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1400만원 준다 유혹, 두 달 갇혀 맞아가며 일해”

시아누크빌/이기우 기자 2025. 7. 28.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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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조직 탈출 2인
이기우(오른쪽) 본지 기자가 지난 19일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시내에서 현지 범죄 조직에서 활동했던 한국인 A(58)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B씨는 “이 바닥이 좁아 뒤통수만 봐도 알 사람은 안다”며 근처에 놓여 있던 오토바이 헬멧을 쓴 채로 사진 촬영에 응했다./현지 교민 촬영

“도착하자마자 휴대폰과 여권을 빼앗아갔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소리치자마자 중국인 조직원이 전기가 흐르는 삼단봉을 휘둘러 정신을 잃었습니다.”

지난 18일 오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만난 한국인 A(30)씨는 손을 떨면서 이렇게 말했다. 경남 창원에서 왔다는 그는 지난 2022년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에 들어가 활동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뒤 술집에서 요리·서빙 일을 해왔지만,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다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서 기술 없이도 한 달이면 1만달러(약 1400만원)를 벌 수 있다는 광고를 발견했다.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대뜸 캄보디아행 항공권을 보내왔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일거리도 없는데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프놈펜 공항에 마중 나온 승합차는 그를 태우고 40여 분을 달려 창살이 빼곡히 설치된 낡은 아파트 단지로 데려갔다. 그는 “두 달간 감금돼 있었는데, 하루 6시간만 재우고 나머지는 노예처럼 일을 시켰다”며 “한국인들 말고도 중국인과 베트남인, 인도네시아인들이 맞아가면서 일했다”고 했다.

그때 겨우 탈출하고도 그는 3년 만인 최근 다시 한번 캄보디아를 찾았다. “빚만 1500만원이었는데 새 출발을 하고 싶었어요. 감금되든 맞든 ‘일’만 잘하면 돈은 벌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들어가기도 전 캄보디아 시내에서 술을 먹다가 시비에 휘말려 집단 폭행을 당했다. 현지 교민의 도움으로 구조됐다. 정신을 차려보니 여권과 현금도 다 없어진 상태였다. A씨는 “이젠 캄보디아는 절대 안 오겠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정말 성실하게 살아보겠다”고 했다.

캄보디아가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주요 거점으로 떠오르면서 ‘해외 취업’ ‘고소득 일자리’ 등에 혹해 범행에 가담하는 한국인도 덩달아 늘고 있다. 그간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는 연령대는 주로 2030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50~70대도 돈벌이를 위해 캄보디아를 찾고 있다. 돈벌이에 혹해 범죄에 적극 가담하는 연령대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19일 캄보디아 항구도시 시아누크빌에서 만난 보이스피싱 조직원 출신 B씨는 58세였다. 그는 지난 4월부터 두 달간 캄보디아와 베트남 국경도시 목바이에서 ‘광산 투자 사기’에 가담했다. 빨간색의 모조 보석을 최상급 루비로 속여 소셜미디어 생방송에서 보여주고 “이 루비 광산에 투자하면 수익을 나눠주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B씨는 “원래 20년간 강원랜드를 전전한 도박꾼 인생이었다”며 “캄보디아 카지노에서 놀던 중 ‘한 달 일하면 2000달러를 준다’는 말에 혹해 발을 들였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컴퓨터를 잘 쓸 줄 몰라 모조 보석을 씻어 진열하는 단순 노동만 했다. 실적이 없어 월급도 제대로 안 나왔고 여권도 빼앗겨 돌아갈 수도 없었다. 두 달 뒤 조직 윗선에 “제발 내보내 달라”고 일주일간 하소연한 끝에 겨우 나올 수 있었다. B씨는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 봐야 돌봐줄 가족도 없다”며 “카지노에서 소액 도박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다가 죽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현지에 파견된 한국 경찰 영사는 “뇌병변 등 후유증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이들이 휠체어까지 타고 캄보디아에 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봤다”고 했다.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러 캄보디아로 도주하거나, 현지 카지노에서 돈을 몽땅 잃은 뒤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이들도 많다고 한다. 한 현지 교민은 “자의로 (범죄 조직에) 들어갔다 아니다 싶으니 한인회나 대사관 등에 ‘탈출을 도와달라’는 연락이 최근 1주일에 한두 건은 온다”며 “정말 사기를 당해 억울하게 조직에 감금된 이도 많지만 처음부터 범죄인 줄 알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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