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 껍데기서 영감… 포스텍, ‘강하고 유연한’ 차세대 전자소재 개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웨어러블 기기 적용 기대… 상용화 연구 본격 추진

하지만 지금까지의 소재는 유연하면 잘 찢어지고, 단단하면 쉽게 깨지는 한계가 있었다.

박 교수와 민재민 박사, 통합과정생 이호준 씨로 구성된 연구팀은 전복 껍데기의 초격자(superlattice) 구조를 모방한 신소재를 개발, 전기 저장 성능과 내구성에서 혁신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최근 나노재료 분야의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 온라인판에 실렸다.
전복 껍데기는 수천 겹의 유·무기층이 층층이 쌓여 있어 충격에 강하고 단단하면서도 잘 깨지지 않는다. 연구팀은 이 구조를 모방하기 위해 '블록공중합체(block copolymer)'라는 서로 다른 성질의 고분자를 연결한 특수 소재를 사용했다. 여기에 양전하와 음전하를 동시에 가진 '양쪽성 이온(zwitterion)'을 정교하게 배치, 마치 레고 블록이 스스로 맞춰지듯 질서 정연한 3차원 나노 구조를 구현했다.
특히 연구팀은 양쪽성 이온의 농도와 화학적 배열을 미세 조정해 '프랭크-카스퍼(Frank-Kasper) 상'이라는 복잡한 분자 패턴을 완성했다. 이 구조는 입체 퍼즐처럼 분자들이 규칙적으로 얽혀 있어, 기존의 단순 층상 구조보다 뛰어난 강도와 안정성을 제공한다.
실험 결과, 이 신소재의 유전율은 25로 일반 절연체보다 전기 저장 능력이 약 25배 높았다. 또한 탄성률은 360MPa에 달해 단단함과 유연함을 동시에 갖췄으며, 150℃의 고온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했다. 충격에 대한 내구성 역시 전복 껍데기와 유사하게 우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문정 교수는 "자연이 수억 년 동안 만들어낸 정교한 구조를 실험실에서 구현한 의미가 크다"며 "이번 성과는 차세대 유연 전자소재와 에너지 저장장치 개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글로벌리더연구사업과 나노소재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연구팀은 앞으로 이 소재를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차세대 웨어러블 기기, 고성능 에너지 저장소자에 적용할 수 있는 상용화 연구를 확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