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하와이서 열린 ‘태평양회의’… 사진속 여성은 윤활란[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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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7월 31일 조선일보에 사진 하나가 실린다.
"나이 어린 처녀의 몸으로써 15개 성상(星霜·1년의 세월)을 다른 나라의 객(客)이 되어 설창형안(雪窓螢案·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의 서재와 책상)의 학업을 게을리 아니 하던 윤활란(23) 양은 지난 6월에 미국 테네시주에 있는 밴더삘트 대학 문과를 졸업하고 학사의 명예를 얻었다. 그는 1년 동안이나 눈병으로 공부를 하지 못하였건만 100여 명 학생 중에 넷째 자리를 점령한 것을 보면 그의 재질이 비범한 것을 알겠다. 그는 유일의 동양 여학생으로 동급생과 선생들 사이에 많은 사랑을 받는 동시에 행동이 민첩하고 영리하여 미국에서도 그를 흠모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그의 유창한 영어에는 누가 그를 외국 사람이라 하였으랴? 기자는 어제 오후에 시내 견지동 자택으로 그를 방문한즉 호리호리한 키에 산뜻한 양장을 하고 얼굴에 웃음을 띠며 이렇게 말했다. '그저 반갑다는 말밖에 아무 말도 더 나오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에 본국을 떠났는즉, 그때의 조선 일은 조금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언어까지도 전혀 잊어버렸습니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더 먹어갈수록 고국을 사모하는 마음이 날로 더하여 졸업장을 받자마자 즉시 하와이로 건너와서 태평양회의를 방청하고 2주일 동안을 그곳에서 유숙(留宿)하며 서재필 박사와 신흥우 씨를 만나 조선의 사정을 대강 들었습니다. 그리고 현해탄을 건너 부산에 착륙한 후로는 차창으로 조선의 산과 들을 내다보니 은은히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반가운 조선 형제를 만나서 한마디의 의사도 통하지 못함을 저는 무엇보다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오늘부터 조선말을 힘써 배워 앞으로 여러분들과 조선을 위하여 일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동생들의 손을 붙들고 '내 동생 내 동생' 하면서 열심히 조선말을 배우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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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7월 31일 조선일보에 사진 하나가 실린다. 사진의 주인공은 6월 28일 하와이에서 열린 태평양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송진우(宋鎭禹) 씨, 신흥우(申興雨) 씨, 서재필(徐載弼) 박사, 김양수(金良洙) 씨, 유억겸(兪億兼) 씨였다. 사진 중 유일한 젊은 여자 한 명이 있는데 그는 누구인가? 그에 대한 기사는 하루 전인 7월 30일에 찾을 수 있다.
“윤치호(尹致昊) 씨의 영양(令孃·따님) 윤활란(尹活蘭) 양은 1911년 그가 9살 되었을 때에 미국 선교사 ‘하듸’ 씨를 따라 멀리 미국으로 건너가 ‘켄타키(Kentucky)’주에 있는 밀스여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테네시주 밴더삘트 대학에서 문예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7월 29일에 귀국하여 자택에서 휴양 중이라더라.”
31일 자 신문엔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윤(尹), 김(金) 두 활란(活蘭) 양’이란 제목으로 김활란과 윤활란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이화여대 초대 총장인 교육자 김활란 씨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 널리 알려져 있으니 윤활란 씨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보자.
“나이 어린 처녀의 몸으로써 15개 성상(星霜·1년의 세월)을 다른 나라의 객(客)이 되어 설창형안(雪窓螢案·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의 서재와 책상)의 학업을 게을리 아니 하던 윤활란(23) 양은 지난 6월에 미국 테네시주에 있는 밴더삘트 대학 문과를 졸업하고 학사의 명예를 얻었다. 그는 1년 동안이나 눈병으로 공부를 하지 못하였건만 100여 명 학생 중에 넷째 자리를 점령한 것을 보면 그의 재질이 비범한 것을 알겠다. 그는 유일의 동양 여학생으로 동급생과 선생들 사이에 많은 사랑을 받는 동시에 행동이 민첩하고 영리하여 미국에서도 그를 흠모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그의 유창한 영어에는 누가 그를 외국 사람이라 하였으랴? 기자는 어제 오후에 시내 견지동 자택으로 그를 방문한즉 호리호리한 키에 산뜻한 양장을 하고 얼굴에 웃음을 띠며 이렇게 말했다. ‘그저 반갑다는 말밖에 아무 말도 더 나오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에 본국을 떠났는즉, 그때의 조선 일은 조금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언어까지도 전혀 잊어버렸습니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더 먹어갈수록 고국을 사모하는 마음이 날로 더하여 졸업장을 받자마자 즉시 하와이로 건너와서 태평양회의를 방청하고 2주일 동안을 그곳에서 유숙(留宿)하며 서재필 박사와 신흥우 씨를 만나 조선의 사정을 대강 들었습니다. 그리고 현해탄을 건너 부산에 착륙한 후로는 차창으로 조선의 산과 들을 내다보니 은은히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반가운 조선 형제를 만나서 한마디의 의사도 통하지 못함을 저는 무엇보다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오늘부터 조선말을 힘써 배워 앞으로 여러분들과 조선을 위하여 일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동생들의 손을 붙들고 ‘내 동생 내 동생’ 하면서 열심히 조선말을 배우고 있더라.”
그 후 윤활란에 대한 소식은 신문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데 1927년 10월 9일 신문에서 잠깐 다시 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 문학사 학위를 얻고 돌아온 윤활란 양은 지난 10월 3일부터 용산 철도국에 취직하였다.”
19세기발전소 대표
※ 위 글은 당시 지면 내용을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옮기되, 일부 한자어와 문장의 옛 투를 살려서 100년 전 한국 교양인들과의 소통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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