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11장] 전주성 입성(196회)

"비정한 인간, 마치 원자가 죽기라도 바란 것처럼 죽자마자 궁인 이씨 애를 새 원자로 교체한다고 설레발치나? 그건 나를 미워해서 그랬을 거야. 저런 인간을 나의 시아버지요, 죽은 불쌍한 원자의 할아버지라고 할 수 있나? 그는 나의 원수요."
민왕후는 이렇게 복수전을 십여 년째 벌이며 이를 갈아왔는데, 근래 동학농민군 대장 전봉준과 교류하고 있다고까지 한다. 그렇다면 그 또한 반란 수괴 아닌가. 비정하고 표독스럽긴 민왕후가 더했으면 더했지 밀릴 사람이 아니다. 예의범절 또한 저당잡힌지 오래다. 그녀는 이를 갈고 복수의 완성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너는 죽었어. 벌레 잡듯 밟아버릴 것이야. 내 뒷배가 벌써 왕실을 장악한 것 모르나?
민왕후는 척족 여흥민씨 대신들을 동원하여 흥선대원군을 가차 없이 밟아버릴 작정이었다.
"그자를 가만두면 우리 여흥민씨 세족의 씨를 말릴 거다. 그러므로 선제공격이다. 이제 더 이상 밀릴 수 없다. 명색 왕부(王父)란 자가 거괴 전봉준과 거래하고 있다? 전봉준 세력과 결탁하여 왕권에 도전하고, 그 힘으로 권력에 복귀하려고 한다? 에라이 노추(老醜)에 찌든 인간아, 두고 보자."
따지고 보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전봉준과의 밀실 담합을 고변하는 자를 찾기만 하면 된다. 흥선은 교활하게 전봉준과의 교류가 없다고 반발할 것이다. 음해이며, 모함이라고 펄쩍 뛸 것이다. 하지만 근거 주의에 입각하여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는 근거를 댈 것이다.
여흥민씨 척족들은 궁궐에 이미 50여 명이 들어와 요직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늙다리 흥선대원군 하나 때려잡기는 손톱으로 개미 까죽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흥선대원군 어른이 역도들과 역모를 꾸미고 있다."
며칠 후 이런 소문이 장안에 퍼질러졌다. 과연 이를 실토한 사람이 나타났다. 운현궁 흥선의 집에서 식객 노릇을 하던 한량 둘을 잡아 족치고 회유하니 금방 들통이 난 것이다. 식객 하성택이 실토하였다.
"흥선대원군 어르신께서 거괴 전봉준과 겸상하여 밥을 먹는 것을 보았나이다."
"그러하면 그냥 밥만 먹었던 것이냐?"
"그럴 리가 없지요. 호남의 동학농민군을 서울로 불러들이는 계획을 모의하였을 것입니다."
"모의하였을 것이다, 라니? 모의한 것을 들었지 않았느냐."
하성택이 그 추국에는 자신이 없어 우물쭈물하자 대번에 다른 목격자 방문도가 나타나서 증언했다.
"두 사람이 모사 꾸미는 것 다 지켜봐 놓고도 오리발 내미는 자군. 옛기 비겁한 놈. 그대는 양쪽에 발 걸쳐놓은 기회주의자여."
이렇게 해서 하성택이 그 길로 칼을 맞고 죽고, 방문도는 발고(發告) 값으로 후한 사례금을 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 부녀자 강간 혐의를 받고 죽었다. 이 모두 꾸민 일이었다.
삼남지방에선 동학농민군이 발호하고, 궁궐 내에선 흥선대원군 세력이 권력을 빼앗으려 절치부심하고, 외세 또한 만만치 않다. 이때 우찬성이 나섰다.
"마마, 나라에 우환이 낄 때는 확고한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왕부가 저 난리 치고, 호남 지방의 감사나 원님들이 나약해 동학농민군을 다스리지 못하고, 심히 민심이 요동치고 있나이다. 이런 때는 용기 없고 무능한 놈은 가차 없이 쳐버려야 합니다. 증원군 부대를 보내고, 청군에게도 지원을 요청하기를 바랍니다."
임금은 일단 강경책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우찬성의 지론에 경도되었다.
"원수 같은 놈들, 왕권을 부정하다니, 싸그리 밀어붙여라."
그때 회의 진행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던 좌의정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전하. 그동안 강경책을 실험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유화책이 대책입니다. 성난 민심을 달래는 것은 오직 부드러운 통치이옵니다."
"둘 다 맞소."
왕은 이번에는 유화책에 경도되었다. 왕은 동학농민군을 제압하기 위해 증원군을 파견하는 일방, 다른 한편으로 유화책을 강구하여 주민을 설득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