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위자료 ‘윤석열의 10만원’ [뉴스룸에서]


김태규 | 사회부장
2024년 12월3일 밤을 다시 떠올린다. ‘가짜뉴스’ 같았던 포고령에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돼 있었다. 계엄군이 회사로 몰려올 수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출입구에 바리케이드라도 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을 냈지만 당장 이런저런 뉴스를 생산해야 한다는 논의에 묻혀버렸다. 내란이 성공했다면 그날 자정 한겨레 사옥은 전기가 끊기고 1988년 창간 이래 처음으로 신문이 발행되지 않을 뻔했다.
시민들의 저항 덕에 이튿날 새벽 1시1분 국회에선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했다. 이로부터 무려 3시간26분이 지난 새벽 4시27분,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제야 택시를 불러 늦은 퇴근을 서둘렀다. 의외로 택시비가 저렴했다. 할증 시간이 이미 지나고 날이 밝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쓴웃음이 났다. 2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다시 출근했다. 초판 마감을 마치고 머리도 식힐 겸 노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부를 전하고 약간의 과장을 보태 심통도 부리고 싶었다. “어머니, 아들 어제 잡혀갈 뻔했어….” “그러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무슨 계엄이야. 말도 안 되지.” “왜 이렇게 됐는지 알아요? 아버지가 윤석열 찍어서.”
비상계엄 일주일 뒤 시민들이 대통령을 상대로 정신적 피해배상 소송을 청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극악한 계엄 선포와 그로 인한 신체적 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됐다. 하지만 배상을 받으려면 피해가 특정돼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었다. 시민 1만명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국정농단에 따른 50만원씩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분노 등 주관적 감정을 느낀 국민이 있더라도 모든 국민이 배상이 필요할 정도의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판례도 주된 근거였다. 하지만 은밀하게 국정 운영을 비선에 의존하다가 들킨 박근혜 사건 판례를, 국회를 침탈하며 전 국민의 평온을 깨뜨린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판사라면 충분히 승소 판결문을 쓸 거 같았다.
내란사태 뒤 4개월 가까이 지난 올해 3월 말, 정신적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2월25일에 대통령 탄핵재판 변론이 종결되고 한달이 지난 뒤에도 선고일이 잡히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이 명확했기에 ‘파면 확률 100%’라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결정 선고가 늦어지자 ‘기자로서의 확신’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헌법재판소 주변에선 ‘8인 체제’에서 탄핵 정족수 6명을 채우지 못했다는 흉흉한 얘기가 돌았다. 만약 탄핵소추안이 기각된다면? 그래서 윤석열이 돌아온다면? 헌재가 4월1일 “4월4일에 결정 선고를 한다”고 공지할 때까지 며칠 동안 잠을 뒤척여야 했다. 내란에 따른 추가적인 정신적 피해가 명확했다.
그리고 2025년 7월25일 1심 법원은 윤석열을 상대로 시민 104명이 낸 10만원씩의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판결을 한 이성복 부장판사는 “12·3 비상계엄 조치는 대한민국 국민들인 원고들이 당시 공포·불안·자존감·불편·수치심으로 표현되는 정신적 고통 내지 손해를 받았을 것임이 경험칙상 명백하다”며 “액수는 적어도 원고들이 구하는 각 10만원 정도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개별 피해 상황을 입증하는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는데도 윤석열의 위자료 지급 책임을 인정한 부분이 더욱 눈에 띄었다. 내란의 밤, 내가 택시비를 얼마 썼는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얼마나 피곤했는지, 또 윤석열이 복귀할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구구절절이 주장하지 않아도 윤석열 개인에게서 10만원 정도의 위자료는 넉넉하게 받아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나는 이 판결이 확정되길 소망한다. ‘윤석열 내란 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소송 준비모임’에 뜻을 모은 1만명의 시민도 어서 추가 소송을 내길 바란다. 이렇게만 해도 10억원이다. 윤석열이 올해 4월 파면될 때 신고한 개인 재산 총액(6억6369만4000원)을 훌쩍 넘긴다. 여전히 잘못을 모르는 그에게 경제적 파산은 속죄의 또 다른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제2의 윤석열’을 방지하는 길이기도 하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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