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보국에서 전지보국으로…포항, 이차전지로 미래 100년 충전

곽성일 기자 2025. 7. 27.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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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양·음극재 동시 생산…2030년까지 14조원 투자 확보
배터리 특화단지·리사이클링 특구 지정 등 전주기 밸류체인 구축
이론 교육·실습으로 첨단소재 실전형 인재양성…도시 재생 박차
이강덕 포항시장과 내빈들이 배터리 선도도시 포항 국제컨퍼런스 2023에서 전지보국을 다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국경제를 향한 경고음이 요란하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은 2020년 세계 9위에서 올해 13위로 밀리고, 잠재성장률은 처음으로 2%를 밑돌 전망이다. 경제 강국 대열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엔진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지만 돌파구는 찾기 어려워 보인다. 밖으로는 미국의 관세 전쟁에다 중국의 기술 굴기(堀起)에 포위된 형국이다. 안으로는 심각한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경제활동인구 감소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에서도 활로를 개척해 온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이 있어 희망을 갖게 한다. 20세기 '제철보국'(製鐵報國) 정신을 '전지보국'(電池報國)으로 잇고 있는 포항이 대표적이다. 도시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인 시대이다.

△글로벌 이차전지 허브를 꿈꾼다.

포항은 철강산업 중심 도시에서 이차전지 소재산업 거점으로 거듭났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고, 양극재·음극재를 동시에 만드는 국내 유일의 도시이다. 2014년 취임한 이강덕 시장이 미래 100년을 내다보고 산업구조 전환을 서두른 덕분이다.

포항시에 따르면 2030년까지 관련 기업 40여 곳이 14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 등 앵커기업에 이어 전·후방 중소기업들이 모여들면서 전주기(全週期) 밸류체인이 구축됐다.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인 셈이다.

이차전지 분야 급성장에 힘입어 포항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껑충 뛰었다. 2017년 18조2천억원에서 2021년 23조7천억원으로 늘었다. 기업 투자 유치는 2014년 5천365억원에서 2023년 7조4천44억원으로 무려 14배 급증했다. 2023년 기준 포항지역 수출 비중은 철강 58%, 이차전지 38.5% 수준이다.

이는 산업구조 전환에 제때 대응하지 못해 침체에 빠진 다른 산업도시들과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이강덕 시장은 "다른 지역들의 GRDP가 하락하거나 정체 중인 가운데 거둔 성과라 의미가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철강산업과 첨단산업이 균형을 이룬, 지속가능한 도시 모델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
이강덕 포항시장과 참석내빈들이 5월 8일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인라인 자동평가센터 착공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왜 이차전지를 선택했나.

이강덕 시장이 취임한 2014년 당시 포항의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다 국내 철강산업이 신흥국들의 거센 도전에 밀리면서 도시는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새로운 산업생태계 구축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2016년 에코프로 그룹이 신규 생산공장을 물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에너지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이차전지산업의 가능성을 알아본 포항시는 끈질긴 구애 끝에 투자를 약속받았다. 그 뒤를 이어 포스코퓨처엠까지 가세하면서 '제2의 영일만의 기적'으로 나아갈 기틀이 마련됐다.

탄력을 받은 포항시는 정부 지원을 연거푸 이끌어 냈다. 2019년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 2023년 '이차전지 양극재 특화단지', 지난해 '기회발전특구'에 지정됐다. 최근 이차전지산업지원특별법안도 발의돼 기대를 모은다.

특히 이 시장이 암 치료 중에도 특화단지 유치에 전력을 쏟은 일은 아직도 포항시민 사이에 회자된다. 그는 그해 5월 서울에서 열린 특화단지 전략발표평가회에 참석해 양극재 글로벌 생산 1위의 입지, 국내 유일의 양극재 전주기 기업 밸류체인 완성 등을 내세우며 유치 당위성을 역설했다.
 
한국배터리아카데미(남부권 교육과정)에 참석한 수료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인재 양성으로 백년대계 완성.

도시는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으면 살아남았고, 변화를 외면하면 도태됐다. '말뫼의 기적'이란 표현으로 널리 알려진 스웨덴 말뫼와 미국 '러스트 벨트'(rust belt)인 디트로이트가 상징적인 곳들이다.

포항의 변신은 도시 재생 모범사례로 꼽히는 영국 셰필드와 닮았다. 주력이던 철강산업이 흔들리면서 쇠락 위기에 몰렸으나 첨단 제조업으로 산업 포트폴리오를 확장, 반전을 이뤄냈다는 점에서다. 인구도 50만 명 안팎으로 비슷하다.

도시 부흥을 목표로 각급 학교와 연계해 인재 양성에 주력한 점 역시 공통적이다. 포항의 경우 포스텍 배터리특성화대학원에서 고급 연구인력을, 배터리아카데미 남부캠퍼스에서 현장인력을 키워낸다. 지역에 있는 선린대, 포항대, 한동대와 흥해공고도 이차전지 관련 과정을 운영 중이다.

배터리아카데미에 참여하고 있는 포항테크노파크 배영호 원장은 "인재 양성은 K-배터리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사례 기반의 이론 교육과 다양한 실습 교육으로 실전형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강덕 포항시장이 3월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차전지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특별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함께하는 변화 도약하는 포항.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 중국 업체들의 약진으로 고전해 온 국내 이차전지 업계에는 올해 하반기 들어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소재 공급망의 탈(脫) 중국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다. 이미 일부 회사의 주가는 바닥을 찍고 반등하는 모양새다.

기업들은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 원가 절감, 기술 혁신 등 자구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음극재를 양산하는 포스코퓨처엠의 경우 미국이 중국 기업들에게 100% 가까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 반사이익도 점쳐진다. 에코프로 또한 유럽·북미 판매량 증가 등에 힘입어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

전국 최초로 배터리산업 전담 부서를 신설한 포항시는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도록 지원에 총력을 쏟고 있다. 우선 용수,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이차전지산업의 특성 때문에 기반시설 확충을 서두르고 있다. 내년까지 양덕정수장 성능을 개선해 영일만산업단지에 용수 6만톤을 공급한다. 블루밸리국가산단에는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 내년까지 전력설비와 송전선로를 교체·보강한다.

2021년 건립된 이차전지종합관리센터 등 핵심 인프라들도 속속 보강될 예정이다. 전기차 배터리 자원순환클러스터는 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인라인자동평가센터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재활용 실증센터 등이 블루밸리 국가산단에 들어선다. 내년부터는 이차전지 오픈이노베이션센터, 고에너지밀도 양극재 제조공정 테스트베드 등이 추진된다.

이강덕 시장은 "이차전지 산업의 지속적 성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만큼 폭 넓은 시야에서 대비하겠다"며 "K-배터리 선도도시를 넘어 글로벌 배터리 허브로 반드시 도약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