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서 본다, 왕가위표 ‘중국판 개츠비’
개방적이던 90년대 중국 모습 그려

“누군가는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았고, 누군가는 한나절에 모든 걸 잃었다.” 1990년대 중국 상하이에선 개혁·개방 정책의 성과가 꽃피기 시작했다. 중국식 자본주의의 실험장이 된 이 도시는 증권거래소가 개장하며 자본이 밀려들었고, 기회를 좇아 몰려온 야심가들로 밤낮없이 들썩였다. 왕가위 감독의 첫 드라마 ‘번화’는 그 시절 상하이 한복판으로 시청자를 데려간다.
‘중경삼림’ ‘화양연화’ 등으로 한국에서도 팬층이 두꺼운 왕가위 감독의 ‘번화’가 티빙·웨이브 등 OTT를 통해 국내에 공개됐다. 이달 초 공개를 시작해 25일 총 30부작 전편이 올라왔다. 199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가진 것이라곤 야심뿐인 청년 아바오(후거)가 의류 사업과 무역업, 주식 시장을 넘나들며 백만장자로 성장하는 여정을 따라간다. 세 여성과의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사랑과 야망 사이의 갈등을 그리며 “중국판 개츠비”로도 불렸다.

상하이 출신 작가 진위청의 동명 소설이 원작. 왕가위 감독은 7년의 준비와 3년의 촬영을 거쳐 작품을 완성했다. 왕가위는 2014년 ‘번화’의 영상화 판권을 사들이며 “내가 홍콩으로 오고 나서 보지 못했던, 형과 누나의 삶을 담고 있다. 마치 잃어버린 가족의 이야기를 거울처럼 마주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상하이에서 태어난 왕가위는 다섯 살에 홍콩으로 이주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한 가족당 아이 한 명만 데려갈 수 있도록 제한했기 때문에 형·누나와 떨어져서 자라야 했다.
왕가위가 태어났지만 자라지 못한 도시, 상하이에 대한 사랑과 향수를 시각화했다. 상하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황금빛 톤의 감각적인 영상미에 정교하게 구현된 세트·소품으로 역동적인 도시를 구경하는 듯한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야망 넘치는 인물들의 심리전과 정보전이 펼쳐지며 극적인 전개가 이어진다. 처음엔 대하 사극풍의 비장한 음악과 예스러운 연출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지만, 보면 볼수록 요즘 보기 드문 중후한 멋에 빠져든다. 고독한 도시인, 눈빛만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는 로맨스, 위트 있는 대사에서 여전한 왕가위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다.
‘번화’는 2023~2024년 중국 방영 내내 OTT 화제성 1위를 기록하며 열풍을 일으켰다. 드라마 속 주요 무대로 등장한 식당은 매출이 두 배 이상 뛰고, 촬영지였던 호텔도 예약이 꽉 찼다. 블룸버그는 ‘번화 신드롬’을 소개하며 “경기 침체와 강화된 국가 통제 속에서, 보다 개방적이고 낙관적이었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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