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시선서 본 견공… 쓸수록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아”

인지현 기자 2025. 7. 2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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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명랑한 이시봉…’ 이기호
반려견 이름 ‘이시봉’ 소설에 써
인간 비견될 서사 기대했지만
거듭 고민하며 11년 만에 장편
“우리가 동물과 함께 산다는건
힘없는 존재에게 마음 주면서
인간이웃 대하는 감정도 변화”
이기호 작가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에서 이뤄진 인터뷰 중 11년 만의 신간 장편소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윤성호 기자

‘시봉’ 언뜻 들으면 프랑스에서 온 이름 같기도 하지만, 성까지 붙여 ‘이시봉’ 하고 부르면 누구보다 친숙한 이름이 되는 개. 풍성한 흰 털이 비숑 프리제 중에서도 프랑스 희귀 혈통임을 짐작게 하지만, 집에서는 전남 나주시 왕곡면 출신으로 불리는 개. (꼬질꼬질한 모습 때문에 주변에서는 ‘노숙견’으로 취급받는다.) 이기호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문학동네)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개다.

지난 24일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이 작가는 “인간의 시선에서 본 이시봉의 모습이 제목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견주인 이시습의 아버지가 도로에 뛰어든 이시봉을 구하려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지만, 이시봉 자신과는 무관한 얘기다. 그렇지만 이시봉을 둘러싼 인간들의 삶은 복잡하고 피비린내 나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속절없이 진행된다.

이시습은 아버지의 사망 후 술에 빠져 폐인처럼 지내고, 그의 어머니는 이시봉을 냉대하며 상처를 숨기지 못한다. 그러던 중 이시봉을 우연히 보게 된 반려견 교육 업체 ‘앙시앙 하우스’ 관계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시봉이 유럽 왕실에서 기르던 고귀한 혈통의 후예라며 개를 넘겨주면 거금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한다. 알고 보니 앙시앙 하우스 대표인 정채민의 사랑과 욕망, 배신으로 점철된 과거가 이시봉의 선조와 관련이 있었던 것. 이시봉의 혈통을 이야기할 때는 서유럽 왕가의 부흥과 몰락, 프랑스 혁명사까지 거론된다. 이시봉이 집으로 오게 된 과정을 이시습이 추적하는 과정에는 아버지가 타이어공장 노조 간부를 그만두는 장면부터 시작해 곳곳에 한국 사회의 그림자가 끼어든다.

이 작가는 “비인간 중심의 서사를 써 내려가려고 시도했지만 끝내 내가 알게 된 것은 내가 비인간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실뿐이었다”고 말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개에게 인간과 비견될 캐릭터 및 서사를 부여하고 싶었지만, 그 역시 인간의 시선에서 본 것일 뿐이라는 한계에 번번이 부딪혔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은 그가 11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인데, 이러한 고민이 때로 집필을 더디게 만든다고 털어놨다. 소설 속 인물들도 이시봉을 자신들의 서사 안에 포함시켜 이용하거나 이시봉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시봉의 천진난만함에 스스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작가는 “동시에 다른 종과 산다는 것이 인간의 들춰지지 않은 점들을 더 확연하게 보여준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작가가 책 말미 ‘작가의 말’에 남긴 것처럼 “소설은 강아지에 대해 말하기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어도 강아지를 둘러싼 인간의 책임을 묻기에 여전히 유효한 장르”다. 개가 인간의 시선에서 온전히 알거나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끝내 고백해야 하지만, 동시에 이미 사랑하는 존재이자 남은 생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인간의 책임이란 사랑하는 대상이 그저 고통받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설사 잘 모르는 존재라 하더라도 오래 함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책을 읽은 김화진 작가가 “잘 모르지만 좋아하는 이와 더 오래 함께할 용기”를 얻었다고 서평을 남긴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책은 말미에서 이시습의 말을 빌려 우리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꼭 떨어져서 살 필요는 없죠? 그렇죠?”

‘사랑하는 존재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이시봉. 이시봉은 이 작가가 실제로 8년 전부터 키워 온 개 이름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이시봉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어디서 왔을까, 부모는 어디 있을까 등을 생각하기 시작한 게 소설의 출발점”이라며 “처음 소설 시놉시스에서는 이시봉이 죽는 형태였는데, 집에 있는 이시봉을 떠올리니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겠더라”고 웃었다. 더욱이 자녀들의 이름 돌림자가 ‘시’자여서, 이시봉을 집안 막내처럼 키우고 있다고도 말했다.

이시봉은 이 작가의 전작에 여러 차례 등장했던 이름이기도 하다. 전작에서 이시봉은 백수, 불량배, 취업준비생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다. 이 작가는 “소설 속 이시봉들의 공통점은 비루하거나 힘이 없고 혹은 소외받거나 또 한편으로는 천진난만한 친구들이라는 점”이라며 “그런 인물들을 볼 때의 짠함이 우리 강아지를 볼 때 느끼는 마음에 포함돼 있어서 같은 이름을 붙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이시봉 외에도 두 마리의 앵무새와 함께 산다. 그는 “동물과 같이 산다는 것은 힘없고 천진난만한 존재들에게 마음을 주면서, 나아가서는 다른 인간 이웃들을 대하는 감정에도 변화가 생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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