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풍뎅이가 해충으로 돌변"...기후변화 속 병해충 대공습 시작됐다[Deep&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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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의 약 3만 4,000㏊ 논에 벼멸구가 대발생해 2,300억 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 벼멸구는 매년 6월부터 중국과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에서 기류를 타고 날아오는 해충인데, 규칙적 방제로 피해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에는 발생 면적이 30배나 증가했다. 가을까지 이어진 이례적 무더위로 증식 속도가 빨라지고 개체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올해도 전년 대비 유입 시점이 빨라져 농촌진흥청이 조기 방제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원래 아열대 지역에서만 발생하던 농작물 병충해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갈색날개매미충, 꽃매미, 미국선녀벌레 등이 한국에 정착해 산림은 물론 도심의 정원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 이들 병충해는 중국 남부와 동남아에만 있던 것들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위세를 떨치는 등검은말벌도 인도가 고향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농진청은 최근 중국을 휩쓸고 있는 사막메뚜기, 대나무메뚜기 등의 중국 내 이동 상황마저 주시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크게 낮아진 지리적 장벽을 뚫고 머지않은 미래에 메뚜기 이름이 붙은 해충의 국내 상륙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토마토뿔나방, 열대거세미나방 같은 검역 해충에도 비상이 걸렸는데, 이런 검역 해충이 국내에 상륙한다면 단순한 농작물 피해를 넘어 농산물 수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농촌진흥청과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중국에 인접한 서남해안 도서 지역과 농경지에 트랩을 설치, 기류를 타고 날아오는 해충을 감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후 변화, 병해충 지도도 바꾼다
지구상 모든 생물은 다른 종들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먹이를 두고 경쟁하거나 영역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종에 기생해 양분을 빼앗거나 서로 타협해 공생하기도 한다. 이처럼 모든 생물은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먹이사슬과 공생관계 속에서 나름의 역할과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를 차지하고 공존한다. 사람에게는 매우 성가신 모기나 파리, 치명적 독을 가진 말벌과 뱀조차도 나름의 존재 이유와 역할이 있다. ‘병해충’이란 존재들도 오래전부터 생태계를 구성해 온 생물들이다. 다만 인간 입장에서 다른 종에 해를 끼치거나 질병을 유발시키는 생물군을 통칭해 그렇게 부를 뿐이다.

하지만 근래 급격한 기후변화는 수천 년 이 땅에서 농사를 짓던 우리 선조들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른 패턴의 병해충 발생을 초래했다. 아열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국내에 천적이 없는 해충이 기류를 타고 유입되거나, 토착 곤충들이 기후 변화로 대발생하며 해충으로 돌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 도시권에서 대량으로 발생해 불편함을 끼친 러브버그도 기후변화에 따른 생육환경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 곤충, 해충으로 변했다
식물이나 곤충이 증식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온도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이때 필요한 누적 온도를 적산온도(積算溫度·생육하는 동안 매일의 평균온도를 합산한 값)라고 하는데, 발육에 필요한 적산온도는 종마다 다르다. 곤충이 알에서 깨어 성충이 되는 데 필요한 적산온도 도달 기간은 고온기일수록 짧아지고, 증식속도도 빨라진다. 기온이 높을수록 짧은 시간 내에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갈색여치, 풀무치, 다색줄풍뎅이 등 과거엔 개체수가 적어 피해를 주지 않던 곤충이 최근 해충으로 돌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양하루살이, 깔따구처럼 도시 생활에 불편함을 주기도 하는 곤충들의 대발생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남부지역 산림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소나무재선충 피해 역시 고온으로 증식과 활동반경이 커진 매개충 ‘솔수염하늘소’가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기후 변화 적응, 생존이 달린 문제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온난화 속도는 늦출 수 있겠지만, 과거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최근 이상기상 현상은 이전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극한값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기후변화, 특히 온난화에 따라 변하게 될 환경을 예측하고, 적응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농업 분야에서는 기후 적응력이 크고, 병해충에 저항성인 품종을 지속해서 개발하고, 병해충 발생을 조기에 예측해 방제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기후변화는 해충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에 의한 병 발생 양상도 바꾸고 있다. 국내에 없던 세균병인 과수화상병이 2015년 처음 발생해 국내 사과와 배 농가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피해 면적이 2020년 394.4㏊까지 빠르게 확산한 이유도 매년 반복된 불규칙한 기상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당국과 과수농가의 방제 노력으로 감소 추세에 있지만 언제라도 대발생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위험한 병이다.
최근 농산물 수급 불안의 주요 원인을 살펴 보면 병해충 발생 때문인 경우가 많다. 지금은 수요보다 생산이 많은 쌀이지만 최근 큰 피해를 주었던 벼멸구나 곰팡이병인 이삭도열병이 이번 홍수처럼 예상치 못한 대규모 자연재해와 겹쳐 대발생한다면 국가의 식량안보와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최근의 기상 여건에서는 상정이 가능한 시나리오다. 기후변화와 연계된 병해충의 발생 증가는 이제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달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서효원 농촌진흥청 차장, 전 농림축산검역본부 식물검역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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