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국 산사태 우려 50만 곳…조사는 고작 18%에 그쳐

경기 가평과 경남 산청 등에서 최근 집중호우가 이어지고 산사태가 발생해 24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된 가운데, 산사태 취약지역에 대한 산지 조사가 전체의 18%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되면 토사 유출을 막는 사방시설 설치와 정기 점검이 이뤄지는 만큼, 기후위기로 극한 호우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취약지역 조사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림청 등 관련 기관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 산사태 우려가 있는 산지 50만 곳 가운데 조사가 완료된 지역은 약 9만 곳으로, 전체의 18%에 불과하다. 산림청은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사망 16명)를 계기로 2013년 ‘산사태 취약지역’ 제도를 도입했지만, 10여년간 조사 진척도는 20%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일본은 1982년 산지 전수 조사에 돌입해 2020년 약 66만 건을 ‘토사 재해 경계구역’(산사태로 피해를 볼 수 있는 구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산사태 취약지역은 지번이 ‘산’으로 등록된 곳 가운데, 산사태 우려가 있는 50만 곳을 대상으로 조사한다. 경사도, 토심, 사면 형태 등 산지 특성에 따라 산사태 위험등급은 1~5등급으로 나뉘는데, 1·2등급 가운데 인명·재산 피해 우려가 큰 지역을 중심으로 기초·실태조사가 이뤄지고, 지정심의회를 통해 최종 ‘취약지역’으로 지정된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지정된 취약지역은 3만1345곳이다.
취약지역으로 지정되면 사방댐 등 사방시설이 우선 설치되고, 연 2회 이상 현장 점검도 이뤄진다. 즉 산사태 예방의 첫 단추가 바로 ‘취약지역 조사’인 셈이다. 특히 연속강우량이 200mm 이상, 1시간 강우량이 30mm 이상, 1일 강우량이 150mm 이상일 경우 한국의 모든 산지가 산사태 위험이 있는 만큼, 극한 호우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위험도 분석과 조사는 필수라는 뜻이다.
하지만 조사 진척도가 낮다 보니, ‘취약지역’ 지정 밖에서 산사태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집중호우로 발생한 산사태 1030건 가운데 85%(873건)가 취약지역 외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실태 파악이 부족하기 때문에 취약지역 밖에서 인명피해가 난다”며 “조사를 해야만 취약지역 인근 민가에 옹벽을 설치하는 등 예방 조치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취약지역 인근의 주변 택지나 도로 등은 산사태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한다. 취약지역 지정 대상이 산림청 관할인 ‘임야’로만 한정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지역민들은 안심할 가능성이 크다. 이 전 교수는 “택지는 산사태 위험등급에 포함되지 않아 주민들은 산사태 피해를 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에 경기 가평에서 산사태로 인명피해가 난 캠핑장도 취약지역이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산림청의 관할권 확대하고, 지자체·행정안전부·국토부 등 관계 기관 간 연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산사태로 피해를 볼 수 있는 민가는 지방자치단체가, 농지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도로는 국토교통부가 관리해, ‘행정 절벽’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안영상 전남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산지 접경 주택도 산림청이 관할할 수 있도록 권한을 확대하고 부처 간 유기적으로 협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산사태로 사망한 이는 모두 29명. 산사태로 인명 피해가 잇따르자, 정부는 뒤늦게 산사태 조사 예산을 2021년 4억9천만원에서 2024년 110억원으로 늘렸다. 산림청 관계자는 “2023년 1만8천곳, 지난해 3만곳, 올해는 4만6천곳을 조사하는 등 조사 지역을 늘리고 있다”며 “향후 5년간 생활권 인접 15만 건을 우선 조사하는 등 속도를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부터 유관 부처들이 모인 ‘디지털 산사태 대응팀’을 운영해 위험사면 정보를 공동으로 구축하는 등 부처 간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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