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상능마을 “수해로 붕괴된 삶, 다시 설 수 있을까”

이은수 2025. 7.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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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한 번 더 오면 마을 사라질 수도…” 불안감
하루 150여 명 자원봉사자 찾아 일상 회복 지원

무더위가 내리쬐던 주말, 기자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산청군 생비량면 상능마을로 향했다. 도로는 끊기고, 무너진 산 아래로는 논도 사라지고, 붉은 진흙과 나무 뿌리가 엉켜 있었다. 보관창고는 60m 떠내려가고, 평범했던 농촌 마을은 일순간 흙더미 속에 파묻혀 '잊힌 마을'이 되어 있었다.

수백 년을 품어온 고택과 밭, 비닐하우스, 마을회관까지 모두 사라졌다. 주민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삶의 터전은 무너졌다.

◇"어머니가 기적처럼 살아나왔어요"

마산대에 근무 중인 허진하 씨는 이 마을에서 감자와 생강 농사를 짓는 어머니를 두고 있다. 이모도 이모부와 귀농을 했다.

산사태가 덮친 날, 허 씨의 어머니는 이웃 어르신들과 함께 진흙을 기어오르며 탈출했다. 평소 5분이면 도착할 거리였지만, 이날은 사다리를 붙잡고 기어오르기를 반복하며 4시간이 걸렸다.

"수확한 감자는 저온창고에 있었는데, 전기가 끊기고 길도 막혀 그냥 썩을까봐 걱정입니다. 비닐하우스며 밭이며 다 사라졌어요." 허 씨는 고개를 떨궜다. "어머니가 살아계신 것만도 기적이지만, 지금부터가 더 막막합니다."

◇"앞길이 막막합니다" 6년차 귀농인의 눈물

상능마을 일대는 산사태로 마을 전체가 진흙탕으로 변했고, 주민들의 절규와 구조대의 분주한 움직임이 뒤섞인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경남재능나눔협회 소속 안승임 씨(전 봉림동장)와 색소폰 연주자 이다금 씨도 현장을 찾았다.

"구지뽕나무는 뿌리째 뽑혀 있었고, 집터는 무너진 토사에 묻혀 있었어요. 열흘 전만 해도 평화롭던 곳이었는데, 눈앞에서 전쟁터처럼 변해버린 걸 보니 말문이 막혔습니다" 안 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봉사자들은 토사 제거와 구호물품 정리에 동참하려 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오히려 더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다금 씨는 "색소폰 연주로 위로라도 전해드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덧붙였다.

상능마을로 귀농한 지 6년 된 한 주민(홍혁기)은 마을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온 힘을 다해 가꿨던 밭과 집이 다 사라졌어요. 트럭은 커녕 사람도 들어오기 힘들고, 인력으로는 감당이 안 됩니다."

기초적인 생활 기반도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이 마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울어진 건물앞에는 의자 몇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없었다. 그 위에 앉았을 농민들의 웃음소리도, 이야기꽃도 사라졌다.

한때 고단한 하루 끝에 서로 기대 앉아 막걸리 한 잔 기울이던 그 자리엔, 이제 바람만 스쳐 지나간다.

조상묘도 사라졌다. 조성민(진주 거주)씨는 "가족묘 자리가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어요. 주변에도 무덤이 휩쓸린 데가 많습니다. 참담하죠"라고 토로했다.

◇복구는 시작됐지만…

산청군은 복구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정비작업에 나서고 있다. 김기연 면장은 "하루에 15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찾아와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마을들은 점차 일상을 회복하고 있지만, 상능마을만큼은 예외다.

"비가 한 번만 더 오면 마을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짙게 깔려 있다.

마을 전체가 외부와 단절되며, 주민들은 학교에 마련된 임시 거처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날 박완수 지사가 현장을 다녀갔다. 경남도는 이주마을 단지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산사태와 같은 재난이 더는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고령화된 농촌 마을은 인적·물적 대응 모두에 취약하다.

고립 마을 구조체계 구축, 농산물 피해 최소화 시스템, 저장창고 이중 전원 시스템 등 근본적 재난 대응 체계 마련이 절실하다.

고마운 아저씨의 차량도움으로 마을아래로 돌아오는 길. 다리는 끊겼고, 군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일상복귀를 염원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신안면 야정마을 비닐하우스 안은 진흙 범벅이고, 주택 주변은 토사와 뒤엉킨 잔해들로 가득하다. 794mm의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농촌 마을 전체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파괴됐다. 무너진 것은 단순한 땅만이 아니다. 함께 살아오던 공동체의 기억, 일상의 온기,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과 봉사자들은 여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기 위한 그들의 여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허진하 씨는 "이런 재해가 더는 남의 일이 아니란 걸 절감했습니다. 지금은 관심과 도움이 절실합니다. 마을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함께 손을 잡아주십시오."

이은수기자 eunsu@gnnews.co.kr

산청군 생비량면 상능마을 수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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