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산마을학교제비골 어린이 배움터…지리산 피아골 연곡분교 [문화발원지 남도학교 기행]

#지리산 피아골 유래
피아골은 자칫 피아(彼我)의 대립, 그로 인한 갈등이나 폭력, 더 나아가 살육이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떠올리기 쉽다. 해방 이후 좌우 대립, 여순 항쟁, 지리산을 배경으로 하는 한국전쟁 국면에서 빨치산의 활동 등 그러한 역사적 사연들이 적지 않은 지역이다.
그보다 먼저 일제에 대항한 의병장 고광순 등의 의병 항쟁의 무대이기도 했다. 또한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이기도 하였으니, 특히 그는 피아골 단풍빛을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피아골은 '피처럼 붉은 단풍 골짜기', '피와 아우성이 넘치는 골짜기'라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남북으로 펼쳐진 지리산의 양대 계곡 중 하나인 피아골에서 연곡사를 거쳐 반야봉으로 오르기 직전 마을 이름이 '직전(稷田)'이다. 예로부터 피아골 주변에서는 경작이 쉽지 않았다. 벼농사를 비롯한 논농사는 거의 불가능하였다.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 이래 조, 콩, 수수와 함께 주식으로 재배되었던 작물의 하나가 벼과 식물인 피(稷)이다. 피는 생명력이 매우 강하여 척박한 산자락이나 계곡에서 흘러든 찬물에서도 잘 자라면서 생육 기간이 3개월 정도로 짧은 편이다. 현미보다도 비타민 등 영양도 풍부하다고 알려졌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오곡 중의 하나로 대접받았으나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에는 식량 증산을 위해 농작물에서 점차 배제되었다.
연곡사 절 식구들과 근처 마을 주민들도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하여 연곡사와 인근 야트막한 곳에 피농사를 일구었단다. 잡초 피가 아니라 삼으로 분류되는 식용피였을 것이다. 그곳 마을 지명이 피밭, 즉 '직전'으로 부르게 된 유래이다.

#연곡사 삼홍루
내가 사랑한 남도의 절집을 꼽으라 하면 해남 달마산 도솔암, 강진 무위사, 피아골 연곡사 등이다. 인위적 꾸밈이 덜 하고 주변 지형이나 산수풍경과 잘 어울려 옴팍하게 들어앉은 모양새이다.
개인의 안목에 따라 다르겠지만 연곡사의 볼거리는 동승탑와 북승탑, 얼마 전 들어선 보제루(삼홍루)와 주변의 남새밭이다. 승탑(부도)은 그 절집과 관련이 있는 승려의 사리 등을 존치한 추모 조형물이다. 국내 승탑으로는 연곡사 승탑(그 중에서도 동승탑)과 화순 쌍봉사의 철감선사 승탑을 최고 걸작으로 보고 있다. 균형감과 섬세한 석조 기법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하나를 더 꼽으라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염거화상(廉巨和尙)탑이다. 진흥법사 염거화상은 한국 불교에서 최초로 선풍(禪風)을 일으킨 장흥 가지산문의 제2대 조사로서 중국에서 처음으로 남종선(南宗禪)을 들여와 가지산문을 열고 조계종의 종조가 되었던 도의선사(道義禪師)의 제자이다.

절집의 누각은 대체로 법요 집회나 강당으로 쓰이면서 주변 풍경 조망이 가능하도록 조성된 공간이다. 연곡사 일주문과 천황문을 지나면 보제루가 있다. 본당인 대적광전을 등지고 피아골 풍경을 건너다 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이 보제루의 뒤쪽 편액이 삼홍루(三紅樓)이다. 한얼 이종선(1953~ )이 썼다. 잘은 모르지만, 서체는 피아골 물 흐름을 닮은 듯 유려하다.
삼홍루는 삼홍소(三紅沼)라는 시에서 딴 것이다. 나이 60이 넘은 남명 조식(曺植, 1501~1571)이 천왕봉 아래 산천재에 기거할 무렵 가을날 피아골을 오르면서 지은 시이다. 직전마을 위 선유교에서 계곡을 따라 2km가량 오르면 표고막터와 대피소 사이 물웅덩이가 있는데 물에 비친 이곳 단풍이 특별히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한시지만 어렵지 않으니 원문을 옮긴다.
山紅水紅人心紅(산홍수홍인심홍)
昨來春今過滿秋(작래춘금과만추)
何時何處想如夢(하시하처상여몽)
가을에 벗과 함께 지리산에 오르니
산빛, 물빛, 사람의 마음조차 붉구려
봄이 어제인가 싶더니 오늘은 늦가을이라니
언제 어디서든 꿈처럼 생각나리

