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이 베트남에 남긴 상처 [광복 80주년-다시 평화]

최석환 기자 2025. 7. 2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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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 생존자들은 위령비와 사당을 찾아 향을 피우고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1968년 2월 24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즈엉구 하미마을 학살 사건.

<경남도민일보> 는 지난 3일부터 일주일간 한베평화재단 도움을 받아 베트남 꽝남성과 꽝응아이성 일대를 돌며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들을 만났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그 불편한 진실을 4차례에 걸쳐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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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학살의 기억’ 들어가며

정부 수립 후 첫 '한국군' 파병
민간인들까지 마구잡이 '학살'
생존 피해자 고통 현재 진행형
베트남에 파병됐던 한국 군인들이 1968년 2월 24일(양력)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즈엉구 하미마을에서 민간인 135명을 학살했다. 2001년 한국 월남참전전우복지회 지원으로 하미학살 위령비가 세워졌다. 위령비 뒷면에는 학살 관련 내용이 포함된 비문이 적혀있다. 그러나 한국 반대로 현재 비문은 연꽃 그림으로 덮여있다. /최석환 기자

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 생존자들은 위령비와 사당을 찾아 향을 피우고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기억은 여전하다. 짓이겨진 시신, 울음과 비명으로 뒤덮인 마을, 죽은 척했던 그날의 작은 숨소리. 전쟁은 끝났지만, 악몽은 지금도 피해자 삶을 따라다닌다.

◇한국군, 정부 수립 후 첫 파병 = 한국군이 베트남에 발을 들인 건 1964년이다. 그해 9월 의료부대와 태권도교관단 140명이 1차 파병됐다. 이듬해 2월에는 공병과 수송부대가 주축이 된 2000명 규모 한국군사원조단(비둘기부대)이 파병됐다.

뒤이어 미국의 전투병 파병 요청에 따라 전투 병력이 참전했다. 한국 정부는 1965년 10월 수도사단 맹호부대, 십자성부대, 해병 2여단 청룡부대에 이어 1966년 9월 9사단 백마부대를 각각 퀴논, 캄란, 나트랑 등에 투입했다.

베트남전쟁 1964~1973년 사이 한국군 파병 규모는 32만 명이다. 주둔한 곳은 꽝남·꽝응아이·빈딘·푸옌·칸호아이같은 베트남 중부지역 5개성이다.

한국군은 적군에만 총을 쏜 게 아니다. 군사작전 수행 과정에서 민간인까지 대거 학살했다. 공식 문서로 확인된 사건만 130여 건, 사망자는 1만 명에 이른다.

◇'민간인 학살' 부정하는 한국 정부 = 피해자 증언은 너무나 생생하다. 그러나 참혹한 역사는 오랜 세월 동안 공식 기록에서 배제됐다. 한국 정부는 민간인 학살 자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과도 없고, 피해자 명예 회복이나 인도적 조치도 없다. 공식 조사도 마찬가지다.

1968년 2월 24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즈엉구 하미마을 학살 사건. 한국군 해병대(청룡부대)가 마을에 들이닥쳐 여성과 아이를 포함한 135명을 사살했다. 그 가운데 여성은 98명,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이가 59명이었다.

2023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하미마을 학살 조사를 논의했지만, 위원 7명 중 4명이 "외국인의 피해는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견해를 내세웠다. 이에 "국가가 관여한 중대한 인권침해는 국적을 불문하고 진상조사 대상"이라는 의견을 밝힌 의원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법원은 1심에 이어 올해 1월 항소심에서도 한국 정부가 베트남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생존자들은 지난달 한국을 찾아 진실 규명과 사과를 촉구했다.

◇생존자들 고통은 현재 진행형 = 살아남은 이들 고통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불쑥 떠오르는 총성과 비명, 온몸에 남은 파편, 총상을 입은 채 누워있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베트남 마을 곳곳에는 당시를 기억하는 위령비가 서 있다. 비문은 빛바랬고, 이름 모를 무덤들은 풀숲에 묻혀 있다. 비에 새겨진 이름은 확인된 일부에 불과하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신원을 알 수 없어 기록조차 되지 못한 수많은 죽음도 있다. 하지만 지역 공동체는 여전히 매달 향을 피우며 희생자들을 기린다. 죽은 이들 이름이 곧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다.

<경남도민일보>는 지난 3일부터 일주일간 한베평화재단 도움을 받아 베트남 꽝남성과 꽝응아이성 일대를 돌며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들을 만났다. 한 생존자는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일이지만, 한국에 원한은 없다"고 말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그 불편한 진실을 4차례에 걸쳐 들여다 본다.

/최석환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