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하라’ 해놓고 금융사 희생 강요… “앞뒤 안 맞아”

곽창렬 기자 2025. 7. 29.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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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 ‘주주 이익 vs 관치’ 딜레마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4일 금융권의 ‘이자 놀이’를 공개 비판한 가운데, 28일 국내 4대 금융그룹 주가가 평균 6.9% 급락했다. 사진은 지난 4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 상황 점검 회의에 참석한 함영주(왼쪽부터) 하나금융, 임종룡 우리금융, 진옥동 신한금융, 양종희 KB금융 회장./연합뉴스

28일 국내 4대 금융그룹 주가가 평균 6.9% 급락하자, 금융권 안팎에서는 주주 환원, 건전성 강화 등을 위한 국내 금융사들의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정부와 금융권이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밸류업’과 사회적 책임을 내세운 ‘관치 금융’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 된 것이다. 금융주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관치 금융이 심화되면서 금융주들의 주가 상승이 멈추면 주주 보호를 공약한 이 대통령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그래픽=이진영

◇대통령 비판에 금융사들 “100조원 펀드에 투자”

28일 열린 금융 당국과 금융권 협회장들 간 간담회에서 당국은 금융사들에 ‘생산적 금융’을 요구했다. 앞서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 ‘이자 놀이’에 매달리지 말라는 경고를 한 것에 대한 후속 조치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금융이 시중 자금의 물꼬를 생산적 영역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적 금융이란 금융사들이 자금을 단순히 대출로 이자 수익을 늘리는 데 쓰지 않고, 혁신 기업이나 중소·벤처기업 등에 대한 투자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안정적 수익을 포기하고, 희생을 요구한 것이다.

금융사들은 이 같은 요구에 정부가 100조원 규모로 조성할 예정인 첨단·벤처·혁신기업 펀드 조성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다. 또 소상공인 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좋은 기업을 선별해 모험 자본을 공급하는 기업 금융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내부적으로는 이번 정부에서는 이자 수익을 확대하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고, 희생을 하더라도 돈을 떼일 위험이 큰 분야에 대출을 해야 한다는 방침이 정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 방침에 따라 이 같은 기업 대출에 적극 나설 경우 금융사의 수익 하락은 불가피하다.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는 올해 상반기 20조원에 달하는 영업 이익을 올렸는데, 만약 정부 방침대로 대출 구조를 바꿔 가계 대출을 절반으로 줄일 경우 연간 5조원의 이익을 포기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밸류업과 관치 금융의 딜레마

문제는 관치 금융이 금융주에 투자한 주주의 이익과 정면으로 배치될 수 있다는 점이다.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 대출을 줄이는 대신, 모험 자본 투자에 나서다 금융사 실적이 악화할 경우 주주들이 주가 하락의 피해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이 대통령이 주장해 온 주주 이익 보호와는 상충된다. 이 대통령은 당 대표와 대선 후보 시절 “개미 투자자들을 보호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를 위해 집권하자마자,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일사천리로 통과하자, 법안을 공포했다. 한 금융사 고위 간부는 “사업성이 떨어지는 벤처기업 등에 돈 떼먹힐 각오하고 대출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주주 환원을 어떻게 하고 주가를 어떻게 띄우냐”고 말했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만약 정부가 금융사에 요구하는 사회적 책임 정도가 과하다고 판단되면, 금융사들은 개정된 상법을 근거로 주주 이익을 위해 하기 어렵다고 버틸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가 관치 금융을 무리하게 밀어붙일 경우 주주 이익과 충돌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사들에 무리하게 희생을 강요하기보다는 금융사들이 스스로 주택담보대출보다 기업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임석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이자 놀이를 비판하는 대통령의 생각이 타당한 면이 있지만, 부동산 같은 안정적인 투자처에 대출을 해도 큰돈을 벌 수 있는 우리나라 금융업계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주주 이익과 사회 공헌이 충돌하는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 같은 점을 의식해 금융권이 기업이나 벤처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 ‘당근’을 주는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시대 여건에 맞지 않는 각종 건전성 규제를 조속히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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