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선이 사라진 마을을 꿰맸다”.. 김영화 작가 ‘검은 그믓: 선이 이은 기억’전

제주방송 김지훈 2025. 7. 2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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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힌 마을의 나무와 풀을 다시 세우는 일이, 선 하나로 시작됩니다.

펜 한 자루, 밑그림 없이 이어진 수천의 선들이 기억의 숲을 이룹니다.

김영화 작가의 개인전 '검은 그믓: 선이 이은 기억'이 31일부터 관객을 '살아 있는 기억' 속으로 불러들입니다.

'맥박' 속 오래된 퐁낭나무는 살아남은 기억의 자화상이며, '기르는 손, 그리는 손'에서는 작가 자신이 유일한 인물로 등장해 기억을 전하는 주체로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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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부터 8월 18일까지,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
그림을 걷는 사람, 펜으로 마을을 되살리는 작가와의 조우
“죽은 풍경을 마주하며, 지금을 사는 법을 묻는 전시”
김영화 作 ‘그 겨울로부터2’


잊힌 마을의 나무와 풀을 다시 세우는 일이, 선 하나로 시작됩니다.
펜 한 자루, 밑그림 없이 이어진 수천의 선들이 기억의 숲을 이룹니다.

누가 그 선을 그었나, 무엇이 그를 걷게 했는지.
그 답은 그림에 없습니다.

대신 그림은 되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이 선을 잇고 있는가?”

2025년 여름,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B1층 제주갤러리에 들어선 이들은 묵직한 침묵과 마주합니다.
김영화 작가의 개인전 ‘검은 그믓: 선이 이은 기억’이 31일부터 관객을 ‘살아 있는 기억’ 속으로 불러들입니다.

■ 펜으로 된 제의(祭儀), 선으로 엮은 4·3의 숲

작가의 작업은 디지털 복제와 속도의 시대에 정면으로 저항합니다.
오직 ‘xeno 붓펜’ 하나로 제주의 밭과 숲, 무덤과 폐허를 수천, 수만의 선으로 그려냅니다.

그 선은 그저 묘사가 아닌, 붙잡으려는 어떤 태도입니다.

대표작 ‘그 겨울로부터’는 270×1,680㎝에 이르는 대작으로, 4·3 당시 이덕구 산전의 겨울부터 6월의 녹음까지를 하나의 계절적 애도로 관통합니다.
6개월간 집요한 시간을 통과해 완성된 작품은 기억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풍경을 품었습니다.

김영화 作 ‘그 겨울로부터1’


■ 인물이 사라진 그림, 그러나 사람이 보이는 이유

작품에는 사람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라진 사람들의 자리는 무성한 풀, 핀 꽃, 곁을 지켜온 나무가 대신합니다.
보이지 않는 이들의 생은, 자연의 형상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맥박’ 속 오래된 퐁낭나무는 살아남은 기억의 자화상이며, ‘기르는 손, 그리는 손’에서는 작가 자신이 유일한 인물로 등장해 기억을 전하는 주체로 서 있습니다.
보고, 외우고, 그려내는 서사화된 애도입니다.

김영화 作 ‘맥박’


■ 선은 증언이 되고, 손은 살아 있는 기록이 된다

작가는 제주의 농부이자 예술가입니다.
밭을 일구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손으로 기억을 묻고 되살립니다.
노동과 그림은 구분되지 않는 삶의 형식입니다.

‘그들의 숲–잃어버린 마을 종남밭’ 역시 그런 방식의 증언입니다.
하루 20시간씩, 무수한 선을 반복하며 그려낸 이 대작은 그 자체로 ‘살았던 시간’의 축적이며, 지금 이 땅 위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고요한 반격입니다.

김영화 作 ‘기르는 손, 그리는 손’


■ 4·3은 과거가 아니다.. 지금도 ‘이름 없는 무덤’이 남아 있다

작가는 과거를 감상하게 두지 않습니다.
그 앞에 관객을 세우고, 그 풍경 속을 걷게 만듭니다.

그림 속 숲과 밭, 폐허의 자리는 70년 전의 것처럼 보이지만, 그 선은 분명히 ‘지금’의 시선으로 그어진 것들입니다.

전시는 단지 기억만을 반추하지 않습니다. 기억을 견디고, 살아내는 방식을 예술로 제안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약 30여 점의 펜화 작품을 공개합니다.
모든 작업은 밑그림 없는 선의 흐름으로 이루어졌고 그 선들이 쌓여 사라진 마을과 나무, 이름 없는 풍경을 되살립니다.

2025 제주갤러리 공모 선정작인 전시는, 제주자치도와 ㈔한국미술협회 제주자치도지회가 주최·주관했습니다.
31일 오후 5시 오픈식을 시작으로 막을 올리며 8월 15일 오후 2시 작가가 직접 전시를 해설하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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