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이게 바로 우리의 실력!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

한겨레 2025. 7. 28.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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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재영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세상은 너희를 팝 스타로 알겠지만, 너희는 훨씬 더 중요한 존재가 될 거다, 너희는 헌터가 될 거야.”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시작 나레이션이다. 약칭 ‘케데헌’의 세계적 약진이 눈부시다. 한번 들으면 ‘계속 듣게 되고’ ‘저절로 리듬을 타게’ 되는 오에스티(OST)들과, 케데헌에 관한 영상과 뉴스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중이다.

케데헌은 걸크러시 걸그룹 ‘헌트릭스’가 저승사자 보이그룹 ‘사자보이즈’로부터 팬들을 지켜낸다는 케이-팝 애니메이션 판타지다. 권선징악의 황당 서사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시대를 향한 묵직한 상징과 질문을 담고 있다.

먼저 떠오른 한줄 평은 ‘판을 뒤집다’였다. 오랫동안 타자화되었던 젊은 여성과, 팝의 변방 케이-팝과, 비급 퇴마 판타지와, 비주류 장르 애니메이션이 세계 중심에 등판한 것이다. 판을 뒤집기 위해 케데헌이 기도하는 것은 위계화된 이분법의 해체다. 주체/타자, 남성/여성, 진짜/가짜, 원본/딥페이크, 현실/판타지, 악귀(저승사자)/퇴마(무당)…. 이 위계를 해체하려면 타자화된 대상에게 힘을 부여해야 하는 법! 문자에 가려졌던 목소리, 그것도 억눌렸던 여성 목소리를 통해 그 경계를 해체한다. 주술과 혼의 힘을 빌린 가상과 판타지와 애니메이션으로.

케이-팝 문법을 충실히 구현한 음악적 성과는 눈부시다. 중독성 있는 혼종 음악, 칼군무를 자랑하는 춤과 노래, 미소년소녀 그룹, 콘셉트와 스타일 중심의 비주얼, 자신들의 성장 서사, 조직적 팬 문화와 열광 등이 결합된 복합 문화 콘텐츠로서의 면모를 십분 발휘한다. 여기에 오컬트적 코드가 개입되면서 헌트릭스의 춤과 노래는 일종의 리추얼이자 주술적 퍼포먼스가 된다.

총과 칼과 말이 아닌, 음악에 녹아든 목소리와 사랑과 감동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 또한 경계 해체 전략과 맞닿아 있다. 퇴마의 무기로 작동하는 이 ‘안 보이는’ 것들을 시각화하는 초자연적 표식이 ‘혼문’(魂紋·혼의 무늬)이다. 혼문은 아이돌의 퍼포먼스가 팬들의 감정과 영혼에 스며들어 감동을 일으킬 때 무기화된 힘을 발휘한다. 헌트릭스의 루미와 사자보이즈의 진우가 서로의 감정을 나누며 듀엣의 노래를 부르고, 진우가 자신의 영혼을 루미에게 줌으로써 루미가 귀마를 퇴치한다. 사랑의 힘이다. 노래와 목소리, 그리고 사랑과 감동이, 영혼을 구하는 정화의 수단이자 무기이고, 일종의 주술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내가 주목한 것은 노랫말이었다. “힐, 네일, 칼날, 마스카라/ 불꽃만큼 핫한 착장 체크!”, “말할 때는 횡설수설/ 랩할 때는 속사포/ 피눈물로 올라온 이 자리/ 이게 바로 실력/ 굴하지 않는 우리 목소리”, “여긴, 여긴, 우리 손안에 온 세계에 우리 노래가 울려/ 볼륨을 높여, 무너져 내려/ 우리가 보여 줄게/ 이게 바로 실력!” 헌트릭스가 악령들을 물리치면서 부르는 ‘테이크다운’(Takedown) 노랫말 일부다. 캐릭터의 감정과 이야기 전개를 뒷받침하는 노랫말들이 불러일으키는 힘 또한 녹록지 않다.

퇴마를 위한 춤과 노래의 주체가 젊은 여성 3인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 한가운데 목소리가 자리하는데,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용기와 희망과 연대의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최근 20~30대 여성 주체들이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미치는 팬덤 공동체의 영적 연대와 그 영향력은 경이롭다. 응원봉으로 상징되는 ‘지키는 주체’, 응원하면서 ‘지켜줘야 할 주체’ 간의 공생과 공존, 그리고 상호 협력은 올바른 돌봄을 근간으로 하는 팬덤 정치, 팬덤 문화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기세와 연대가 시대 정신이다. 물리적 방패이자 정신적 주문이기도 하다. “우리 음악은 영혼에 불을 지피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주지, 그 유대감으로 최초의 헌터들은 세상을 지킬 방패를 만들었어, 그게 혼문이야.” 이 역시 케데헌의 시작 나레이션이다. 케데헌이 미래의 주체, 10대 여성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삼재였을 때다. 지인으로부터 “옛다, 부적”이라며 ‘머리가 셋 달린 매’와 ‘호랑이 문배화’를 카톡으로 받았다. 너무 귀엽고 예뻐 삼년을 가까이 두고 보았는데, 이제 보니, 딱 케데헌 속 까치와 호랑이다. “고나 비 고나 비 골든/오, 업, 업, 업 위드 유어 보이시스(gonna be gonna be golden/ Oh, up, up, up with our voices​), 영원히 깨질 수 없는”(‘골든’)을 흥얼거리며 지인에게 선물로 줄 케데헌 굿즈, 까치와 호랑이를 구매하는 내 입꼬리가 귀에 가까워진다. 한국 여성이라는 게 요즘처럼 ‘프라우드한’ 적이 또 언제였더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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