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한 조선 지식인, 이국에서 ‘귀빈’이 되다

김나영 2025. 7. 2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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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문화] 조선시대 표류 지식인층에 대한 표착 국가의 송환 우대 양상①
1967년 출범한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은 제주대학교 최초의 법정연구소라는 위상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학술지 '탐라문화'는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지 선정, 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선정 등 제주에 대한 연구를 세상을 알리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다. [제주의소리]는 탐라문화연구원과 함께 '탐라문화' 논문들을 정기적으로 소개한다. 제주를 바라보는 보다 넓은 창이 되길 기대한다. 연재분은 발표된 논문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AI 생성 이미지.

조선시대 제주도에서 이국(異國)으로 표류해 간 실태를 각종 사료를 통해 '표해(出海)-표류(漂流)-표착(漂着)-송환(送還)'이라는 표류 전말을 역추적하여 그 발생 규모와 빈도를 시계열적으로 파악한 결과, 366건·4,442명[사망자 761명]이 해난사고와 직면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중 82.9%에 해당하는 3,681명은 해난사고로 말미암아 이국[일본·유구·중국·대만·안남] 등지로 표류해 그곳 국가들로부터 구조·송환되어 본국으로 살아 돌아왔음이 확인되었다. 단편적으로 잔존해 있는 역사적 기록에 의거한 통계이지만, 80%를 웃도는 높은 생존율을 본다면, 전근대 시기 조선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상호 호의에 입각한 표류인 송환체제가 작동되고 있었음을 살필 수 있다. 

제주와 육지를 왕래하다 이국으로 표류해 간 선박 내에는 다양한 목적을 지닌, 여러 계층이 동승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관인(官人)·선비 등의 지식인층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중앙으로부터 파견 또는 교체되어가는 관리를 비롯해 개인적 사유로 인해 제주-서울을 왕래하다 표류를 당하였는데, 그 구체적 표류 전말을 살필 수 있는 사례는 총 16명(건)에 이른다. 

이들 16명의 표류 지식인층들은 일본, 중국, 유구, 대만 등지로 표착되었고, 본국으로 송환되는 과정에서 표착해 간 국가들로부터 여타 동승 표류인들과는 다른 특별한 대우를 받는 등의 유사한 양상을 포착해 볼 수 있다. 즉, 표착 국가들은 다른 동승 표류인들과는 차별적으로 특별 호송하여 별도의 숙식 등의 후한 대접과 물품을 지급한다든지, 전별연(餞別宴) 등의 잔치를 베풀어 준다든지, 혹은 이들의 송환 절차를 신속하게 이행한다든지 등의 모습을 보인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제주도에서 이국(異國)으로 표류해 간 사례 가운데에서도 표착 국가가 표류인들을 송환하는 과정에서 유독 지식인층에게만 행해졌던 우호적 태도와 후한 대우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동아시아 국제관계 속에서 행해진 표류인 구호·송환체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지식인층의 표류 실태

조선시대 제주도를 중심으로 발생한 366건의 표류 사례를 기반으로 해당 선박의 승선 인원을 살펴보면 출항목적에 따라 그 인원수에 차이가 있긴 했지만, 적게는 5.5명에서 많게는 30.8명이 승선하여 평균적으로 1척의 선박에 13.7명 정도가 탑승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특히 공무(公務)를 주요 목적으로 출항할 때의 승선 인원이 평균 30.8명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로 진상 및 공물 상납을 위해 출항할 경우가 20명, 상매를 위한 경우가 15.8명으로 약 20명에 가까운 숫자의 인원이 함께 바다를 건넜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고기잡이 및 해산물[해초] 채취를 목적으로 한 경우에는 위의 인원보다 약 1/3~4이 적은 5~6명 정도가 승선하고 있다. 

