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광장] 몽골에서 실감한 슬로시티의 경쟁력

올여름 늦장마 직전에 몽골의 이흐자사크국제대학과 대구대학교가 우의를 다지는 행사에 다녀왔다. 양 대학의 총장이 참석한 친선 행사는 교정 상부에 위치한 책 읽는 칭기즈칸 동상 앞에서 이루어졌다. 이제는 무력이 아니라 지식으로 세계를 주도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담아 조성했다는 초청대학 총장의 설명이 흥미롭다.
몽골인의 유목생활은 지식정보사회의 주역인 디지털 노마드의 원형이다. 산업사회가 중시하는 규칙과 통제를 탈피해 밀도가 낮은 초원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한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가 지연된 몽골의 지식경쟁력은 약하다. 몽골 정부가 몽골과기대학 인근에 e몽골리아 아카데미와 한국이 지원한 iT park를 설치한 이유이다.
대구대 본진보다 한나절 일찍 도착한 나는 공항버스를 타고 몽골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건물에는 터미널을 비롯해 이마트와 극장도 입주해 있다. 하지만 안내판에 표시된 서점은 사라진 상태였다. 버스 화물칸에 자리를 깔고 쉬는 기사처럼 신발이나 가전을 판매하는 점원도 매장에 평상을 설치해 눕거나 엎드려 손님을 기다린다. 게으른 사회주의 유산이라는 해석이 가능했지만 초원의 슬로시티 라이프를 현대적 상업활동에 접맥한 인간적 장면이라는 재해석을 시도했다.
산업화 초기인 1970년대 한국의 농어촌 상점도 안방과 사무실이 혼재된 사랑방 스타일을 유지했다. 사랑방에 누워 쉬다가 점방에 손님이 오면 중문을 열고 나가 응대하는 방식이다. 유목사회 전통이 온존한 몽골에서 과거 우리의 사랑방 문화를 발견한 것이다. 공식적인 관청화 단계로 이행하는 과도기 사회의 특성이다. 꽉 짜여진 산업사회의 규율은 한국식 고도성장의 비결이다. 하지만 창의성을 중시하는 디지털 시대의 경쟁력은 느슨하게 연결된 업무환경을 요구한다.
친선행사를 마치고 울란바토르시가 주관하는 나담축제를 찾았다. 인파로 정체가 심했지만 축제장 인근 초원의 매력에 빠졌다. 미국의 돔구장을 연상시키는 도시 외곽의 행사장에서 경마, 씨름, 활쏘기 등으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진다. 게르 식당에서 체험한 호떡스타일 고기만두와 은은한 전통주도 풍미가 있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원색의 전통의상과 아담한 현악기는 행사장의 조연이다. 따가운 소나기와 요란한 번개가 축제를 방해했지만 열기와 몰입은 유지되었다.
해발고도 1300m 울란바토르에서 휴양도시 테렐지로 이동했다. 쿤밍의 석림과 레고 블럭을 연상시키는 이곳의 바위산은 경탄을 자아낸다. 더욱이 산의 배경인 초원은 잘 단장된 골프장 페어웨이와 유사하다. 해발 1600m라 여름에도 기온이 적당하고 단기 여행자가 고도를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 애니미즘 전통이 살아있어 기이한 봉우리나 거북바위는 기원의 대상이다.
초원의 주역은 말과 소 및 양이다. 최근에 낙타와 야크까지 추가되었다. 농장에서는 소젖 짜기는 물론 카이막을 비롯해 유제품 시식한다. 말에 익숙해지면 나홀로 승마나 속도감을 느끼는 달리기도 가능하다. 게르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럭셔리 글램핑 시설로 진화하는 중이다. 게르촌 식당에서 양고기로 요리한 허르헉의 풍미에 감동했다.
테렐지의 별밤 투어는 광해를 피해 오프로드의 강자 푸르공을 타고 한동안 이동해야 한다. 소들의 쉼터인 한적한 풀밭에 도착해 돗자리 깔고 누워서 별을 감상한다. 비온 뒤 갠 하늘에 초승달이라 노천극장 화질이 선명하다. 유성과 인공위성처럼 움직이는 물체도 보인다. 순차적으로 푸르공 지붕에 올라가 별과 만나는 장면을 연출한다. 은하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제공한다. 따뜻한 차의 온기에서 진행자들의 배려가 느껴졌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한국의 신세대가 몽골 여행의 한적한 매력에 빠지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