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송은혜의 단 한편의 앙상블, 그리고 두 편의 ‘크리스틴’
단 한 편의 앙상블, 그리고 두 편의 ‘크리스틴’. 뮤지컬 배우 송은혜의 짧지만 빛나는 경력이다. 연세대 성악과를 나온 후 팝페라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뮤지컬 ‘엘리자벳’ 앙상블로 2019년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몇번의 오디션을 더 봤지만 너무 떨어서 제 실력을 발휘 못 하고 두려움만 늘었다. 그러다 ‘오페라의 유령’(2023) 공연 소식을 듣고 “이건 무조건 도전하자”라고 용기를 냈고 뮤지컬 여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오페라의 유령’ 여주인공 크리스틴에 선발된 것이다.

무명 성악가 발탁은 ‘오페라의 유령’ 전통이기도 하다. 2001년 국내 초연 당시에도 유학을 준비 중이던 서울대 성악과 출신 김소현이 전격 발탁된 바 있다. “첫 공연은 사실 기억이 안 나요. 너무 떨려서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다 끝나고 ‘다행이다’는 안도감만 있었습니다. 정말 다행이었던 게 앙상블이 힘들기로 유명한 ‘엘리자벳’에서 진짜 너무 많이 배운 게 있어서 큰 도움이 됐죠.”
부산·서울·대구에서 1년여에 걸친 초장기 공연은 송은혜에겐 배움의 시간이었다. 송은혜는 “처음 맡은 주연이라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버거웠다. 또 다른 크리스틴 언니(손지수)도 처음이라 서로 의지를 많이 했고 외국 스태프분들이 대사 톤, 표정, 심지어 손동작까지 하나하나 알려주셨다”고 말했다.
장기 공연 후에는 한참을 쉬어야 했다. 몸도 마음도 탈진해서 “이젠 무대에 서기 싫다”는 생각마저 했을 정도. 차차 건강이 회복되면서 다시 무대의 소중함을 깨닫고 만나게 된 주인공이 최근 공연 전 장르 흥행 1위(공연예술통합전산망 6월 통계)인 뮤지컬 ‘팬텀’의 크리스틴이었다.

연달아 두 작품 모두에서 크리스틴을 연기한 송은혜는 ‘오페라’와 ‘뮤지컬’로 차이점을 설명했다. “‘오페라의 유령’에선 진짜 오페라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크리스틴이 노래를 부를 때 정말 노래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가만히 냅둘 수 있었거든요. 동작도 크지 않았고요. 반면 팬텀의 크리스틴은 노래하면서 악보도 팔아야 하고, 움직임도 많고, 대사도 많고, 정말 많이 움직여야 돼요.”
같은 줄거리지만 팬텀을 대하는 크리스틴의 마음도 서로 다른 결이 느껴진다. “‘오페라 유령’의 크리스틴은 너무 수동적이에요. 라울한테도 끌려가고, 유령한테도 끌려가고, 자기가 갈피를 못 잡는 것 같고…. 성격 자체도 서정적인 면이 너무 강해요. 반면 ‘팬텀’의 크리스틴은 밝고 당차고 긍정적이고, ‘ENFP’ 같은 느낌이에요. 외유내강이고요. 결국엔 팬텀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이라 그런 면이 저랑 닮았다고 느꼈어요.”

반면 ‘오페라의 유령’은 노래들이 성악과라면 무난히 부를 수 있는 편이나 내면 연기를 많이 해야 했다는 설명이다. 어느 크리스틴을 더 좋아하는지에 대해선 “두 작품이 다르지만, 결국 너무 따뜻하고 사랑이 많은 존재라는 점에서는 같다. 어릴 때부터 사랑을 많이 받아서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함께 무대에 서는 팬텀 역의 박효신·전동석·카이와 무대 호흡에 대해선 “같은 팬텀이라도 무대마다 느낌이 다르다. 매 공연마다 새로운 느낌”이라면서도 이렇게 표현했다. “박효신 팬텀에겐 모성애가 생겨나요. 제가 보듬어주고 싶은 팬텀이고 전동석 팬텀은 에로스적인 느낌이 있어요. 감정이 진하게 다가오는 팬텀이에요. 카이 ‘박사님’은 진짜 선생님 같아요. 극 중이지만 크리스틴을 지도하는 장면에선 진짜 레슨받는 느낌이에요.”
대학 졸업 후 팝페라 무대에서 주목받다가 단숨에 대형 뮤지컬 주연으로 등장한 경력에 밝고 구김살 없는 모습이 더해지면서 “큰 어려움 없이 쉽게 풀린 것 같다”라는 질문을 하자 송은혜는 “정말 쉽지 않았다. 인생이 파란만장했고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다. 대학교 이후로는 자취방 값까지 온전히 제가 모든 걸 다 벌어서 감당해야했다. 그 부담이 어렸을 때부터 너무 컸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목소리로만 벌고 싶다’는 생각에 다른 알바는 관두고 “나 좀 불러달라”고 주위에 알리면서 ‘넬라 판타지아’, ‘타임 투 세이 굿바이’ 등을 여러 장소에서 불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현타(현자타임)’가 와서 남들 밥 먹을 때 노래 부르는 건 그만두었다고 한다.
‘팬텀’ 초연 10주년 공연에서 자신의 진가를 입증한 송은혜는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을 묻자 앙상블로서 바라보기만 했던 ‘엘리자벳’, 그리고 ‘글린다’를 꼽았다.
“엘리자벳은 성악과를 나온 배우들이 다 하고 싶어 하는 역할일 거예요. 그냥 언젠가 꼭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성격이 또 엄청 막 개구쟁이 같은 성격이 있어요. 그래서 ‘위키드’의 글린다도 저랑 되게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것도 너무 해보고 싶고. 그렇다고 ‘주연만 하겠다’는게 아니라 저한테 이미지가 맞으면 뭐든 하고 싶어요.”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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