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엄마가 된 여자… 악마는 태어날까, 길러질까
<11>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케빈과 에바
편집자주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오동훈, 허규형 전문의가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우리의 마음도 진단합니다.

어린 아들의 손에 남편과 딸을 잃고, 자신은 '살인자의 엄마'라는 지워지지 않는 낙인 속에서 살아가는 여인이 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세상의 경멸과 폭력에도 저항 없이, 깨진 계란으로 묵묵히 오믈렛을 만들며 속죄하듯 하루를 버틴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이토록 끔찍한 비극의 잔해 속에서, 관객에게 근원적이고도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아이는 악마로 태어나는가, 아니면 악마로 길러지는가?
자유로운 여행가였던 에바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아들 케빈을 낳으며 삶이 180도 달라진다. 케빈은 어릴 때부터 이유 모를 반항으로 에바를 힘들게 하고, 특히 엄마에게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에바는 아들과 가까워지려 애쓰지만, 케빈은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그에게 고통을 준다. 결국 청소년이 된 케빈은, 에바가 평생 감당해야 할 끔찍한 비극을 저지른다. 영화는 이 비극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왜?'라는 질문을 끈질기게 따라간다.

예측 불가한 악의, 타고난 악마일까
영화 전반에 걸쳐 관객을 숨 막히게 하는 것은 케빈의 예측 불가능한 악의다. 그의 행동은 단순한 반항을 넘어선다. 대소변을 가릴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도 일부러 기저귀에 변을 보며 엄마를 시험하고, 분노를 참지 못한 에바가 자신을 집어 던져 팔이 부러졌을 때는 아빠에게 "혼자 다쳤다"고 말해 에바에게 깊은 죄책감을 안긴다. 이후 자신의 흉터를 만지작거리며 엄마를 심리적으로 통제하려는 모습은, 타인의 감정을 이용하는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드러낸다. 그의 악의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인 동생에게 향하며 그 잔혹성을 더해간다. 동생이 아끼던 햄스터를 죽이고, 사고를 가장해 동생의 한쪽 눈을 실명시킨 뒤, 태연하게 희생된 동생의 눈알을 닮은 리치를 까먹는 장면은 공감 능력의 부재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에바는 단지 아들의 악마성을 가장 먼저 알아본 불운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케빈의 공감 결여는 정말 타고난 것일까? 정신분석가 피터 포나기의 '정신화(Mentalization)' 이론은 이 질문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정신화란 자신과 타인의 행동을 생각, 감정, 신념, 욕구와 같은 내적인 정신 상태와 연결해 이해하는 능력이다. 쉽게 말해 ‘마음을 읽는 마음’이며, 공감 능력의 핵심적인 토대가 된다.
이러한 능력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생애 초기 주 양육자와의 관계 속에서 발달한다. 아기는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감각을 스스로 이해할 수 없다. 이때 어머니는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정서적 거울(Emotional Mirror)’이 되어준다. 아기가 알 수 없는 불편함에 울음을 터뜨리면, 어머니는 “배가 고프구나” 혹은 “기저귀가 축축해서 짜증이 났구나”라고 말하며 아이의 감정을 읽고 해석해 준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아이의 감정을 자신의 표정과 목소리에 담아 과장되지 않게, 그러나 명확하게 반영(mirroring)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기는 모호했던 내적 감각이 ‘배고픔’이나 ‘짜증’이라는 감정임을 배우고, 점차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틀을 갖추게 된다. 이 경험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나라는 존재는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타인에게 인식될 수 있는 의미 있는 것'이라는 안정적인 자기감의 토대를 쌓게 된다. 자신의 마음 상태에 대한 이해는 곧 ‘나처럼 다른 사람도 같은 마음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으로 확장되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으로 이어진다.
온기 없는 양육, 아이가 택한 생존 전략