이렇듯 제주도와 육지를 왕래하는 장거리의 항해 가운데에서도 이전곡 및 곡물 납부 등의 공무를 위한 항해나 진상물 상납 및 교역 물품을 적재하여 상매를 목적으로 한 항해에는 20~30명 가량의 인원이 승선하였으며, 제주도 연근해로의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행해지는 낚시 및 해산물 채취를 목적으로 할 경우에는 5~6명의 소수 인원이 승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탑승 인원에 비례해 운항되는 선박의 크기 및 규모 또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동일 선박 내에 승선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의 단일목적만을 지니고 출항한 것이 아니라, 흥판(興販, 장사)·진상 및 공물 수송·관리 부임 혹은 체임(遞任)·이전곡 운송 등 다양한 목적을 지닌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동승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요컨대 제주도를 왕래하다 이국으로 표류해 간 선박 내에는 여러 계층 가운데에서도 중앙으로부터 파견 또는 교체되어가는 관리나 개인적 사유로 제주-서울을 왕래하는 관리·선비 등의 지식인층도 승선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 중 관찬 사료 및 자신 혹은 제3자에 의해 쓰여진 표류기록(표해록 포함) 등을 통해 확인 가능한 사례는 총 16명(건)에 이른다. 

이 16건에 해당하는 지식인층이 표류해 간 곳을 국가별로 살펴보면, 일본 6건>중국 3건>유구 3건>대만 1건 순이며, 표류하다 실종되거나 사망한 사례도 3건이나 된다. 또한 표류한 지식인들 중 관리의 직급별 빈도수를 살펴보면 전 정의현감(前 旌義縣監)·대정현감(大靜縣監) 등의 종6품의 관직 5건>선비 3건>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군관(軍官)·서원(書員)·전 주서관(前 注書官)[승정원의 정7품 관직]·전 충장장(前 忠壯將)·전 오위장(前 五衛將)·가선대부(嘉義大夫)·절충장군(折衝將軍)이 각 1건으로 파악된다. 

13건(16건 중 실종·사망 3건 제외)의 표류 지식인층들은 관직 및 표류일시·표착 국가에 있어 상이하지만, 이들의 표류 전말을 담은 기록들을 들여다보면 본국[조선]으로 송환되는 과정에서 표착해 간 국가로부터 여타의 동승 표류인들과는 다른 우대(優待)를 받는 등 유사한 양상이 발견된다.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1. 사료
『朝鮮王朝實錄』, 『備邊司謄錄』, 『承政院日記』, 『漂人領來謄錄』, 『漂民被仰上』, 『濟州啓錄』, 『漂海錄』(崔溥), 『知瀛錄』, 『海外聞見錄』, 『耽羅見聞錄』, 『增補耽羅誌』, 『漂海錄』(張漢喆), 『乘槎錄』(崔斗燦), 『漂海日記』(梁佑宗),『燕巖集』(朴趾源), 『心齋集』(金錫翼)

2. 저서
송정규 著, 김용태·김새미오 譯, 『해외문견록』, 휴머니스트, 2015.
정운경 著·정민 譯, 『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 휴머니스트, 2008.
池内敏, 『近世日本と朝鮮漂流民』, 臨川書店, 1998.

3. 연구논문
김나영, 『조선시대 濟州島 漂流 ․ 漂到 연구』, 제주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7.
정성일, 「漂流記錄을 통해서 본 朝鮮後期 漁民과 商人의 海上活動 : 『漂人領來謄錄』과 『漂民被仰上帳』을 중심으로」, 『國史館論叢』 제99집, 國史編纂委員會, 2002.

이 글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학술지 '탐라문화 제74호(2023)'에 '조선시대 표류 지식인층에 대한 표착 국가의 송환 우대 양상-제주도에서 이국(異國)으로 표류해 간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실은 논문은 [제주의 소리]에 싣기 위해 정리 요약한 것이다.

김나영

제주특별자치도 학예연구사로 재중 중에 있다. 제주대학교 사학과에서 석사학위 논문으로 「조선시대 제주지역 포작(鮑作)의 사회적 지위와 직역변동」이란 글을 쓰면서 제주도의 지리적 특수성에 기인한 제주인들의 삶의 모습에 주목하였고, '조선시대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해양사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연구를 확장시켜 「조선시대 제주도 표류(漂流)․표도(漂到) 연구」란 주제로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저로는 ▲15~19세기 표류 제주인의 출신지 휘칭(諱稱) 양상, ▲조선후기 제주인의 고표(故漂) 양상, ▲조선시대 제주인의 표류 발생 배경과 실태, ▲조선시대 제주도 표류 · 표도인을 통한 정보 · 지식의 유입 양상, ▲19세기 제주 표도 여송인(呂宋人) 송환을 둘러싼 동아시아 교류 양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