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원화가’ 꿈…할 사람은 많고, 문은 좁았다 [6411의 목소리]


강준수(가명) | 게임 원화가
제가 그림 그려서 돈 벌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가 2014년, 당시 열아홉살이었습니다. 다들 무모하다며 말렸죠. 늦었다, 취미로만 해라, ‘환쟁이’는 굶어 죽기 십상이다, 찬성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 걱정들은 모두 틀렸습니다만, 말리는 이유도 충분히 알 수는 있었습니다. 보통 그림이라 하면 으레 미대 입시를 생각하니까요. 입시 준비생은 늦어도 중학생 때부터 미술 학원을 갑니다. 어른들 눈엔 공부 하나도 안 하다가 갑자기 고3 때 서울대 가고 싶다 조르는 철부지처럼 보였겠죠. 여러 우려와 달리 덜컥 정한 진로는 아닙니다. 나름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전 공부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요. 고2 때 공부는 안 하고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에 올릴 소설을 쓰곤 했습니다. 쓰다 보니 뭔가 허전해서 그림도 그려서 같이 올려봤죠. 태블릿도 없어서 연습장에 샤프로 그려서 학교 스캐너로 파일화 해서요. 독자들은 글보다 그림을 더 좋아했습니다. 처음엔 분했습니다. 요리보다 밑반찬이 더 맛있단 평가를 들은 셰프 기분이랄까요. 그러다 한번 제 소설이 문피아 랭킹까지 진입했습니다. 글은 재미없는데 그림발로 떴다는 악플을 보다 번뜩 생각이 들더랍니다. ‘나, 그림에 재능이 있을지도?’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딱 2년만 그림만 그려서 취업하겠다, 그러니 태블릿 좀 사달라. 미대가 아니라 디지털 일러스트로 돈 벌겠다. 아버지는 격렬히 반대했고 어머니는 웹툰을 그릴 생각이냐고 물었습니다. 컴퓨터로 그림 그린다면 다들 그쪽을 생각하니까요. 전 웹툰도 생각이 없었습니다. 웹툰은 한컷 한컷 최적화를 해야 하는데, 저는 그림 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쪽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렸죠. 게임 원화가가 되겠다고요. 게임하는 꼴 보기 싫어서 컴퓨터까지 집에서 없앤 부모님이 좋아할 리 없었습니다. 협상은 결렬됐고 결국 근처 국립대로 가게 됐습니다. 억지로 떠밀린 대학 생활이 즐거울 리 없었고 한 학기가 끝나자마자 입대했습니다. 군 생활 월급을 꾸역꾸역 모았습니다. 선임들 체육복에 그림 열심히 그려주다 제대하고 나니 막막하더군요. 저는 여전히 그림을 좋아하는데, 학과는 하등 상관없는 영어학과고, 제가 사는 지방엔 게임 회사가 없었거든요.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고요.
고민 끝에 세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까지 도달했습니다. 돈 모으기, 포트폴리오 만들기, 그리고 서울로 상경하기. 여기서 가장 난적은 포트폴리오였습니다. 제가 순문학은 잘 모릅니다만, 등단이 바늘구멍 통과하는 수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어려운 등단을 해도 글로 못 먹고산다고 들었고요. 이 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실력까지 도달하기 쉽지 않습니다. 재능에 따라 천차만별이죠. 밑바탕이 있어도 만드는 시간과 공이 또 소비됩니다. 일러스트 학원에서도 보통 취업 포트폴리오 구성에 2년 정도 잡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화가 지망생 중 가장 뛰어난 소수만 게임 회사에 취업해 ‘게임 원화가’가 됩니다. 그조차 대부분 중소기업을 가고, 생각했던 일보다 잡무를 월등히 더 많이 합니다. 참으로 불합리합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소비자가 요구하는 평균 품질은 높은데, 수요는 극단적으로 적고, 공급은 넘쳐나는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숙명이겠지요.
부모님께 지원 안 받을 테니 앞으로 제가 알아서 살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군대에서 모은 돈으로 대학 앞에 원룸을 구했습니다. 기반이 아예 없었으니 당장 일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쿠팡이라도 갔겠지만, 당시 제 지역엔 물류센터가 없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죠. 낮엔 편의점, 밤엔 고깃집 아르바이트 하는 동안 최저임금을 한번도 못 받아봤습니다. 한번은 항의했더니 고깃집 사장님 대답이 똑똑히 기억납니다. “그건 문재인 생각이고 난 최저임금 못 줘.” 돈은 쉽게 모이지 않았고 일년 가까이 그림엔 손도 못 댔습니다. 유튜브엔 밤낮없이 일하면서 자기 계발도 했다는 식의 얘기가 넘쳐나던데 전 안 되더랍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시간과 체력이 없는데 어떡합니까. 여유 자금이 좀 모이자 편의점 알바를 관두고 일러스트 학원을 끊었습니다. 지방에선 오프라인으로 배울 곳이 없어 온라인을 알아봐야 했는데 학원비가 어마어마하게 비쌌습니다. 주 1회 4시간 수업에 월 50만원. 터무니없는 가격이었지만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하루 한번 라면을 먹어야 하는 삶을 버티며 본격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죠. 그러다 마침내 처음으로 그림으로 돈 벌 기회가 왔습니다. 코로나가 왔거든요. 코로나는 오프라인에 냉혹하고 온라인에 한없이 따뜻한 시기였습니다. (계속)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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