안타깝게도 케빈에게 에바는 제대로 된 정서적 거울이 되어주지 못했다. 여행을 통해 자유를 끊임없이 추구해 왔던 에바에게, 임신은 축복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해야 하는 족쇄였다. 물론 그의 마음속에도 케빈에 대한 애정이 존재했겠지만,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 예기치 않게 엄마가 되었다는 불안감이 이를 압도할 만큼 컸기에 에바는 ‘모성적 양가감정’의 상태에 내몰린다. 스스로의 감정을 처리하기에도 버거웠던 그는 아이의 감정을 비춰 줄 여유는 더더욱 없었다. 영화 속 에바는 케빈의 울음 앞에서 무표정하고, 아이를 달래는 손길에도 온기보다 의무감이 앞선다.
자신의 표현에 아무런 반응도 보여주지 않는, 혹은 짜증이나 분노와 같은 왜곡된 반응만을 보여주는 거울 앞에서 케빈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의 내면은 이름 붙여지지 않은 혼란스러운 감정들로 가득 찼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케빈은 깨진 거울을 향해 점점 더 큰 돌을 던진다.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자유로웠던 과거가 담긴 '지도의 방'을 온통 물감으로 망쳐 놓은 것은 엄마가 사랑하는 것을 파괴함으로써 그 사랑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원초적인 시위였다. 이는 분노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통해서라도 엄마의 관심을 끌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했던 절박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내가 말 잘 듣는 범생이로 나왔으면 엄마가 지금처럼 날 신경 썼을까?"라는 케빈의 말은, 긍정적인 방식으로는 엄마의 관심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달은 아이가 선택한 가장 끔찍한 생존 전략이었음을 암시한다.
비극의 완성, 남겨진 자의 몫

결국 케빈은 아빠와 동생마저 활로 쏘아 죽이고, 학교에서 대량 살상을 저지른다. 그는 왜 자신을 가장 증오했을 엄마, 에바만은 살려두었을까? 그는 에바를 가장 증오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자신의 유일한 관객이자 존재 이유였다. 엄마를 살려두는 것, 자신의 '걸작'을 평생 목격하며 고통 속에 살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케빈이 에바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도 완벽한 복수였던 것이다.
사건 이후 에바는 속죄하듯 살아 간다. 2년 후, 교도소에서 마주한 케빈은 이전과 다르다. "왜 그랬니?"라는 엄마의 질문에, 그는 처음으로 자신만만한 표정을 거두고 "그땐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라고 답한다. 이는 완전한 반성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던 견고한 세계에 균열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그 순간, 에바는 아들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다. 이해했거나 용서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들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 비극을 평생 짊어져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처절한 수용이다. 그는 케빈을 온전히 품에 안음으로써, 평생 자신을 옭아매던 '왜?'라는 질문으로부터 역설적인 자유를 얻게 된다.
‘본성 vs 양육’ 이분법을 넘어서

결국 케빈의 ‘악마성’은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공감 능력이 부족했던 아이와,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여성의 비극적인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각자의 결핍과 상처에 갇혀 있던 두 사람에게는 서로를 이해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에바의 정서적 거리감은 케빈의 반항심을 자극했고, 케빈의 기행은 에바의 죄책감과 분노를 키우며 서로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 후에야 비로소 케빈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된 에바의 성숙이 반가우면서도, 그 대가가 너무나 컸기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케빈의 행동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진료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행동 문제 역시 아이의 타고난 기질과 부모의 양육 간 엇박자가 나면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엄마가 양육을 오롯이 도맡아야 하는 독박 육아나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 같은 외부 환경적 요인 또한 큰 영향을 미친다. 소아정신과 의사가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이러한 여러 변수들 중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가족 내 문제의 원인을 당장 눈에 보이는 한 가지에서 찾으려고 한다. 아이가 유별나서, 엄마가 아이를 너무 엄하게 대해서, 아빠가 화를 자주 내서 문제가 생겼다는 식이다. 이는 ‘너만 바뀌면 돼’라는 책임 전가의 심리다. 특히 최근 인기를 끄는 육아 솔루션 프로그램들의 영향으로 ‘아이를 바꿀 수 있는 한 가지 해결책만 찾으면 문제는 곧바로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병원을 찾아오시는 경우도 종종 본다. 하지만 한 아이를, 나아가 한 가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간단한 공식을 통해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과정은 수많은 좌절을 겪고 넘어지더라도, 털고 일어나 다시 달려야 하는 '장거리 장애물 경주'에 가깝다. 그렇기에 완주를 위해서는 변화하겠다는 의지만큼이나 많은 것을 참고 받아들이겠다는 인내가 필수다.
'케빈에 대하여'는 우리에게 많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영화가 묘사하는 숨 막히는 불행의 이면에서 소아정신과 의사로서 내가 읽어낸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한 가족에게 필요한 건 '누가 틀렸는가'를 따지는 손가락이 아니라, '서로가 어떻게 다른지'를 인정하고 조율해 나갈 수 있는 용기라는 것. 그래야 끝이 어디일지 모를, 험난한 장애물로 가득 찬 길 위에서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동훈 연세온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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