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祈禱) 한다는 것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기도(祈禱)는 소망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실현되기도 한다.
그 결과 더러는 맹신하는 폐단을 불러오기도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기도는 정한수를 떠놓고 잘 되기를 빌던 우리네 선조들의 토속신앙에서부터 비롯됐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도(祈禱)는 소망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큰 힘을 가진 신(神)의 존재를 믿고 바라는 바를 기원한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기도의 은혜를 받고 가피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불가사의한 공력으로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신묘막측한 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실현되기도 한다. 어떤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난다. 그 결과 더러는 맹신하는 폐단을 불러오기도 한다. 어쨌든 기도하는 사람들은 기도의 힘을 믿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기도는 정한수를 떠놓고 잘 되기를 빌던 우리네 선조들의 토속신앙에서부터 비롯됐다. 마을 어귀에는 복을 비는 성황당이 있었다. 그러한 정성을 기복신앙이라고 매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박한 신행생활에서부터 종교는 명맥을 이어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종교와 기도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행해진 문화다. 고대로부터 통치지도자가 종교적 성격을 띠기도 했다. 서양의 역사를 봐도 종교의 수장이 통치하던 시대가 많았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종교는 국교이기도 했었다. 종교적 위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종교적인 힘이 분명 있다고 인정하는 셈이다.
오늘날 다양해진 사회현상만큼 종교도 다양해졌다. 기존의 전통적 종교 외에도 신흥종교들이 등장했다. 믿는 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종교가 곧 진리요 생명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논쟁을 회피한다. 절대적인 관념과 믿음이 강해서 다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린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종교든지 궁극의 목표는 같다고 말한다. 바르게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일부 종교는 배타성이 강해서 타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종교에 의지하는 마음은 하나로 통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기도만 한다고 이뤄질까? 그렇지 않다. 기도하는 마음 못지않게 노력하는 실천이 수반돼야 한다. 불교에서는 말한다. 소를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고 안 먹고는 소의 몫이라고 말이다. 본인의 노력 없이 기도만 한다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불신지옥이라고 말하는 일부 종교관은 모순이 있다. 믿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와 노력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과학은 종교의 세계까지 파고들었다. 불가사의하고 신성한 종교의 세계를 과학의 논리로 밝혀 내는 것이다. 어떤 신흥종교 중에는 외계에서 생명체를 지구에 보내 지구에 생명이 탄생했다는 지론을 편다.
과학에서 말하는 4차원의 세계, 원자론, DNA의 비밀, 체세포 복제, 다중우주론 등은 우리가 알고 있던 종교적 세계와 무관하지 않다. 언젠가는 과학이 종교적 정신세계까지도 모두 밝혀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세계 종교 통합을 주장하는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옛날에는 천둥번개가 치고 자연재앙이 일어나면 신의 노여움이라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자연현상임을 알게 된 것은 과학 때문 아닌가. 과학이 신의 존재를 탐색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기도하는 힘은 인정된다. 그것은 간절한 염원의 발로이며 집중력을 길러 주고 열심히 노력하는 힘을 부여한다. 거기에 묘용한 어떤 위신력까지 가미되기도 한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경건하고 평온하게 살고자 한다. 그리고 바르게 살고자 노력한다. 그것만으로도 인생에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힘은 아닐는지.
Copyright © 기호일보. 무단전재, 재배포, AI학습·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