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공 30년 만에 프랑스 영광의 상징으로 우뚝 서다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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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7월 29일, 파리 중심부의 샤를 드골 광장(당시 에투알 광장)에 웅장한 개선문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축물은 고대 로마의 개선문을 연상시키며, 기둥마다 1792년부터 1815년까지의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의 주요 승전이 새겨져 있다.
나폴레옹의 꿈에서 시작되어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완성된 이 웅장한 문은 오늘날에도 파리의 심장부에서 변함없이 프랑스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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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36년 7월 29일, 파리 중심부의 샤를 드골 광장(당시 에투알 광장)에 웅장한 개선문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개선문의 역사는 1806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예나 전투의 승리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위대한 군대가 개선 행진을 할 웅장한 문을 세울 것을 명령했다. 장 샬그랭이 설계를 맡았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몰락과 부르봉 왕가의 귀환으로 인해 공사는 수차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난항을 겪었다.
특히 왕정복고 시기에는 건립 자체가 위협받기도 했으나, 1830년 7월 혁명 이후 루이 필리프 1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공사는 다시금 활기를 띠었다. 루이 필리프 1세는 개선문이 특정 왕조가 아닌 프랑스 국민 전체의 영광을 기리는 건축물이 돼야 한다고 천명하며 완공을 지시했다.
완공된 개선문은 높이 50m, 폭 45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축물은 고대 로마의 개선문을 연상시키며, 기둥마다 1792년부터 1815년까지의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의 주요 승전이 새겨져 있다. 특히, 엠마뉘엘 프리미에르의 '출발', 앙투안 에텍스의 '저항', '승리', '평와' 등 네 개의 부조는 개선문의 예술적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
개선문은 완공 이후 프랑스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1840년 나폴레옹의 유해가 생트엘렌에서 파리로 돌아와 이곳을 통과하며 마지막 개선 행진을 벌였고, 1885년 빅토르 위고의 국장, 1920년 무명용사의 묘가 안치된 이후에는 프랑스 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국가 추모의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에투알 개선문은 프랑스의 격동적인 역사를 증언하고, 국가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살아있는 증거다. 나폴레옹의 꿈에서 시작되어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완성된 이 웅장한 문은 오늘날에도 파리의 심장부에서 변함없이 프랑스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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