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1165억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2025. 7. 2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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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1979년 10월 27일 이른 아침. 대학 기숙사에서 자고 있던 학생들이 깜짝 놀라 깨어났다. 손 마다 M16 소총을 든 공수 부대원들이 기숙사 방문을 군홧발로 걷어차고 깨우며 '집으로 내려가라'고 소리쳤다. 놀라서 정신없이 서둘러 옷만 입고 차비만 챙겨서 기숙사를 빠져나오니 학교 정문 앞에는 육중한 탱크가 아스팔트 도로위에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날은 전날 박정희 대통령의 총격 사망으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던 날이다. 
20대 초반 대학생들에게 총기를 들고 위협을 하던 공수부대원들의 모습. 학생뿐만 아니라 기숙사 사감과 직원들까지 모두 공포에 떨며 기숙사에서 쫓겨나왔다.  

이날 계엄령 선포로 전국의 모든 대학이 휴교에 들어갔다.   

그해 12월12일 반란을 통해 권력을 움켜잡은 전두환은 이듬해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 대학의 문이 닫히고 일체의 정치 활동 금지와 함께 모든 언론은 군의 검열을 받아야 했으며,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수많은 지식인·열사들이 옥고를 치르거나 수배를 피해 숨어서 살아야 했다. 

그로부터 45년 후인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TV에 나와 계엄령을 선포했다.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대한민국에서의 비상계엄령 발동. 온 국민이 눈과 귀를 의심하고 가짜뉴스라고 믿고 싶었던 그 TV화면은 실제 상황이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5일 시민 104명이 윤 전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비상계엄 선포의 정신적 피해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윤 전 대통령)는 원고들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1인당 10만원씩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장은 피고 측의 배상책임에 대해 "위헌·위법한 비상계엄과 그 일련의 조치를 통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마비시키고 국민의 생명권과 자유, 존엄성을 유지해야 하는 대통령의 임무를 위배했다"며 "비상계엄 조치로 대한민국 국민들인 원고들이 공포, 불안, 좌절감, 수치심으로 표현되는 정신적 고통 내지 손해를 받았을 것이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소를 제기한 104명뿐만 아니라 온 국민에게도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비상계엄 조치로 국민들이 공포, 불안, 좌절감, 수치심으로 표현되는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 판결이 상고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온 국민이 실제로 위자료 배상 소송을 제기한다면, 현재 우리나라 인구가 5116만4582명(6월 말 기준)이니 윤 전 대통령은 전 국민에게 1인당 10만 원씩 무려 5조 1165억 원 이상을 배상해야 한다. 

지난 25일 관보에 게재된 윤 전 대통령의 재산은 배우자 등 가족을 합쳐서 모두 80억원 정도. 전 재산을 다 내놓더라도 감당하지 못할 천문학적인 액수다. 

1심 법원의 판결문은 준엄하다. '국민인 원고들이 공포와 불안, 좌절감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게 골자다. 

민주화의 시계를 45년 전 전두환의 '깡패 정치' 시절로 돌리려 한 죗값. 극형의 형사 처벌과 함께, 그 위자료는 5조가 아니라 50조원이라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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