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이 만난 '리빙 레전드', 클래식 음악 기록자 브뤼노 몽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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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 참가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자신의 공연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브뤼노 몽생종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리빙 레전드'(살아 있는 전설)라는 문구와 함께 등장한 82세 노장은 예후디 메뉴인, 글렌 굴드,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나디아 불랑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등 20세기를 상징하는 음악가들의 삶과 이야기를 영상과 책으로 남겨 온 기록자다. 특히 미디어 노출을 꺼렸던 굴드와 리히터, 오랜 시간 공들여 남기게 된 불랑제와의 인터뷰는 가치 있고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몽생종은, 메뉴인과 나눴던 심도 있는 대화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남기기 시작했다. 단순한 음악 여정 기록을 넘어 음악가들의 진솔한 공감을 바탕으로 유대감을 형성했고, 그들의 삶과 철학을 밀도 있게 담아냈다. 연주자 본인에게 고통이 됐던 지점까지 정면으로 다룬 그의 작업은 기록물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몽생종이 오랜 시간 공들여 소개한 피아니스트 굴드에 대한 영상과 책은, 굴드를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다큐멘터리이자 전기다. 굴드는 자신의 생각과 음악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강박에 가까운 집착이 있었던 인물이다. 신문에 실린 자신의 인터뷰가 왜곡되거나 의도와 다르게 편집되는 일이 반복되자, 스스로 묻고 답하는 방식의 인터뷰 영상을 제작했다. 레코딩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컸던 그는, 낯선 피아노와 관객을 마주해야 하는 무대를 점차 피하고 스튜디오에서만 연주를 남겼다. 그로 인해 '기인' '괴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지만, 실은 점점 다양해지는 미디어 환경을 의식적으로 차단하려 애썼던 것이다.
몽생종과 굴드의 협업은 1974년부터 시작됐다. 굴드의 삶과 음악 철학을 탐구한 '글렌 굴드의 삶과 시대'에 이어, 그의 고향 캐나다에서의 음악 여정을 보여준 '글렌 굴드: 캐나다로의 귀환', 레코딩에 대한 굴드의 집착을 담은 '글렌 굴드: 온 더 레코드', 의자와 장갑 등 음악 외적인 굴드의 관심사를 다룬 '글렌 굴드: 오프 더 레코드', 굴드 사후의 음악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를 다룬 '글렌 굴드: 히어애프터' 등이 그것이다. 영상에 담지 못한 내용은 '글렌 굴드: 대화'라는 책을 통해 더 깊이 소개한다.


굴드와 리히터의 침묵을 기록한 사람

또 다른 피아니스트 리히터는 자신의 일상과 가족이 관심 대상으로 소비되는 데 큰 고통을 느끼며 침묵을 선택했다. 연주 장소도 도시 외곽의 교회나 학교처럼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곳을 택했고, 예고 없이 연주하고 사라지는 일이 잦았다. 환호하는 청중과 카메라를 피해 다니다 보니 그에 대한 추측과 오해는 오히려 사실처럼 굳어졌고, 고통은 더 커졌다. 오류를 잡기 위해 몽생종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감독은 연주자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카메라를 보이지 않는 곳에 배치해 이야기를 담았다. '리히터: 수수께끼'는 지극히 내향적이었던 피아니스트 리히터의 이야기를 담은 진귀한 다큐멘터리다. 음악에 대한 그의 속내와 철학은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과 답변을 통해 엿볼 수 있는데, 느릿느릿 입을 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리히터의 무거웠던 마음과 음악에 대한 깊은 존중이 담긴 소중한 기록이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 교육자이자 작곡가 중 한 명인 불랑제와의 이야기를 담은 책 '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는 지금도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는 인터뷰집이다. 어쩌면 20세기 말 서양음악의 계보는 나디아 불랑제라는 단단한 나무가 있었기에 미국과 프랑스, 아르헨티나, 러시아에 걸쳐 다양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작곡가이자 지휘자, 오르가니스트이자 음악 이론가로서 불랑제는 창의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정신을 강조했다. 에런 코플런드, 필립 글래스, 레너드 번스타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불랑제의 제자들이 만들어낸 찬란한 음악들은 물론 아스투르 피아졸라의 탱고가 서양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 또한 불랑제의 절대적인 영향 덕분이었다.
몽생종의 다큐멘터리는 메디치 티비(medici.tv) 카탈로그를 통해 만날 수 있다. 무대 뒤 대화와 공연 아카이브가 담긴 이 영상들은, 음악가가 아닌 이들에게도 시대를 초월한 깊은 감동을 준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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