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어 동물…다작 작가 곽재식 “도전이 허용되는 게 문학의 힘”

장르 소설부터 교양까지 다양한 책을 섭렵한 이야기꾼이 최근 도달한 지점은 ‘괴물’에 이어 ‘동물’이다.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이자 글 쓰는 사람의 정체성을 20년간 유지하고 있는 곽재식 작가 얘기다. 최근 <팔도 동물 열전>을 낸 작가를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만났다.
이번 책은 2022년에 낸 <곽재식의 도시 탐구>에서 시작했다. 그는 “전국의 도시를 과학 기술과 관련된 이야기와 엮어서 소개한 책이었다. 자료를 모으다 보니 자연에 대해서도 할 말이 생겼는데, 그 책에는 담지 못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자연, 동물만 엮어서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 아이템으로 메모해뒀다”고 했다.
책에는 고라니, 멧돼지, 여우, 청설모, 너구리, 붉은 박쥐, 담비, 반달곰 등 8종류의 동물이 등장한다. 후보는 10종류 정도 됐지만 일부는 작업 중 최종 탈락했다. 빠진 동물 중 하나는 ‘산토끼’다. 동요도 있고 사람들에게 친근한 동물이지만, 의외로 자료가 없었다. 그는 “지금 국내에서 기르는 토끼는 대부분 굴을 파고 생활하는 유럽 집토끼다. 국내 토끼 연구 자료 다수가 굴토끼에 대한 것이라 산토끼는 책을 쓸 만큼의 얘깃거리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책에서 여러 동물을 단순히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에 비유한다. 성격이 급한 고라니는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인의 성향에, 땅속에 굴을 파고 집을 짓는 다람쥐와 달리 나무 중간쯤의 높은 곳에 주로 남향으로 집을 짓는 청설모는 부동산에 열광하는 한국인의 모습과 닮았다는 식이다. <삼국사기> 등 역사서나 설화를 통해 ‘여우는 왜 미움을 받나’처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동물이 차지하는 위치도 알아본다.
책을 쓰며 마음이 쓰였던 동물 중 하나는 멧돼지다. 그는 “멧돼지는 사실 우리가 고기를 먹으려고 키우는 사육용 돼지와 같은 종이다. 그런데 야생이냐 사람이 키우느냐에 따라서 같은 종의 동물이 삶의 방식이나 사회 속에서의 의미도 전혀 다르다. 그것이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줬다”고 했다. 그는 과거 멧돼지를 소재로 소설을 쓰기도 했다. 소설집 <지상 최대의 내기>에 실린 ‘멧돼지의 어깨 두드리기’다. 저출생 상황에서 멧돼지를 이용해 임신과 출산을 대신해 주는 내용의 소설이다.

지난해에는 <한국 괴물 백과>를 냈다. 괴물은 상상의 영역이고 동물은 실체하는 것이지만, 한국 고유의 생명체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는 듯하다. 그는 “전공이 환경안전공학이라 생태계나 이런 것에 대해서 세미나에 참여할 때도 많고 논문도 많이 읽는다. 관련 정보를 많이 보다 보니 이런 것들을 엮어서 책을 낸다는 건 충분히 할 만한 일인 것 같다”고 했다.
아이템 메모장이 있냐고 묻자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검정색 표지에 가로 5㎝, 세로 10㎝ 정도 되는 작은 수첩이다. 그는 “2009년쯤 독자와의 만남 행사에서 한 독자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쓰시라’며 줬다. 매일 가지고 다닌다. 잃어버린 적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도 안 보여준다. 보물이라면 보물”이라고 했다.
모아둔 아이디어들은 책으로 많이 해소했지만, 여전히 ‘아이템 주머니’에 남은 것도 있다. 가장 오래된 것 아이템은 ‘궁예’에 관한 얘기다. 그는 “후삼국 시대 인물인 궁예를 너무 진지하게 다룬다기보단 이런저런 얘기를 모아서 명소와 일화 전설을 엮은 에세이, 혹은 여행안내류의 작품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선택을 못받았다”고 말했다.
2006년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올린 단편이 MBC와 드라마로 판권 계약이 되며 작품 활동을 하게 됐다. 그는 “누가 찾아주지 않아도 계속 썼다”며 “소설은 쓰다 망해도 혼자 망하지 않나. 그런 도전이 허용되는 게 문학의 힘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쌓인 책이 수십 권이 됐고 현재도 책 세권이 계약돼 있다. 아쉽게도 이번에도 궁예 이야기는 들어가지 않는다. 궁예는 여전히 출판사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고 웃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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