭만적 우울이 될 뻔했다. 1980년 서울대에서 펼친 반정부 시위 사건으로 그를 포함해 관련자는 실형을 살았다. 혁명은 실패했다. 이후 정치권력은 누가 가져가든 타락했다. 그때부터 이어졌던 낭만적 우울의 상태는 최근 시민들이 모여 지켜낸 민주주의 앞에서 변화했다. 그리고 변화한 광장의 주체, ‘응원봉 연대’를 그는 우리 시대의 희망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제 전통적인 의미의 혁명은 의미가 없어졌다. 이해관계가 복잡해진 신자유주의에 체제에서 연대는 어려워 보였다”며 “그런데 응원봉 집회에 참여한 2030 여성들이 트랙터 상경 농성을 도와주는 것을 보니 그들은 소수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 내가 연대하면 그들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일종의 호혜적인 연대를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의 삶의 또 다른 한 축인 문학평론가로서의 삶도 성찰의 연속이었다. 고은 시인의 미투 사건과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 등 문단권력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도 그는 거침없이 비판을 쏟아냈다. 그 배경에는 여전히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정동인 ‘부끄러움’이 있다. 안 그래도 삶은 부끄러운데 어디 가서 더 이상 낯 뜨거운 일은 만들지 말자는 일종의 신념이다. 그는 “고은 시인은 내 주례사까지 했던 오랜 선배이고 선생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칼같이 정리해야 한다”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을 해야지 못 견딘다. 이건 평론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밝혔다.

지난해 인하대에서의 교수 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이제는 완전한 ‘시민’으로의 여생을 준비 중이다. 김 평론가는 “그간 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득권으로서 지배의 언어를 사용했다”며 “이제는 저항의 언어, 여성의 언어, 소수자의 언어를 사용해보려고 한다. 우선은 말하기보다는 잘 들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하지 않은 것, 딱딱하지 않은 것, 상처 주지 않는 것들이 좋은 것 같아요. 강력한 논리의 세계에 있다 보니 그런 것과 거리가 멀었는데 이제는 좀 내려놔야죠.” 부드러운 마지막 말 한마디를 던진 그는 웃고 있었다.

신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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