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 비키니 시티를 구하라

소리 없이 밀려온 구름이 해를 가리자, 주변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곧이어 비바람이 쏴쏴 몰아쳐 햄버거 가게 내 음식과 식탁, 손님까지 날려 버렸다. 가게 밖으로는 땅이 가라앉고, 도시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만화 스폰지밥의 배경이 되는 '비키니 시티' 속 이상기후 이야기다. 비키니 섬의 해저인 이 도시에는 물고기부터 불가사리, 문어, 게, 플랑크톤, 고래와 같은 해양 생물들이 살고 있다.
평온했던 이 도시는 어느 날 비바람에, 또 어느 날은 모래바람에 속수무책 무너졌다. TV에서는 '비키니 시티에 아주 거센 풍랑 주의보가 발효됐다. 모두 창문을 닫고 외출을 삼가해 달라'는 뉴스가 나왔고, 집과 가축이 물살에 떠내려 가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의 바다 주민들도 이런 만화 같은 재난을 겪고 있는지 모른다. 여태껏 지내온 집과 직장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든지, 살기 위해 하루가 다르게 뜨거워지는 고향을 떠나야만 한다든지, 자식을 낳는 등의 활동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인천 서해에서 40년 이상 어업에 종사 중인 어민들은 누구보다 가까이서 '현실판 비키니 시티'를 경험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서 더 이상 낙지와 주꾸미, 소라, 꽃게를 잡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지역에 있어야 할 오징어나 갑오징어와 같은 어종을 마주한다는 그들의 하소연을 통해 바다 주민들의 고통 또한 가늠해보곤 한다.
인천 연안부두 현장에서 만난 한 어민은 바다 위 몇 안 되는 고깃배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25년 전엔 배가 꽉 차 있었어요. 근데 어종이 고갈되니까 지금 요래 다 없어진 거예요. 수온이 변하면서 어종이 계속 바뀌거든요. 앞으로 글쎄요. 이 힘든 상태에서 얼마나 더…"
강현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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