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장관은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가

박만원 기자(wonny@mk.co.kr) 2025. 7. 2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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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모였던 장관들의 수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조짐이다.

내란특검이 출범하고 한 달여가 지나면서 12·3 비상계엄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장관들의 '역할'에 대한 조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12·3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장관들의 행적에 대한 조사와 재판이 마무리되려면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들 중 한 명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위헌적인 비상계엄에 항의하며 사표를 던졌다면, 장관직에 대한 신뢰와 존경은 지금과 사뭇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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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때 무기력했던 장관들
내란특검 조사 본격화
'워터게이트' 닉슨 사퇴 촉발
리처드슨 법무장관의 가르침
"대통령 개인에게 충성말라"

'그날 밤' 모였던 장관들의 수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조짐이다. 내란특검이 출범하고 한 달여가 지나면서 12·3 비상계엄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장관들의 '역할'에 대한 조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특검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28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는 비상계엄 당시 소방청장에게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내란우두머리방조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조사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내란특검으로 이첩됐으며,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계엄 직후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관련 지시문건을 받은 의혹과 관련해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12·3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장관들의 행적에 대한 조사와 재판이 마무리되려면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회복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종이쪽지'처럼 가벼워진 장관직의 무게가 그렇다.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들 중 한 명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위헌적인 비상계엄에 항의하며 사표를 던졌다면, 장관직에 대한 신뢰와 존경은 지금과 사뭇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용산 국무회의에서 그런 결기는 없었다. 대통령이 계엄 지시사항을 적어준 '종이쪽지'를 멀리서 봤다거나, 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었다는 식의 낯 뜨거운 해명만 쏟아졌다. 법치질서를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법무장관은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대통령과 회식을 했다. 그가 회식 자리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계엄의 불법성에 대해 항의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국회의) 탄핵소추권 남용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주장했던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장관은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가? 미국 공직사회에서 오늘날까지 사표(師表)로 존경받는 엘리엇 리처드슨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통령 개인에게 충성하겠다고 맹세한 게 아니라,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맹세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탄핵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 백악관이 야당의 선거운동본부를 도청하고 조직적인 증거 은폐를 시도한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당시 리처드슨은 법무장관이었다. 사건의 핵심 증거인 도청 테이프 제출 요구에 맞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특별검사를 해임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리처드슨 장관은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고 사표를 던졌다. 그에 이어 부장관도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하고 사임을 택했다.

여론이 폭발하고 백악관으로 시위대가 몰려들자 닉슨 대통령은 결국 1974년 8월 자진 사퇴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리처드슨 장관의 용기가 닉슨 대통령 사퇴의 도화선이 된 셈이다. 그는 양심을 따르고 헌법을 수호한 공직자라는 평가를 받아 뒤를 이은 제럴드 포드 정부와 지미 카터 정부에서 상무장관, 주영대사, 유엔특사 등 요직을 맡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국무회의라는 제도를 통해 주요 정책에 대한 장관들의 심의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미국에는 없는 제도로, 그만큼 장관들의 권한과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12·3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이 국무위원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고 보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첫 내각 구성이 거의 마무리됐다. 후보자가 낙마하거나 아직 청문회를 마치지 못한 일부를 제외하고 장관들에 대한 임명 절차가 완료됐다. 일각에서는 여당 의원들이 너무 많이 국무위원에 포진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들이 장관은 대통령 개인에게 충성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리처드슨의 가르침을 기억하길 바란다. 전 정부 장관들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박만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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