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딸’ 가진 아빠는 뭐든지 할 수 있지…조정석의 ‘차선 급변경’

갑자기 사람을 좀비처럼 변하게 하는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사춘기 딸 수아(최유리)를 데리고 감염자로 가득 찬 동네를 빠져나가려는 아빠 정환(조정석). 차를 몰아 간신히 좀비 소굴을 벗어났다고 안도한 순간 옆에 앉아 있던 딸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한다. “어어, 너 눈 왜 그래” 호러 공식을 따라가던 장면은 조정석의 어쩔 줄 모르는 말투와 표정을 통해 슬그머니 차선을 변경한다. 아빠의 당황과 절망이 순간 스쳐지나가며 관객의 마음을 철렁하게 하더니 한손에는 자동차 핸들을, 한 손은 ‘입질’을 하려는 딸의 머리를 붙잡고 버둥거리는 절박하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웃음의 기어를 올린다.
30일 개봉하는 ‘좀비딸’은 흥행작 ‘엑시트’(2019), ‘파일럿’(2024) 등에서 ‘코미디 잘하는 배우’로 각인됐던 조정석의 연기 공력을 광폭으로 끌어올려 보여주는 작품이다. 코미디와 신파 사이에서 차선을 시종 급변경하며 달려가는 영화가 탈선하지 않고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한 데는 조정석이 보여주는 탁월한 운전 실력이 있다. 좀비가 되어 마땅히 ‘제거되어야’ 하는 딸을 보는 아빠의 애끓는 심정과 집에 숨긴 딸이 발각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딸을 정상인으로 길들이려고 벌이는 좌충우돌을 따라가다 보면 멀미가 날 법도 한데 더도 덜도 없는 조정석의 연기 덕에 떨떠름한 여운이 남지 않는다.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에 이어 정환의 엄마 역으로 조정석과 두번째 호흡을 맞춘 이정은은 “조정석은 어떤 상황을 페이소스 있게 다루는 데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며 “연기를 할 때 여유가 느껴지는데 애드리브를 잘한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어떤 신을 연기할 때 가볍게 가야 할지 무겁게 가야 할지 본능적으로 잘 아는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조정석은 ‘선을 잘 타는’ 연기의 비법을 묻는 질문에 “본능적인 감각에 의존하는 게 커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특히 코미디 연기는 타이밍의 절묘함이 관건인 것 같다”며 “(예측 가능한 흐름이 아닌) 새로운 호흡을 찾기 위해 탐구를 하는 것도 있고 동료 연기자들과의 앙상블에서 나오는 측면도 크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는 텍스트가 가진 힘이 가장 중요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웃기려고 하면 더 웃기지 않는 게 코미디 연기인 것 같아요.” 카리스마와 흥과 귀여움이 넘치는 어머니 역의 이정은과, 정환과 찰떡 티키타카를 구현하는 고향 친구 동배 역의 윤경호, 그리고 아빠 앞에서 사납게 날뛰다가 할머니의 효자손만 보면 바로 눈을 내리까는 수아 역의 최유리까지 ‘좀비딸’의 절묘한 앙상블은 자칫 너무 안전한 길로 갈 수 있었던 가족 코미디를 뻔하지 않은 즐거움으로 안내한다.

여러번 아빠 역을 했지만 ‘좀비딸’에서 좀 더 절절한 부성애를 연기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절묘한 타이밍’과 관계가 있다. “막 아빠가 됐을 때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딸아이를 보며 부성애가 막 자라날 때 시나리오를 보니 너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적절하고 절묘한 시기에 나에게 들이닥친 작품이었죠.” 촬영을 하면서도 좀비가 된 딸을 보는 아빠의 심정으로 북받칠 때가 많아 감정신이 힘들었다고 한다. “보통은 감정신에서 감정이 충분히 나오지 않아 힘든 경우가 많아서 다른 상황을 상상하기도 하고 여러 방법들을 강구하는데 이번엔 자주 감정이 폭발해서 그걸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오히려 관건이었어요.”
조정석은 ‘좀비딸’이 “종종 잊고 사는 소중함, 자녀일 수도 있고, 친구나 이웃일 수도 있는 누군가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영화는 좀비가 된 수아를 둘러싸고 아빠 정환에서 할머니, 정환의 친구 동배와 첫사랑 연화(조여정)로 시선을 넓혀가며 죽여야 할 어떤 존재가 지켜야 할 존재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보여준다. 가벼운 여름 팝콘영화의 재미를 장착했으면서 동시에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봐라봐야 하는가, 나아가 사회적 약자를 지켜보는 이웃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가볍지 않은 메시지까지 남긴다. 글로벌 누적 조회수 5억 뷰를 기록한 동명의 네이버 웹툰이 원작. 영화 ‘인질’, 드라마 ‘운수 오진 날’ 등을 만든 필감성 감독이 연출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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