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나랏 AI가 미귁에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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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문자와 언어 기술의 혁신은 인류 문명 발전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곤 했다.
하지만 왕실과 관료 집단이 기술 혁신의 편익을 독점하면서 사회적 혁신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 여파에 그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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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문자와 언어 기술의 혁신은 인류 문명 발전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곤 했다. 1455년 출판된 ‘구텐베르크 42행 성서’가 대표적 예다. 독일 금 세공업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 인쇄술은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과학 혁명의 토대가 됐다. 대량 인쇄 기술이 소수 엘리트가 독점하던 정보·지식의 대중적 확산을 가능케 한 덕이다. 신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중세 암흑 시대가 막을 내리고 합리와 이성의 시대가 열렸다. 이후 서양 문명은 동양을 추월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는 더 커졌다.
□ 우리는 구텐베르크보다 앞서 인쇄술을 가졌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은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이른 고려 우왕 3년(1377년)에 인쇄됐다. 하지만 왕실과 관료 집단이 기술 혁신의 편익을 독점하면서 사회적 혁신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지배계층의 문자·정보 독점을 깬 건 조선 세종대왕이다. 최만리 등 사대부의 거센 반발에도 세종은 1443년 “백성을 위한 문자” 한글을 만들고, 해설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대량 인쇄해 반포했다. 조선 후기 실학의 등장은 우연이 아니다.
□ 인쇄술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문자·언어 기술 혁신은 컴퓨터와 인터넷이다. 산업혁명 이후 이어져온 질서를 뿌리째 흔든 정보 혁명은 1997년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위기를 맞은 우리나라에는 동아줄이 됐다. ‘1인 1PC’ 시대를 공약한 김대중 정부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구축’ 전략은 대한민국을 정보기술(IT)강국으로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 한국은 영어가 아닌 고유의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검색 포털을 가진 나라다. 정보 주권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 여파에 그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 초거대 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하는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언어와 사고의 틀을 규정하는 도구로 사고의 종속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사실 왜곡과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SNS 알고리즘 부작용보다 근본적인 위험이다. 세계 주요국은 경제성이 없는데도 ‘소버린 AI’를 구축하려 한다. 세종이 한자 대신 한글을 만든 이유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동현 논설위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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