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자유 위한 ‘착한 권력’ 있을까··· 방송 3법을 향한 질문들

7월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하는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되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재 11명(KBS), 9명(MBC·EBS)인 이사 수를 각각 15명, 13명으로 늘리고 이사 추천 권한을 국회와 시청자위원회, 방송사 임직원, 미디어 학회, 변호사 단체 등으로 확대한다. 이 외에도 공영방송 사장은 1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사장후보 국민추천위원회를 거쳐 특별다수제, 결선투표제로 선출한다. 또 공영방송과 보도전문채널에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만들도록 했다. 법이 시행되면 1987년 이후 38년 만에 공영방송 지배구조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민주당은 ‘7월 중 처리’를 예고하며 방송 3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치권 모두 야당 시절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지만 여당이 되면 소극적으로 바뀌었던 탓에 방송 3법은 십수 년째 공전했다. 민주당이 다수석이 된 윤석열 정부에서 두 차례 국회를 통과했지만 거부권에 가로막혔다. 이제서야 언론계 오랜 숙원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는 가운데, 기대만큼 우려도 짙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공영방송 장악 시도’라 반발하는 것 외에도 언론계에서 이견이 적잖게 표출된다. 방송 3법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오랜 언론 운동의 결실이 맺어질까, 또 다른 갈등의 전조가 될까.
이번 방송 3법 개정안의 핵심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을 다양한 주체가 맡도록 하는 데 있다. 정치적 독립을 위해서다. 그동안 공영방송 이사회는 관행적으로 여야가 7대 4(KBS), 6대 3(MBC·EBS) 비율로 ‘내 편’을 추천해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표적 감사’를 동원한 이사진 해임이 추진되고 잇따라 사장이 교체되는 등 공영방송 쟁탈전이 반복되었던 배경이다. 이러한 관행을 막기 위해 이사 추천 구조를 정치권 바깥으로 분산시키자는 것이 방송 3법의 골자다. 전체 이사진 가운데 국회 추천 비중이 40%(KBS), 38%(MBC·EBS)로, 21대 국회를 통과했던 법안(23%)보다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100%를 여야 정치권이 가져가는 현행 안보다 ‘진일보한 대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7월7일 민주당 주도로 법안이 통과되자 “결국 친민주당 인사들이 공영방송 이사회를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방송 3법이라는 겉포장만 달리했을 뿐 정권 입맛에 맞는 사장을 앉히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이번 법안에 따르면 KBS, MBC, EBS는 3개월 이내에 이사회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 사실상 법 개정을 통해 공영방송 임원을 교체하는 수순으로 가게 된다. 임기가 2027년 12월9일까지인 박장범 KBS 사장의 경우 교체 여부를 두고 갈등의 뇌관이 될 수 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이번 방송 3법이 ‘낙하산 사장’을 뽑으려는 의도라고 보긴 어렵다고 짚는다. 예측 불가능성 때문이다. “이사회부터 사장추천위원회까지 여러 장치가 있다. 이 법안대로라면 실제 어떤 인물이 공영방송 사장으로 선임될지 정말 예측하기가 어렵다.” 낙관적으로 전망해보자면 미디어 학회와 변호사 단체 등 정치권 바깥의 단체들이 합의를 통해 정파성이 덜한 중립지대 인사를 추천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을 연구해온 언론학자들은 오히려 이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우려를 표한다. 아무리 정치적 후견주의를 배제할 목적이라 하더라도 미디어 학회와 변호사 단체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부여하는 것이 정당한지를 두고 의문을 나타낸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공영방송 이사진 구성이 일거에 정치권과 단체들의 추천권 행사를 놓고 기회주의적 자리다툼, 최악의 정치 투쟁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결국 정치적 대립이 재현되고 반복될 수 있다.
또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심위) 사례처럼 악용될 가능성도 무시하기 어렵다. 류희림 전 방심위원장이 22대 총선 당시 선방심위를 구성하면서 신생 학회, 보수 단체 등에게 추천 권한을 주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아무리 섬세하게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설계한다고 해도 특정 세력이 맘먹고 제도를 남용하겠다고 나서면 애초 설계 의도를 간단하게 무력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공영방송 이사를 누가 어떻게 추천해야 독립성이 보장될까. ‘가보지 않은 길’을 앞두고 학계 의견은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 정치권 몫을 줄이고 다양한 주체로 분산해야 한다는 의견과 국민 대표성을 지닌 국회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그만큼 논쟁적인 이슈다. 충분한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민주당은 속도전을 선택했다. 7월1일 방송법 통합 대안을 공개한 지 엿새 만에 여당 단독으로 과방위를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SBS와 지역 민영방송사가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공백이 생겼다. 7월10일 언론노조 지역MBC 지부 16곳은 성명을 통해 “정치적 독립을 해야 하는 곳은 서울 사대문 안에만 존재하고 지역방송은 자유도 독립도 필요 없다는 것이냐”라고 비판했다.

숙의 과정 대신 속도전 선택한 이유
민주당은 왜 방송 3법을 서두를까. 과방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시사IN〉과 통화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사 추천 주체를 둘러싼 논란은 끝이 없어서 합의할 수 없다고 본다. 이미 20년 동안 논의해오지 않았나. 무엇보다 문재인 정권 때 방송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던 트라우마가 있다. 그 이후로 윤석열 정부에서 더 잔혹한 방송 장악을 경험해야 했다. 이 기억 때문에 ‘이러다 또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상당히 크다. 일단 법을 통과시키고 추후 입법을 통해 보완하고자 한다.” 개혁 동력이 충분한 정권 초기에 방송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실패 경험’이 입법 속도전에 불을 붙이고 있다.
〈공영방송과 대통령 권력〉을 쓴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방송법이 통과되지 못한 것이 ‘대통령 권력’ 때문이라고 본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8월 여야가 합의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온건한 인사가 선임되겠지만 소신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라며 재검토를 지시했다. 결국 민주당이 태도를 바꾸면서 방송법 개정은 좌초되었다. 최 교수는 모처럼의 여야 합의안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이 당시를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 모두 공영방송을 자기 편에 두려는 공모자였다.”
최 교수가 보기에, 언론 자유를 위한 ‘착한 권력’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이사 추천 주체를 늘리고 줄이는 논의가 아니라 집권 세력의 부당한 개입을 차단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벤치마킹하려는 BBC나 NHK에서도 다수제가 아니라 특별다수제를 채택한다. 다수결 원리가 아니라 정치적 타협과 합의를 바탕으로 뽑으라는 취지다. 정치적으로 독립된 공영방송을 위해서는 반드시 여야 합의를 통해 안이 도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공영방송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이번 방송 3법은 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데다 여야 대치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방송 3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기에 다수결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히자 국민의힘 과방위원 대다수는 7월7일 표결에 불참했다. 국민의힘에선 ‘방송 장악’이라 공세하면서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자체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준웅 교수는 방송 3법 입법을 서두르지 말고 속도 조절할 것을 조언한다. “이재명 정부 5년 이후에도 이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느냐를 물어봐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을 때 오히려 더 역풍이 불 수 있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