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노동자 쫓아내고 육체 노동자 쫓아가는 ‘피지컬 AI’ [인사이드 아웃 AI]
로봇·자율주행·제조업 현장도 삼킬 것
(시사저널=고평석 (주)엑셈 대표)
무엇이든 둘로 나누어 들여다보면 편하다. 서양과 동양, 우등생과 열등생, 대기업과 중소기업. 이분법이 사실 관계와 맞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이해하기 쉽고 머리를 덜 써서 덜 피곤하다. 직업도 크게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이렇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지식 경제와 물리적 경제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고, 서로의 확실한 영역이 있었다.
2022년 11월 오픈AI 챗GPT 서비스의 출시는 더 이상 지식 경제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줬다. 과거엔 경기 침체로 노동자 감축이 진행되면 블루칼라가 제일 먼저 해고됐다. 이번엔 달랐다. 마이크로소프트, 메타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각각 6000명, 3600명씩 직원을 내보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해고 인원의 40%가 코더였다. IT 붐 시절엔 서로 구하지 못해 안달 났던 프로그래머는 생성AI에 의해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됐다. 오히려 육체 노동은 AI가 넘보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인식마저 있다. 인간에게 쉬운 일이 AI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모라벡의 역설'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상황이었다.

지식에서 물리 영역으로 확장하는 AI
올해 초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에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앞으로 '피지컬AI'가 차세대 AI 혁신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식 경제에 머무르던 AI가 물리적 경제로 영향력을 확장한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다르게 보면 피지컬AI로 인해 이제 지식 경제와 물리적 경제,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없어지는 것이다.
기존의 AI는 디지털 세계에서만 작동했다. 주로 인터넷상에 있는 텍스트·이미지·오디오 같은 디지털 데이터를 통해 학습했다. 학습한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내고, 이 패턴을 바탕으로 다음에 올 내용을 예측해 생성했다.
반면 피지컬AI는 물리적 상호작용이 중심이다. 즉, 카메라·라이다 등 센서를 통해 실제 물리적 세상에서 데이터를 수집한다. 수집된 데이터를 AI 모델로 실시간 분석해 의사를 결정한 후 모터, 로봇팔 등 액추에이터를 통해 물리적 행동을 한다. 예측 불가능한 실제 환경에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판단해 반응할 수 있기 때문에 피지컬AI는 로봇·자율주행차·스마트 팩토리 등에서 활용될 수 있다. 세상의 움직임을 이해해 판단한 후 행동으로 옮기는 AI가 피지컬AI다.
피지컬AI의 핵심도 결국 데이터
피지컬AI의 발전을 위해 센서, 액추에이터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종합적으로 발달해야 하지만, 결국 피지컬AI도 AI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양질의 데이터다. 생성AI는 학습을 위해 인터넷상에 흩어져 있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했지만 피지컬AI는 학습을 위해 수집해야 하는 데이터가 다르다.
첫째, 센서 데이터가 필요하다. 로봇이나 자율주행차가 쉴 새 없이 찍는 주변 환경 모습(데이터)이 필수적이다. 보행자·다른 차량·건물·도로표지판·공장 내 시설·작업자 등의 모습이 필요하다. 주변 물체까지의 거리와 형태를 정확히 측정해 3D 지도를 만들거나 장애물을 감지하는 라이다 센서 및 레이더 데이터도 중요하다. 로봇이나 드론의 자세·속도·가속도를 측정해 균형을 잡거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는 관성 측정 장치(IMU) 데이터도 필수적이다.
둘째, 행동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즉, 특정 상황에서 로봇·기기·자율주행차가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확보돼야 한다. 자율주행차가 어떤 상황에서 핸들을 돌렸는지, 브레이크나 액셀을 밟았는지, 방향지시등을 켰는지 등의 정보가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이 로봇을 직접 조정해 보여준 시범 데이터를 중요한 행동 데이터로 삼기도 한다.
셋째,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중요하다. 실제 일어나기 힘들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경우 컴퓨터 가상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다. 자율주행차에 중요한 것은 차량 사고나 폭우 등 위험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다. 이것을 센서 데이터나 행동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기엔 위험 부담이 크거나 비도덕적이다. 따라서 물리 엔진을 사용해서 실제 물리 법칙이 적용된 가상의 환경을 만들어 데이터를 생성해 해결하는 것이다. 수년 전에 주목을 받고 그 후 꾸준히 연구개발 되어온 디지털 트윈이 피지컬AI 시대에 다시 각광받을 확률이 높아졌다.
넷째, 물리 법칙 데이터가 꾸준히 보완된다. 물리 기반 딥러닝(PINNs·Physics Informed Neural Networks)은 딥러닝이 화두가 된 때부터 꾸준히 연구되어 왔다. 인공신경망에 미분 방정식 형태의 물리 법칙을 직접적으로 통합해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즉, 단순한 데이터로부터 패턴을 학습시키던 기존 AI 학습법과 달리 학습 과정에서 중력, 마찰, 운동량 보존의 법칙 등 물리 법칙을 손실함수에 포함시켜 피지컬AI 결과값이 물리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준다. 물리법칙이 반영되어야 로봇이 넘어지지 않고 걷고 자율주행차가 미끄러지지 않고 멈춘다. 우리 실생활에서 물리 법칙 내에서 움직이는 일들을 AI에게 정확히 가르쳐주는 셈이다. 앞서 말한 시뮬레이션 데이터에도 활용된다. 이러한 데이터들 덕분에 피지컬AI는 완벽하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고 맥락까지 파악하게 된다.
"Your choices. Your actions. That's what makes who you are."(네 선택과 네 행동이 네가 누구인지를 말한다.)
올 7월에 개봉한 영화 《슈퍼맨》에서 지구인 아버지가 슈퍼맨에게 말한 대사다. AI 중 생성AI 등은 선택을 도와준다. 지적인 능력이 돋보인다. 물리 세계를 이해하는 피지컬AI는 행동을 한다. 선택과 행동, 이 둘이 AI로 인해 결합된다. 지금까지 분류상 떨어져 있던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가 하나로 합쳐진다. 지식 경제와 물리적 경제를 결합하는 슈퍼맨과 같은 AI가 등장하게 된다. 때마침 영화 《슈퍼맨》의 내용도 '슈퍼맨이 세상의 희망인가, 위협인가'이다. 영화에서는 숱한 난관 끝에 희망으로 답을 찾는다. 이제 AI에게도 같은 질문이 주어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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