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아수라장, 한국에 총이 풀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트리거')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5. 7. 2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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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한국사회에 총기가 풀리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트리거> 는 이런 일을 벌이는 희대의 빌런이 등장하고, 그걸 막으려는 선한 경찰 이도(김남길)가 대결을 벌이는 액션 스릴러의 장르를 가져왔지만, 총 쥔 자들의 사연들을 통해 그려내는 한국사회의 억압된 분노를 들여다보는 사회극이기도 하다.

또한 출처를 알 수 없는 불법 총기가 택배를 통해 전국으로 배달된다는 <트리거> 의 상상력은 이러한 위험요소들이 너무나 쉽게 구현될 수 있는 한국사회의 연약한 사회구조를 실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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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거’, 총을 든 자들을 통해 그리는 분노의 한국사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만일 한국사회에 총기가 풀리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넷플릭스 시리즈 <트리거>는 그런 상상력에서 시작한다. 회사의 무리한 노동으로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진상규명도 못하게 화장당한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1인 시위를 벌이는 엄마,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미칠 지경에 놓인 고시원 생활 공시생, 범죄 수준의 지독한 학교폭력 속에서 도움 주는 어른 하나 없어 죽고 싶은 학생들, 아버지가 평생 일해 번 돈을 사기로 날리게 된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다 자살한 딸의 아버지... 그들 손에 총이 쥐어진다면?

아마 상상하는 그대로의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트리거>는 바로 그 억눌렸던 분노를 총기라는 트리거가 당기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시청자들은 그 사연을 가진 이들에게 쌓이고 쌓인 감정들을 따라가며 그 억울함에 똑같은 답답함을 느끼다가 그들 손에 총이 쥐어지고 그래서 방아쇠가 당겨지는 그 순간을 기다리게 된다. 그 감정의 카타르시스는 액션 장르의 문법을 따라간다.

<트리거>는 이런 일을 벌이는 희대의 빌런이 등장하고, 그걸 막으려는 선한 경찰 이도(김남길)가 대결을 벌이는 액션 스릴러의 장르를 가져왔지만, 총 쥔 자들의 사연들을 통해 그려내는 한국사회의 억압된 분노를 들여다보는 사회극이기도 하다. 총이라는 구체적인 분노의 방아쇠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구체화되지 않았을 한국사회의 부조리하고 불공정한 문제들이 하나하나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래서 <트리거>의 총기는 한국사회를 가늠하기 위한 실험실의 리트머스지 역할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죽음의 위협 속에 밀어 넣는 가혹한 노동현실이 그 안에 담겨 있고, 지독한 경쟁 사회 속에서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고시로 몰려드는 취업 현실이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지독한 학교폭력에 시달리는데도 이를 바로잡지 못하는 비정한 어른들이 있고, 사기 친 가해자들은 떵떵거리며 살지만 사기당한 피해자들은 괴로움에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있다.

또한 출처를 알 수 없는 불법 총기가 택배를 통해 전국으로 배달된다는 <트리거>의 상상력은 이러한 위험요소들이 너무나 쉽게 구현될 수 있는 한국사회의 연약한 사회구조를 실감하게 만든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택배를 보내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이고, 마음만 먹으면 작은 칩 하나를 심어 도청과 위치추적도 가능하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한때 마약 청정국으로 불렸던 한국이 이제는 어디서든 마약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듯, 우리 사회의 네트워크 환경은 빠르고 효과적인 만큼 위험에도 쉽게 노출되어 있다.

물론 <트리거>는 이러한 현실 비판적인 상상력의 기반 위에 범죄스릴러나 조폭 누아르 같은 장르적 재미 요소들을 빼놓지 않았다. 이를테면 그 흔한 조폭 장르에서 핍박받던 하수인들이 자신들을 심부름꾼처럼 쓰다 버리려는 보스와 맞서는(물론 여기도 총이 개입한다) 그런 이야기가 그렇고, 전자발찌를 찬 성범죄자가 어느 날 총을 갖게 되고 자신의 일상을 감시하는 경찰들을 습격하는 이야기가 그렇다.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총기라는 트리거를 상상해 꺼내놓는 작품인지라 엔딩에 이르러 어떤 시원한 결말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은 작품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분노의 한국사회가 총기의 등장으로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광경은 억눌린 감정을 슬쩍 풀어내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그래서인지 선의 편에 서서 끝까지 인명 하나라도 구해내려 애쓰는 히어로 이도만큼, 지독한 분노의 감정을 끌어내 마구 폭발시키는 빌런들에게도 감정이입이 되는 작품이다.

한국에 총기가 불법인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드라마를 보다 보면 결국 이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사회 곳곳에 손만 닿으면 당겨질 수 있는 무수한 트리거들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액션과 범죄스릴러의 장르적 재미에 빠져들다가도, 문득 씁쓸한 뒷맛을 페이소스처럼 느끼게 되는 이유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다 보니 그 부조리한 현실들이 때론 사건으로 등장해도 크게 놀라지 않게 된 우리들 앞에 이 작품은 그 문제의식의 트리거를 다시금 꺼내놓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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