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공무원 채용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가 하루 5시간 연습하는 사연은

김혜지 2025. 7. 28.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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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교육청 장애인 오케스트라]
12월 정기 공연 앞두고 불꽃 연습
"일할 수 있는 분야 다양해졌으면"
2일 전북 전주시 진북동 전주학생문화회관 예능관에서 전북교육청 장애인 오케스트라가 연습을 마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전주=김혜지 기자
"오케스트라 단원을 보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선천 장애와 낮은 지능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 달리기 능력을 발견해 미식축구 스타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떠올라요. 합주가 끝난 뒤에도 부족한 게 뭔지 물어보고, 끊임없이 실력을 키우려고 노력하거든요."

2일 전북 전주시 진북동 전주학생교육문화회관 예능관에서 만난 최혁재(49) 전북도교육청 장애인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말이다. 평일 점심시간이 막 끝났을 무렵, 클래식 음악 선율이 건물 밖까지 흘러나왔다.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피아노, 비올라 연주자가 모여 합을 맞추고 있는 것. 지난 5월 26일 창단한 전북도교육청 오케스트라의 공연 연습이 한창이다. 오케스트라는 최 지휘자와 발달장애인 여덟 명으로 구성됐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장애인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전원 공무원으로 채용한 곳은 이 곳이 처음이다. 전북도교육청은 음악 전공자·악기 연주 경력자를 대상으로 서류·실기·면접을 거쳐 시간 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신분으로 단원을 뽑았다. 전북도교육청 측은 "장애인이 재능으로 자립하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고 밝혔다. 이들을 맞이해 2억7,500만 원을 들여 방음 공간을 만드는 등 연습실도 새 단장 했다. 올 연말까지 오케스트라 운영비 3억2,500만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발달 장애인 8명,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채용

2일 전북교육청 장애인 오케스트라가 최혁재 지휘자의 손짓에 맞춰 연주를 하고 있다. 전주=김혜지 기자

국내에서 장애인은 정규 교육과정을 마쳐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전북 지역도 지난해 기준 고등학교 3학년 장애인 가운데 취업한 이는 23명(9.9%)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 신분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이들의 만족감은 컸다. '합격 당시 기분이 어땠느냐'고 묻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너무 행복해서 심장이 쿵쾅거렸다"는 답이 이어졌다.

최 지휘자는 서울대 음대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한 뒤 200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바흐 주간 지휘자, 2007년 룩셈부르크 필하모니의 독일 자선 연주회 지휘자로 선정되는 등 유럽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그는 "제가 이상주의자라서 평소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며 "그 꿈을 이루려면 제가 가진 것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써야겠다고 생각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한 단원들은 장시간 연습에도 지친 내색 없이 연주에 열중했다. 피아노 연주자인 송현종(41)씨는 "저는 1990년(6세)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며 "대학원에서 교회음악과 석사까지 마쳤다"고 또박또박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동생들(단원들)이 잘 따라와주고 있다. 서로 안 맞는 부분은 맞춰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오케스트라 생활에 만족을 표했다. 작은 월급에도 이들은 감사한다. 플루트 연주자 최란(32)씨는 "첫 월급을 받은 뒤 부모님과 조카 선물을 샀다"며 "매달 통장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분야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악보 외울 정도로 연습"… 첫 월급은 '부모님 선물'

이들은 평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3시에 퇴근한다. 하루 5시간 동안 합주를 하거나 방음 공간에서 개인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오는 12월 정기공연 준비가 한창이다. 총 8곡 연주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여념이 없다. 틈틈이 학교, 공공기관 등에서 '찾아가는 작은 음악회'도 열 계획이다.

최 지휘자는 "장애인 연주자들의 특징을 하나 꼽으라면 꾀를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생각만큼 잘 따라오지 못해 잠시 바람 쐴 겸 자리를 비우면 밖에서도 계속 연주 소리가 들린다"며 단원 전체를 칭찬했다. 그는 "'여기까지 해옵시다'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이튿날 악보를 아예 외워올 정도로 준비해온다"고 단원 자랑을 이어갔다.

최 지휘자는 조금 속도가 느리더라도 이들의 애쓰는 연주를 통해 우리 사회의 편견을 깨고 싶다고 했다. "예능관 개소식 날 한 단원의 부모님이 '이제 눈을 감아도 원이 없겠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온 가족의 희생과 노력으로 길러 온 재능인 만큼 더 특별하고 값진 무대가 펼쳐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전주= 김혜지 기자 fo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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