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독시' 이민호 "30대 후반 되니 새로운 경험과 자유를 꿈꾸게 돼요"[인터뷰]

모신정 기자 2025. 7. 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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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독시'서 유중혁 역
배우 이민호 ⓒMYM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20대 때는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짊어졌어요. 제 의도와 상관 없이 주제 넘는 큰 사랑을 받다 보니 그것에 부응해야 했고요. 책임감을 많이 느꼈는데 지금은 그런 시기를 지나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자유를 꿈꾸는 시기에 돌입했다고 할까요."

KBS-2TV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SBS 드라마 '상속자들'의 김탄, SBS '더 킹:영원의 군주'의 이곤 등 배우 이민호를 상징하는 대표작의 캐릭터들은 주로 백마를 탄 왕자님과에 속하는 인물들이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많은 여심을 울고 웃게 했다. 키 크고 잘 생긴 이민호의 외형적 매력들이 강조된 인물과 작품들이 인기를 얻을수록 배우로서의 그의 연기적 욕심이나 지향 등에 주목하는 시선은 적었다. 그가 배우로서의 욕망을 드러낸 초기 작품이 있었는데 유하 감독의 액션 누아르 '강남 1970'에서 밑바닥 청춘 종대 역을 맡아 거친 욕망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랬던 이민호는 지난 2022년 애플 TV+에서 첫 선을 보인 '파친코'에서 마성남 한수 역을 맡아 젊은 선자(김민하)와 폭풍 같은 사랑을 하지만 유부남의 신분이었기에 그녀를 버렸다가 결국 그녀의 곁을 맴도는 인물이 된다. '파친코' 시즌1, 2에서 한수는 처한 시대적 환경과 본능,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욕망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갔다. 6kg이나 살을 찌우고 일제 강점기의 중년 사업가 역을 맡아 기존 백마탄 왕자님 혹은 수트 입은 실장님 캐릭터들을 완벽히 지운 이민호는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웹소설 속 주인공 유중혁 역을 맡아 올여름을 뜨겁게 홀리고 있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10년 이상 연재되어온 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 완결된 날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되어 버리고 유일한 독자였던 김독자(안효섭)가 소설의 주인공 유중혁(이민호)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판타지 액션 영화다. 누적조회수 2억 뷰 이상을 기록한 동명의 글로벌 히트작을 원작으로 한 '전지적 독자 시점'은 '더 테러 라이브'와 'PMC:더 벙커'를 만든 김병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민호가 연기한 소설 속 주인공 유중혁은 등장과 동시에 눈을 뗄 수 없는 아우라로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 정도의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다. 헤아릴 수 없는 회귀를 거쳐 복잡다단한 감정선을 지녔고 어마무시한 액션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배우 이민호 ⓒMYM엔터테인먼트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이 이민호와 만났다. 어느때보다 밝은 표정으로 기자를 맞이한 이민호는 다른 주연작들에 비해 출연 분량이 다소 적음에도 '전지적 독자 시점'을 과감하게 선택하게 된 계기부터 김병우 감독과 수많은 시간의 토론을 거치며 영화 창작에 참여하게 된 과정, 대사가 많지 않지만 엄청난 카리스마와 무게감을 지닌 유중혁이라는 인물에게 신뢰감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 등에 대해 낱낱이 털어놨다. 오랜 시간 한류 배우의 가장 선두에서 활약해왔던 만큼 K-콘텐츠의 글로벌화에 대한 고민에 대한 질문에도 진지한 답을 들려줬다. 

"저 개인적으로는 영화라는 매체는 어떤 깊은 정서를 느끼기 위해 보러 가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30대는 돼서 그런 정서를 느낄 수 있을 때 영화 출연을 하고 싶었죠. 왜 10년 만에 영화를 하게 됐냐고 많이 물으시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때마침 '전지적 독자 시점'의 제안을 받게 됐고요. 30대 초반쯤 인간 이민호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과정이 4~5년 걸리더라고요. 그러다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게 되는 시기가 왔어요. 또 새로운 것을 채우고 싶어지는 시기가 됐죠."

이민호에게 '전지적 독자 시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지점은 주제적 측면이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립되어지는 시대에 김독자를 비롯한 유중혁과 동료들이 함께 힘을 합쳐서 서로를 도와 생존을 향해 나아간다는 주제가 그에게 뜻깊게 다가왔다. 하지만 극 전체적 흐름으로 보자면 서사 전체를 소개하고 동료들과 다양한 사건을 겪어 나가는 김독자에 비해 등장부터 모든 극중 인물들은 물론이고 관객들까지 눈빛과 무드로 설득을 시켜야 하는 유중혁은 작품 선택을 놓고 고민하게 할 정도로 어렵게 다가온 캐릭터였다.

"등장부터 주인공의 느낌을 풍겨야 했어요. 서사나 캐릭터가 그렇게 된 배경의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는 상태에서 독보적 세계관을 대변해야 하는 롤이었죠. 이 작품을 결정하기까지 가장 많은 고민을 하게 한 원인이 유중혁이었어요. 작업하는 내내 김병우 감독님과 유중혁의 세계관을 대변하려면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 처절하고 처연해 보이는 지점을 많이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눴죠. 그런 유중혁의 세계관을 가장 많이 드러내는 내용이 '어쩌다 인간들이 이렇게 됐을까'라는 대사 같아요. 이 작품 전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그 세계 안에서 수도 없이생을 살아내고 있는 한 인물로서 던지는 질문인 거죠."

