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외신 다이제스트] 프랑스 지도가 만든 100년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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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캄보디아 국경에서 총성이 울리고 있다.
성스러운 종교 시설이지만 지금은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 분쟁의 상징이 됐다.
1904년 프랑스령 캄보디아와 시암 왕국(현 태국)은 국경 조약을 맺으며 태국 동부와 캄보디아 북부 국경 지대에 세워진 이 사원을 태국 영토에 포함시켰다.
교전 직후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와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가 분쟁 종식을 선언했지만, 충돌 지역의 병력 철수 문제로 다시 갈등이 증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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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캄보디아 국경에서 총성이 울리고 있다. 분쟁의 초침은 1900년대 초 프랑스 식민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국주의 열강이 그은 경계선 하나가 두 나라의 갈등을 한 세기 넘게 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분쟁의 발단은 쁘레아비히어르 사원에서 비롯됐다. 크메르 왕조 시절인 10~12세기 단계적으로 건축된 힌두사원이다. 성스러운 종교 시설이지만 지금은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 분쟁의 상징이 됐다.
1904년 프랑스령 캄보디아와 시암 왕국(현 태국)은 국경 조약을 맺으며 태국 동부와 캄보디아 북부 국경 지대에 세워진 이 사원을 태국 영토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1907년 프랑스가 작성한 지도가 문제였다. 측량 실수로 사원을 캄보디아 영토로 표기한 것이다. 태국은 이 오류를 수십 년 뒤에야 발견했다. 1954년 5월 역사적인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가 월맹군에 항복하고, 이어 7월 제네바 협정이 체결되어 프랑스군이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철수하자 태국은 곧바로 사원을 점령했다. 캄보디아는 태국군 철수를 요구했고 태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1959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1962년 ICJ는 ‘태국 측이 문제의 지도를 승인했고, 이후 수십 년간 사원 영유권과 관련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사원이 캄보디아 영토라고 판결했다. 태국은 마지못해 수용했다. 그러나 앙금은 남았다.
2008년 캄보디아가 해당 사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신청하면서 태국 여론이 폭발했다. 분노한 태국 시위대가 사원 인근에 진입했다가 국경 침입으로 캄보디아 측에 붙잡히자 태국군 병력이 진입했다. 양국 군은 대치하다가 총격전을 벌였다. 이 충돌 여파로 국경 지대에 있는 따 모안 톰 사원 등 다른 유적들도 영유권 분쟁에 휘말렸다.
2011년이 되자 양국 분쟁이 확산됐다. 그해 2월 교전으로 10명이 희생됐다. 4월에는 약 20명이 사망하고 이 지역 주민 수만명이 피란했다. 캄보디아는 쁘레아비히어르 사원 주변 지역의 영유권 문제를 다시 ICJ에 가져갔고, ICJ는 2013년 다시 캄보디아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국경 분쟁은 소강상태를 지속했지만 갈등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었다. 지난 5월 하순 쁘레아비히어르 사원 근처 국경 지대에서 소규모 교전으로 재점화됐다. 교전 직후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와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가 분쟁 종식을 선언했지만, 충돌 지역의 병력 철수 문제로 다시 갈등이 증폭됐다.
설상가상으로 6월 패통탄 총리가 캄보디아 실권자인 훈 센 상원의장과 통화하면서 태국군 사령관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고, 이 통화가 유출되며 거센 후폭풍이 일어났다. 결국 태국 헌법재판소는 패통탄 총리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동시에 태국에선 캄보디아에 대한 반감이 고조됐다.
이어 이달 들어 국경 분쟁 지역에서 지뢰 폭발 사고가 두 번이나 발생해 태국군 병사들이 중상을 입자 태국은 외교적 보복에 나섰다. 지난 23일 태국은 주태국 캄보디아 대사를 추방했고, 캄보디아 주재 태국 대사를 소환했다.
양국의 충돌은 하루 뒤인 24일 대규모 교전으로 번졌다.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양국은 28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휴전을 위한 정상 회담을 열고 사태 해결에 나섰다.
두 나라의 무력 충돌은 과거 식민제국주의가 남긴 유산의 폭발이다. 잘못 그려진 지도 하나가 지금까지 많은 생명을 앗아가면서 두 국가의 정치와 안보를 뒤흔들고 있다. 분쟁의 책임은 지금 싸우는 이들에게만 있지 않다. 멋대로 경계를 그은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이 비극의 주범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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