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 한마리에 막힌 수레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일 "12·3 불법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대선 패배에 이르기까지 국민 여러분께 많은 실망을 드렸다"고 사과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일으킨 계엄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막지 못한 당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어 무한 쇄신을 하겠다며 안철수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나락으로 추락한 대한민국 대표 보수 정당이 마침내 퇴행으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뼈를 깍는 혁신으로 당을 재건할 것이란 일말의 기대감을 품게 한 날이었다.
하지만 불과 닷새만에 안 의원이 "당 지도부가 인적 쇄신을 거부한다"며 혁신위원장 직을 던져버리면서 쇄신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다. `말로만 혁신을 외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공화 리셋코리아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긴급토론회에서 확신으로 발전했다. 국민의힘의 대표적 탄핵 반대론자인 윤상현 의원이 주도한 자리였던 만큼 토론의 성격과 방향은 미뤄 짐작할만 했다.
하지만 송 비대위원장은 20여명의 중진의원들과 함께 내용이 뻔한 이 행사에 참석해 든든한 병풍을 쳐줬다. 불과 2주 전에 당을 대표해 계엄은 불법이라며 탄핵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머리를 숙였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더 기괴했던 것은 윤 전 대통령을 추앙하는 계엄 옹호자이자 부정선거 신봉자인 극우 유튜버 전한길씨가 참석해 궤변을 난사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반성과 사과를 할 때가 아니다"며 "(당신들에게) 윤 대통령의 뜨거운 진정성과 구국적 마음이 있느냐"고 질타했고, 참석 의원들은 다소곳한 자세로 경청에 여념이 없었다.
전 씨가 국민의힘에 입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고, `윤석열 어게인'을 외치며 전당대회 개입 의지까지 드러내면서 당은 또 다시 분란에 휩싸였다. 전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을 따라) 10만명이 입당했다"며 "전당대회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겠다"고 호언했다. "그런 후보가 없다면 자신이 직접 당 대표 후보로 나서겠다"고도 했다.
윤희숙 당 혁신위원장이 문제의 토론회에 참석한 안 위원장 등 중견의원 4명에게 거취를 결정하라고 압박하고, 당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전씨를 출당시키라는 주장이 당내서 제기됐으나 대세를 이루진 못했다. 오히려 전씨를 품자는 목소리가 당권 출마자들 사이에서 오간다. 지난 대선 패장인 김문수 전 장관은 그제 전당대회 출마를 알리고는 "당이 용광로가 돼야한다"며 전씨에게 추파를 보냈다. 역시 당권 주자인 장동혁 의원도 "상황이 달라졌다고 그때 감사함을 전했던 분들을 오지 말라고 하는 건 보수정당의 모습이 아니다"며 포용론을 폈다.
이들에게선 전당대회에서 전씨가 이끄는 극우 세력의 지지를 받아 당권을 잡겠다는 구차한 셈법이 엿보인다. 그의 `10만 당원설'과 "평당원을 잔뜩 모아 좌파의 개딸처럼 우파의 개딸을 만들겠다"는 망상에 혹해 "윤석열을 지지하는 후보를 돕겠다"는 시대착란적 발언에까지 귀를 닫은 것이다.
전당대회에서 `당원투표 80%' 룰이 유지될 공산이 높은 만큼 전씨의 당원포섭 공작이 변수가 될 여지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지지 세력의 당권 장악이 현실이 되면 분당은 불가피해진다. 전씨에 기대 당선된 당 대표는 당을 계엄 옹호 극우정당으로 쪼그라들게 한 책임부터 져야 할지 모른다.
전씨 입당에 대해 호들갑 떨 것 없다며 의미를 절하했던 송 비대위원장이 최근 입장을 바꿔 "전씨의 언행들을 확인하고 당헌당규에 따른 적절한 조치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을 믿고 지켜봐 주시라"고 했다. 그가 국민에게 한 이 약속을 저버리면, 전당대회장을 극우 선동가의 놀이터로 내줘 당을 다시 탄핵의 늪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란 치욕적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른다.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사의 지난주 합동 전국지표조사(NBS)에서국민의힘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인 17%로 추락했다. 민주당(43%)의 반토막도 안된다. 참혹한 현주소가 드러났는데도 당은 갈길 먼 수레를 막아선 사마귀 한마리도 치우지 못하고 있다. 107석도 과분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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