배우 이민호 ⓒMYM엔터테인먼트

이민호는 유중혁에 대해 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 아닌 살아내고 있는 인물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연기를 했다. 그는 유중혁에 대한 기본 설계도를 그리면서 '고요 속에 고요가 요동친다'라는 메모를 적기도 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2시간 내러티브 안에는 유중혁의 어마어마한 파장이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엄청난 크기의 파장을 눈빛 안에 가둬두고 있어야 한다고 상상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할 때는 늘 부담이 되죠. 잘 해야 본전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전지적 독자 시점'의 원작을 보니 왜 그렇게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는지 정서와 코드를 알겠더라고요. 정말 치열하게 거부하다가 하게 된 느낌이었어요. 캐릭터가 좋고 멋있어서 선택했다기보다 '이렇게 좋은 한국의 IP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유중혁은 제가 삶에서 추구하는 방향적인 측면에서 닮고 싶은 점이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멸살법'이라는 세계관 안에서 끝이 희극일 거라는 전제는 없어요. 미션을 꼭 클리어 하지 않아도 되고요. 그런데 이 인물은 순간 순간 계속해서 사명이라고 받아 들이고 묵묵히 이겨내며 나아가고 있어요. 결과나 혹은 어떤 기대에 상관 없이 주어진 순간에 묵묵히 대응하며 나아가죠. 그런 모습이 닮고 싶어요. 저 또한 그런 시간들이 있었어요. 20대 때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짊어졌었죠. 제 의도와 상관 없이 주제 넘는 큰 사랑을 받다 보니 그것에 부응해야 했고요. 책임감을 많이 느꼈는데 지금은 그런 시기를 지나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자유를 꿈꾸는 시기에 돌입했다고 할까요."

김병우 감독은 유중혁 역 이민호의 캐스팅과 관련 그의 존재만으로 판타지 장르의 부연 설명이 필요 없고 등장만으로 충분히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극찬을 한바 있다. 이민호 또한 배우들의 다양한 관점과 아이디어를 존중해주는 김병우 감독 특유의 연출 방식에 더욱 적극적으로 영화 전반에 참여하게 됐다. 

"김병우 감독님은 디렉션을 질문형으로 하셨어요. '배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끊임 없이 하셨죠. 저도 그렇고 서로 질문을 계속 했어요. 이렇게 함께 뭔가를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좋았죠. 현재 영화로 나온 버전의 '전독시'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더 큰 틀의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은 '모험의 시작'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데 저도 전적으로 동의했어요. 김병우 감독님과 처음 만나서 대화를 나눴던 때부터 유중혁보다 김독자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어요. 인물들 간에 디테일하게 얽히고 충돌이 일어나고 하는 부분들을 잘 펼쳐나가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죠. 유중혁은 김독자가 설측력을 지니지 못하면 아예 보일 수 없는 인물이에요. 독자라는 인물을 뼈대부터 촘촘히 세우는 것이 중요했죠. 다른 작품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에요. 1차원적 접근보다는 3차원적 접근으로 작품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편이에요."

배우 이민호 ⓒMYM엔터테인먼트

KBS-2TV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부터 SBS '상속자들'의 김탄, 그리고 애플TV 플러스의 '파친코' 시즌1, 2의 한수까지 30대 후반의 20년차 경력의 배우가 되어서 돌아보는 자신의 대표 캐릭터들은 대중이나 평단이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의미가 있어 보였다.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느끼는 연기 철학에 대해서도 한마디 말을 보탰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가 저에게 깨야할 굴레나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파친코'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간단했어요. 해외 영화들을 볼 때 배우들이 배역의 비중에 상관 없이 다양한 롤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 또한 롤이나 비중에 대해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런데 20대 때는 그런 제안 자체가 들어오지 않았죠. 30대 중반부터 다양한 인물의 작품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 시작이 '파친코'였고 저는 그 경험이 너무 좋았어요. 저를 필요로 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설득되는 롤이라면 얼마든지 다양하게 출연하고 싶어요. 지금의 이민호라는 배우는 제가 지금 느끼는 생각들에 대해 그만큼의 영향력을 펼치거나 나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만나고 싶어요. '이민호는 이런 정서의 배우다'라는 걸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이랄까요." 

'오징어 게임' 시리즈로 가장 유명한 한국 배우가 된 배우 이정재와는 여러 차례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공개돼 화제에 오른바 있다. 오랜 시간 대표 한류 스타로 활약해온 이민호인만큼 이정재와 K-콘텐츠의 글로벌 시장에서의 미래와 전망에 대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했다. 이와 더불어 향후 40대의 이민호는 어떤 배우를 꿈꾸는지도 함께 물었다. 

"이정재 선배님이나 저 모두 주어진 상황 속에서 치열하게 하는 것 뿐인 것 같아요. 어떤 포부를 가지고 '이렇게 하자'고 이야기 나눈 적은 없어요. 다만 서로 그런 지점에서 동기부여가 되어주는 관계인 것은 분명해요. 정재 형은 생각보다 말씀이 많은 분은 아니에요. 다만 형의 행보를 보면 엄청난 치열함이 느껴지죠. 글도 직접 쓰시고 연기도 하시면서 연출도 하고 회사 운영도 하시잖아요. 형처럼 치열하게 살겠다는 목표는 아니지만 저만의 속도로 치열하게 살아가려고 해요. 영포티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지난 20년을 돌아봤을 때 13년 정도는 책임과 경험을 하는 삶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후 5년 정도는 그 경험에 대한 정의를 내렸고요. 지금은 새로운 경험에 들어서기 시작했어요. 10년 뒤 제 모습에 대해 어떤 목표나 꿈을 크게 가져본 적은 없어요. 저는 순간순간들에 유연하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전독시'에서 유중혁이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면서 직관적으로 행동하려고 했는데 저 또한 그래요.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거나 안정감을 추구하기보다 늘 새로운 환경에 저를 던지면서 챌린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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