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수 없어 더 간절한 연주”.. 조용한 울림이 시작된 자리
안소희 작가 대상 수상... 감각의 균열에서 피어난 울림에 공감

같은 연주를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란히 앉아 있지만 시선은 엇갈리고, 감정은 서로 다른 결로 흘러갑니다.
화면 속 인물들은 가까운 듯하면서도 닿지 않은 채 존재하며, 관람자에게 ‘공감’이라는 말의 불완전함을 다시 묻습니다.
단절과 연결의 경계에서 마음의 진동은 잔잔히 퍼져나갑니다.
제51회 제주자치도 미술대전 대상작으로 선정된 안소희 작가의 회화 작품 ‘우리를 위한 연주’입니다. 섬세한 화면과 정제된 정서로 심사위원단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전시는 지난 26일부터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화선지 위의 침묵, 목판 위의 시간, 캔버스 위의 감정까지.
올해 전시는 총 296점의 작품을 통해 세대와 장르, 언어와 질감이 교차하는 제주미술의 다양성과 깊이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상작으로 선정된 ‘우리를 위한 연주’는 조용하지만 강한 정서적 여운을 남기며,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이끌어냈습니다.

■ 고통에서 시작된 그림, 닿지 않음의 미학을 수직으로 세우다
“이 그림은 손의 통증에서 시작됐습니다.”
안 작가는 작업 중 겪은 손의 이상 감각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예술적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 손, 감각과 세상을 잇는 매개가 흔들릴 때 밀려온 고립감과 감정의 비동기, 그 진동이 화면 위에 침전됩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서로 기대고 있으나 시선은 마주하지 않습니다.
엇갈린 눈빛과 공백 속에 놓인 감정의 결핍은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작가는 이를 “서툴고 애틋한 연결”이라 정의하며 “공감은 완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건네는 일이 삶을 이어가게 한다”고 말합니다.
112.1×162.2㎝ 크기의 캔버스에 유화로 완성된 이 작업은, 얇은 감정의 층을 정제된 구도로 조율합니다.
절제된 화면에서 일렁이는 긴장과 정서의 잔물결은 관람자의 내면에 조용한 울림을 남깁니다.
제주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대학 시절 특선 이후 17년 만의 재도전에서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000만 원과 함께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의 개인전 기회가 주어집니다.

■ 한 획이 시를 품을 때.. 김주희 작가, 서예 부문 대상
서예·문인화대전 대상은 한문서예 부문 김주희 작가에게 돌아갔습니다.
왕탁의 시 ‘견예연헌중현주화(見鲵淵軒中玄珠畵)’를 행초서로 풀어낸 작품은 고요한 문자의 흐름 안에 시적 감응과 자연에 대한 존중을 함께 담았습니다.
김 작가는 “서예는 단지 기록의 기술이 아니라 내면과 호흡하는 예술”이라며, “긴 시간 뿌리처럼 가르침을 주신 강창화 스승님께 이 상을 바친다”고 수상소감을 전했습니다.
제50회 제주 서예문인화대전 대상,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등을 거쳐온 작가는, 정제된 기량과 깊은 사유가 하나의 획 안에 어떻게 녹아드는지를 다시 한번 증명해냈습니다.

■ 시간과 감각을 새긴 판화, 관계를 엮어낸 설치.. 우수상, 차유상·김양임 작가
우수상은 판화 부문 차유상 작가와 설치미술 부문 김양임 작가가 나란히 수상했습니다.
차 작가는 목판에 새긴 ‘성산의 아침’을 통해 제주 성산일출봉의 풍경을 조형화했습니다.
“목판은 시간이 쌓이는 매체”라며 “칼의 리듬과 깊이를 조절하며 자연의 숨결을 담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작가는 고무 오링을 반복적으로 엮은 설치작 ‘관계, 길’을 통해, 비가시적인 감정과 인간 사이의 결합을 구조화했습니다.
“계산되지 않은 손의 흐름이 형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관계의 생성과도 닮아 있다”는 작가는, “감정의 파편들이 얽혀 새로운 연결의 길을 만든다”고 설명했습니다.
■ 본선 진출 12인, 제주미술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다
이번 대전에는 도내 43점, 도외 29점이 출품되며 참여 규모가 전년보다 확대됐습니다.
본선에는 대상과 우수상 외에도 진선주, 조성옥, 이세빈, 양혜연, 양준혁, 안성환, 신민정, 박승현, 김현수, 김정운, 김솔래, 김미지 등 12명이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이들은 회화, 입체, 설치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자신만의 시선과 조형 실험을 펼쳤으며, 제주미술의 저변과 밀도를 동시에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양용방 2차 심사위원장은 “출품작들은 기술적 완성도는 물론 동시대 미술이 던지는 질문을 섬세하게 해석하고 있었다”며, “제주미술계의 예술적 성숙과 창작 저력이 고르게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송재경 대회장(한국미술협회 제주자치도지회장)은 “이번 대전은 기교의 경쟁을 넘어, 작가의 태도와 세계관이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 무대였다”고 평가했습니다.
■ 예술은 흐르고, 제주의 시간도 이어진다
제51회 제주자치도 서예·문인화대전 및 미술대전은 8월 17일까지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에서 진행됩니다.
세대를 달리하는 작가들이 전통과 실험, 통증과 감각, 고립과 연결의 언어로 직조해낸 이번 전시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파장을 남깁니다.
정제된 획부터 감각적 조형까지, 각각의 작품은 시대와 호흡하는 예술의 흐름 속에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갑니다.
관람객은 그 시간을 따라 걸으며, 제주의 예술혼이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통과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예술은 흐르고, 그 곁에서 제주의 시간도 천천히 이어집니다.
올여름 감정이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풍경을 찾고 있다면, 어쩌면 그 시작이 이곳이 될지도 모릅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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