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오크라 듬뿍 넣은 ‘검보’…루이 암스트롱의 ‘솔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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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과학(SF) 영화 '인터스텔라'(2014)에는 기후변화로 밀농사를 할 수 없게 되자 오크라를 재배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 같은 노래로 친숙한 재즈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도 오크라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고향 음식이라 할 수 있는 뉴올리언스의 케이준 요리는 루이 암스트롱에게 음악과 삶의 자양분이 됐다.
이때 그가 사랑한 음식은 사치스러운 만찬이 아닌, 오크라를 듬뿍 넣은 검보처럼 수수한 고향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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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원산의 아열대 채소
미국 흑인문화 상징적 식재료
매운맛 없고 음식에 끈기 더해
고기·채소와 함께 끓인 스튜로
성공 후에도 ‘고향의 맛’ 즐겨

공상과학(SF) 영화 ‘인터스텔라’(2014)에는 기후변화로 밀농사를 할 수 없게 되자 오크라를 재배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낯선 작물이다보니 아마 관객 대부분은 ‘그게 뭐야?’ 했을지 모르겠다. ‘고독한 미식가’ 같은 일본 음식 드라마에 가끔 등장하는, 풋고추와 비슷한 채소라고 하면 어렴풋이 짐작이 갈 수도 있다.
여성의 손가락을 닮았다고 해서 ‘레이디핑거’라는 별명을 가진 오크라는 아프리카가 원산지다. 고추와 달리 매운맛은 없고, 단면은 별 모양인데 마즙처럼 끈적한 진액이 나온다. 이 생소한 채소는 뜻밖에도 대한민국 국화 무궁화와 친척이며, 무려 고대 이집트 때부터 식용돼온 유서 깊은 식재료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에선 지금도 각 지역 토속 요리에 자주 쓰이고, 노예선을 탄 흑인들이 미 대륙에 건너온 후 미국 남부에서도 솔푸드(soul food)로 사랑받고 있다.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 같은 노래로 친숙한 재즈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도 오크라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고향 음식이라 할 수 있는 뉴올리언스의 케이준 요리는 루이 암스트롱에게 음악과 삶의 자양분이 됐다.
미국 루이지애나주를 배경으로 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공주와 개구리’(2010)에는 루이 암스트롱을 모델로 한 악어 캐릭터 ‘루이스’가 등장한다. 여기서 여주인공 티아나가 만드는 요리가 바로 오크라를 넣은 스튜 ‘검보’다. 케이준 요리의 대표주자 검보에는 오크라가 들어가는 게 정석이다. 사실 ‘검보’라는 단어 자체가 아프리카에서 오크라를 가리키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검보를 만들 때는 우선 밀가루를 기름에 볶아 루를 만들고 고기·햄·갑각류와 셀러리·양파 같은 각종 채소를 넣어 푹 끓인다. 마무리 단계에 넣는 오크라는 검보에 걸쭉하게 점성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뉴올리언스 요리의 근본은 프랑스계 이민자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프랑스 요리처럼 다채로운 재료에 흑인의 솔푸드와 남미 전통음식을 활용한 독특한 식문화를 만들어냈다. 상류층이 먹던 크레올 요리에는 생크림이나 굴 같은 고급 재료가 들어가는 반면 케이준 요리는 쌀과 옥수수, 값싼 돼지기름을 사용했다. 선도가 떨어지는 고기나 해물의 잡내를 잡기 위해 카이엔 페퍼와 마늘 등 강한 양념을 써서 맵고 자극적인 맛을 냈다.
루이 암스트롱의 어린 시절은 마치 얼얼한 카이엔 페퍼처럼 ‘매운맛’이었을 것이다. 그는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절인 1901년에 태어났다. 노예해방이 이뤄진 지 반세기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다수 흑인은 빈곤과 차별에 시달리던 때였다. 부친이 집을 나가고 혼자 아이들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제대로 된 교육조차 시킬 수 없었다. 어린 소년 루이는 신문 배달, 잔반 청소, 석탄 배달 등 잡일로 돈을 벌어야 했다.
미시시피강을 오가는 증기선에서 재즈 공연을 시작한 루이는 훗날 거장으로 불릴 만큼 성장한 후에도 불우했던 시절의 기억 탓인지 식탐이 유독 많았다고 한다. 이때 그가 사랑한 음식은 사치스러운 만찬이 아닌, 오크라를 듬뿍 넣은 검보처럼 수수한 고향의 맛이었다.
1963년 서울 워커힐호텔 개관 기념 공연차 방한한 루이 암스트롱은 갓을 쓰고 곰방대를 문 사진을 남겼다. 이때 그는 당시 10대였던 가수 윤복희의 재능을 발견하고 유학을 권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식물이 먼 미 대륙까지 건너온 것처럼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에 담긴 솔(soul)은 오늘날까지 전세계 사람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전하고 있다.

정세진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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