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 칸이 낮이라면 왕소군은 밤이다

이영숙 시인 2025. 7. 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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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책을 쓰고 나면 늘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밥상머리에서'성공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답게 살아라.' 어머니의 그 잔소리가 뼈마디마다 스며들어 조금이나마 사람 꼴을 갖추게 한다. 오래전 무지개다리를 건너셨지만, 아직도 어머니라는 대명사는 내 삶의 인생 그래프에 중요한 해시태그다. 어머니 역시 이 땅에 더 늦게 오셔야 했을 부엉이였기 때문이다.

 시집 『부엉이는 왜 밤에 눈을 뜰까』라는 나, 여성, 노동, 자연, 시인 비주류로 내몰렸던 존재자들이 시간에 따라 그 존재를 드러내는 품은 가치에 대한 재조명이며 주체의 시선을 바꾼 존재론적 해석이다. 예를 들어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의 주인공을 바꾼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야생의 삶』인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라는 주체에서 방드르디(프라이데이)로 시점을 전환하면 사뭇 다른 세계가 보인다. 주체의 시선을 바꾼 순간 문명과 야만이라는 기준도 뒤바뀐다.
 
 무력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지적 요인들은 밤의 세계로 들어가 밤 짐승, 들짐승으로 비주류화된다. 낮의 존재들에게 밤은 쉬는 시간이지만, 부엉이 같은 존재들은 활동하는 시간이다. 시집 제목은 단순한 생태적 호기심이 아니라, 밤을 살아가는 존재자들, 그 안에 깃든 존재론의 성찰이다.

 이전 플라톤 철학이 존재자에 입각한 철학이라면 하이데거 철학은 유한한 시간 속에서 개별자가 품은 존재에 방점 둔 철학이다. 시적 화자가 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류에 의해 삭제되거나 전복된 개별자의 위치이며 그 안에 깃든 존재성이다.

칭기즈칸이 달리던 초원이 낮이라면
흉노로 끌려간 왕소군의 변방은 밤이다

낮의 세계가 못 본 온전한 세계에서 
부엉이는 밤을 안고 눈으로 말한다

내 시선은 밤의 것
지워진 이름과 침묵한 목소리를 
수많은 몸을 읽느라 눈을 뜬다
                     - 이영숙, 「부엉이는 왜 밤에 눈을 뜰까」 부분

 부엉이는 왜 밤에 눈을 뜰까. 물론 생태적인 상식과 과학을 떠난 상징적 의미로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형 질문이다. 몽골 초원의 광활한 벌판에 최대 규모의 단일 제국을 세운 칭기즈 칸의 역사가 낮이라면 잘못된 매개자 화공 모연수에 의해 추녀로 그려진 왕소군이 흉노족 호한야선우에게 끌려가는 길은 밤이다. 그 시원은 에덴동산 아담의 시대, 아담의 성역에서 밀려난 재색을 겸비한 릴리트(Lilith)의 단죄로 출발하여 최초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를 마녀재판에 세운 낮의 권력, 즉 양수들이다. 커다란 눈을 지닌 부엉이나 올빼미, 고양이, 지적 여성들은 밤 짐승, 들짐승으로 음수화되지만, 그 깊은 눈의 지력은 가릴 수 없다.

 지금도 무수한 존재자가 그 고유한 존재성을 왜곡 당한 채 밤의 세계로 밀려나 활동 중이다. 내가 시를 쓰는 일은 이 작은 행성 속 모든 존재자에 깃든 존재를 만나는 과정이며 불필요한 페르소나를 벗고 참나를 찾아가는 비움의 여정이다. 그 길에서 고독과 외로움은 매일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할 불가피한 감정이다.

 다시 만나야 할 존재론, 실존주의자 하이데거는 플라톤 철학이 존재자에 깃든 사상이었다면 하이데거는 그 철학이 망각한 존재론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라는 존재자 안에 즉'누구'라는 존재 의미의 밝힘이다. 부엉이라는 존재자, 그 큰 눈이 지닌 존재 의미를 알아차리는 일이 우주공동체 안의 우리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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