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들, 인력 감축 '성과'로…AI 앞세운 '슬림 경영' 확산

양지윤 2025. 7. 2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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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확산에 대기업 CEO들, 앞다퉈 인력 감축 '전략'
월스트리트 향해 "우린 더 작아졌다" 자랑
美 기업들 잇단 고용 축소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대기업들은 규모를 축소하고 있으며 최고경영자(CEO)들은 이를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한다.”

인공지능(AI)의 확산과 함께 미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 대기업의 CEO들이 인력 감축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인원 축소를 기업 체질 개선의 성과로 내세우며 투자자들에게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조용한 구조조정’ 대신 ‘공개된 자랑’이 된 것이다.

(사진= 픽사베이)
“기업 건전성 표시, 인력 축소로 선전”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CEO들은 기업 건전성의 표시로 인력 축소를 선전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많은 기업들이 AI 시대에 인력 감축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업 경영진들은 과거 구조조정이나 감원을 기업의 위기를 암시하는 신호로 여기는 월가를 의식, 관련 내용을 언급할 때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경영진이 AI 기술을 수용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데 진지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표로 여기는 분위기다.

이는 최근 CEO들의 발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찰리 샤프 웰스파고(Wells Fargo)의 CEO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인력 감축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며 회사 직원 수가 20분기 연속 감소, 5년 동안 총 23% 줄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인원 축소가 아닌, 전략적인 선택임을 강조하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스웨덴의 현금 수송 기업 루미스는 “직원 수를 줄이면서도 성장을 이루고 있다”고 밝혔고, 미국 철도회사 유니언 퍼시픽 역시 인력 감축 속에서도 노동 생산성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밝혔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도 최근 “인력 관리가 매우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시장에 어필했다.

이같은 변화는 노동 시장이 냉각되면서 경영진이 우위에 서게 된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많은 경영진들은 매출 수백만 달러를 올리면서도 소수 인원만으로 운영되는 스타트업 사례를 근거로, 대규모 인력을 자산이 아닌 장애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아마존이 최근 직원들에게 “AI의 영향으로 인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뒤 자극을 받는 분위기다.

커뮤니케이션 회사인 슬론앤드코(Sloane & Co.)의 자본시장 및 전략 자문 책임자인 잭 무케와는 지금은 인력 감축에 대해 거의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인식이 형성되며 사회적 비판도 점차 사라지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비용과 인력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이 이제는 허용될 뿐 아니라, 오히려 투자자들에게 보상을 받는 일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확산에 사라지는 관리자 일자리…“반발 없는 일상 우려” 목소리도

기업들은 그동안 감축, 특히 인력 감축을 투자자들과의 대화에서 숫자 중심으로 다뤄왔으나 최근에는 인력 감축을 ‘변화를 위한 포지셔닝’이라는 성과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수년간 일부 사업을 매각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디지털화하며, 퇴사한 인력을 바로 대체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직을 슬림화해왔다. 브라이언 모이니한 뱅크오브아메리카 CEO는 이제 AI가 은행의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현재 자산관리 부문 직원들은 고객 정보를 검색하고 요약하는 데 AI를 활용하고 있으며, 은행 내 1만7000명의 프로그래머들도 AI 코딩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채팅 기반 AI 시스템 하나는 750명의 직원이 거래 내역을 조정하는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모이니한 CEO는 이 과정을 통해 해당 분야에서 전일제 인력 채용을 줄이거나 인력을 다른 곳으로 재배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올해 1500명 규모 인력을 줄였으며 올해 하반기에 경력 직원 200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AI 확산으로 관리자와 중간층의 일자리 감소도 두드러지고 있다. 인텔은 최근 전체 인력의 15%를 감축하고, 중간 관리자층을 대폭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는 경쟁사인 엔비디아에 뒤처진 실적을 만회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두 달 동안 1만5000명의 인력을 줄였으며, CEO 사티아 나델라는 “AI 중심의 기업 전환이 인적 희생을 수반하고 있다”며 복잡한 감정을 토로했다.

AI가 기업의 고용 구조를 바꾸는 가운데 노동자들은 점점 더 발언권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몰리 킨더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대부분의 AI 도입 분야는 노조 조직률이 낮고, 인력 감축에 대한 사회적 반발도 거의 없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이런 감축이 대놓고 진행되고 있으나 반발도 없고 논의도 없다. 이게 ‘표준’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양지윤 (galile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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