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대학교수, 명예직이거나 파리목숨이거나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학이라는 학문의 전당을 이끄는 교수, 나름 선망의 직업이었다.
그러나 대학 진학 인구 감소, 그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이 이어지면서 대학의 정체성도, 교수의 정체성도 마구 흔들리고 있다.
대학이 불안하니 교수는 교단을 떠나고 대학원생들은 연구비도 제대로 지원 받지 못하는 대학교수보다는 기업체 연구소를 더 선호한다.
75%의 대학진학률이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대학에 대한 기대에 걸맞을 만큼 대학교수의 능력과 열정을 담보할 기본적인 지위보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본적 지위 보장과 함께 학교 공영화를

대학이라는 학문의 전당을 이끄는 교수, 나름 선망의 직업이었다. 그러나 대학 진학 인구 감소, 그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이 이어지면서 대학의 정체성도, 교수의 정체성도 마구 흔들리고 있다. 대학이 불안하니 교수는 교단을 떠나고 대학원생들은 연구비도 제대로 지원 받지 못하는 대학교수보다는 기업체 연구소를 더 선호한다.
어느 대학이 시작한 건지 '비정년트랙'이라는 이름도 이상한 유형의 교수직이 생기더니 지금은 대부분 대학이 신임 교수를 주로 비정년트랙으로 뽑고 있다. 이들은 대략 기존 교수들의 60%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그 월급으로는 연구비를 삼기는커녕 생계조차 빠듯하다. 어떤 대학은 정년트랙(원래의 교수 유형을 일컫는 말)보다 비정년트랙 교수의 숫자가 더 많고, 이제 정년트랙은 채용공고도 잘 나지 않는다. 교육부의 방관 아래 비정년트랙이 교수의 일반형태로 자리 잡을 날이 머지않았다.
정년트랙도 비정년트랙도 교수는 원래 몇 년마다 재임용이나 승진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 계약임용제라는 시스템의 무서운 점은 새로 계약을 할 때 종전의 근무조건이나 급여조건을 보장해 줄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교수는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기간제법' 보호도 못 받는다.
연봉제 역시 성과급은 말뿐이고 대부분 대학이 급여 동결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필자의 실상을 밝히자면 2007년에 신규 임용되어 18년이 지난 지금, 총 연봉은 53%만 올랐다. 그런데 그동안 물가는 54% 올랐다. 실질적으로 연봉이 줄어든 셈이다.
구조조정으로 학과가 없어지고 담당교과목도 사라지고 있다. 강의를 할 수 없는 것이 교수 개인의 책임이 아닌데도 대학은 '책임시수'(책임 강의시간수) 미달을 이유로 재임용을 거부하고 해고하고 있다. 어떤 대학은 비용을 줄인다며 학생 수강 최소인원 기준(즉 폐강 기준)을 두 배쯤으로 높여 교수들을 강의시간 미달로 해고할 빌미로 삼고 있다. 그런 처지에 교원노조는 단체행동은 할 수 없다. 파업은 물론 어떠한 형태든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 결국, 대학이 교수들의 집단적 요구에도 귀를 기울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75%의 대학진학률이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대학에 대한 기대에 걸맞을 만큼 대학교수의 능력과 열정을 담보할 기본적인 지위보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계와 생존 외에 사회참여나 공공 참여, 하물며 학내 정책에의 관여와 같은 공적 역할을 생각할 여유도 없는,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게 교수라면 과연 대학교육이 충실하기를 기대하고 사회와 경제가 건실할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해답은 분명하다. 고등교육법을 개정해서 교수가 일정한 업적조건을 충족한다면 대학이 종전 조건 이상의 조건으로 재임용할 의무를 갖도록 하는 지위보장 조항을 넣어야 한다. 교원노조법을 개정해서 교원의 쟁의행위 금지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 물론 파업권을 제한한다는 정도의 절충은 고려할 수 있겠다. 나아가 초·중·고교처럼 대학도 기본 운영비를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물론 사립대학 공영화를 재정지원 조건으로 내걸어야 한다. 공영화는 다양한 차원을 포함할 수 있겠지만 최소한 재정지원율과 공익이사의 비율은 연동해야 한다. 대학 공영화는 단순히 교수들 살리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지방사립대 학생들도 국공립에 준하는 평등한 교육 받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박지현 인제대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