#제비골 배움터, 토지초등학교 연곡분교장
피아골 계곡을 내서천(內西川)이라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명이 된 내서리라는 마을에서 따 온 것이다. 내서천 이전의 계곡 이름이 궁금하다. 반야봉에서 출발한 내서천이 연곡사 앞을 지나 당치마을 쪽에서 흘러드는 당치천을 만나면 유속이 제법 느릿해진다. 이 인근에 상가나 숙박업소가 들어선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예로부터 하동 가는 길 목아재나 삼도봉 가는 고개인 당재로 넘어가는 길손이 묵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 지형이 비교적 평지여서 지명이 평도마을이다.
이곳에 폐교가 된 초등학교가 있다. 1935년에 토지공립보통학교 부설 내서간이학교로 개교한 이래 약 1세기 동안 피아골 학동들의 성장을 담당했던 학교였다. 1996년 토지동초등학교로 독립 운영되었다가 토지초연곡분교장을 거쳐 2022년 제94회 졸업생 1명을 배출한 것을 끝으로 2023년부터 문을 닫았다.
졸업생은 모두 1,294명이었으며 이후 피아골 어린이들은 토지초등학교에 통합되어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연곡분교의 폐교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해주신 장옥순, 정태훈 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들의 헌신을 꼭 기록하고 싶었다. 학교가 무너지면 마을이 사라진다고 한다.
나는 산골학교 예찬론자이다. 교육은 경제적 효용성으로 설명이 안 되는 무궁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다들 잘 알 것이다.
#이름이라는 묘약
풀이었던 것이 이름을 불러주면 비로소 꽃이 된다고 한다. 이름을 지어 부르는 데는 이름을 짓는 마음의 융숭함뿐만 아니라 부르면서 울려 퍼지는 공명 효과가 있다. 예전 성정이 순하디순한 제자가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가출을 한 것이다. 연유를 물으니, 부모가 고르고 골라 '순하고 덕스럽게 살아라'라는 의도로 작명한 '순덕(順德)'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순덕? 좋기만 하구만! 어떻든 본인이 싫다는 데야...... 결국 나는 '개명 이유서' 같은 것을 법원에 제출하였고 재판을 거쳐 '혜리'로 개명하였다. 이후 그 아이는 '순하고 덕스러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토지면 파도리에는 대체 누가 살고 있을까
전라남도의 중남부 해안을 정남진(正南津)이라고 한다. 강원도 정동진이 관광지로 활성화되자 장흥지역에서 2005년부터 내세우기 시작한 일종의 미투 마케팅 전략이다. 국토지리원의 유권적 판단에 의하면 정남진의 정확한 위치는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 사금마을(경도 126도 59분 04초)이라고 한다. 2011년부터는 급기야 인천광역시 경인 아라뱃길 주변에 정서진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 하고, 정남진 장흥에 가서는 지역색이나 정치 편향 언사를 공공연히 드러내면 안 된다. 서울 용산이 있고(용산면), 경기도 안양이 있으며(안양면), 부산광역시가 있다(부산면). '유치하다'는 술어를 아무 데서나 발설하면 곤란한 경우도 한다. 유치면이 있기 때문이다. 인근 강진에서는 1년 365일 리히터 규모 5.0 이상의 강진(强震)이 들끓는다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뜻밖에 하멜이 있고, 대구광역시가 있다(대구면). 전국적으로 가장 소규모일 것이라 추정되는 면 단위 행정구역인 청정지역 옴천면도 있기도 하다.
어감으로 보자면 구례군 토지면 토지리, 파도리 같이 자연주의적 지명은 큰 호감을 준다. 그래서 궁금했던 것이 그곳 주민들의 표정과 지명 유래였다.
파도리(把道里)는 일제 강점기에는 면사무소가 있었던 토지면의 중심지였다. 토박이 이름은 바다리였다. 섬진강을 따라 하동을 거쳐 남해로 나가는 배를 대는 마을로서 배대리에서 변형된 지명이었을 거란다.
한자 표기로는 소교(所橋), 해교(海橋) 혹은 봉교(蜂橋, 붐비는 다리) 등이었다. 모두 '다리(橋)'라는 의미가 포함한 걸로 봐서 배가 닿고 배를 묶어 둘 수 있는 다리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예전에는 섬진강의 수량이 훨씬 많았던 시절 이곳 내륙 마을까지 돛단배가 드나들었음도 짐작할 수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재의 파도리가 되었다.
#파도초등학교 얘기
얘기가 조금 엇나가지만, 우리가 연상하던 바다의 파도는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가면 만날 수 있다. 그것 지명 또한 파도리(波濤里)이다. 갯바위나 자갈이 많아 파도가 그치지 않은 곳으로 해안 절벽이나 파식대나 해식동굴 형성되어 있는 해안 지형이다. 파도가 드세어서 물길 건너기가 어려웠다(難行梁)는 기록도 있다.
이곳의 파도초등학교는 1962년 모항국민학교 파도분교장으로 설립되었다. 소원면 파도리에 개교한 것이었는데 1976년 3월 파도국민학교로 단독 운영되면서 절정기를 지나 2003년에는 소규모학교 시범학교로 운영되는가 싶더니 10년이 지난 2013년 3월에 끝내 폐교되고 말았다.
이 학교 운동장에서 힘차게 공을 차면 바다 백사장까지 날아갈까. 수업 중 교실에까지 촤르륵 하는 파도 소리가 들렸을까. 현지 확인은 못했지만 이런 동화 같은 상상을 했던 곳이다. 실제로 경남 남해의 대안교육 특성화학교인 상주중학교는 상주해수욕장과 근접하기에 아침이면 교직원과 학생들이 솔숲과 해수욕장 백사장 걷기를 하면서 마음을 해수욕한다는 얘기를, 파도 소리만큼이나 청정하게 들었다.
#우리도 서머힐이 필요하다
피아골 학생들이 다니는 섬진강변 토지초등학교에 들렀을 때 일순간 세상이 아름다웠다. 크레파스 칠을 해놓은 듯한 알록달록한 색감의 건물, 피아노와 동화책이 비치된 야외 휴게 공간, '우린 너무 몰랐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여순항쟁을 추모하는 조형물 그리고 학교 마당 빗질을 하고 계시던 나긋한 목소리의 시설 관리 도우미 선생님. 학년별 학생은 7명 내외로 모두 41명이다.
세상 자유롭고 행복한 학교의 상징, 잉글랜드 동부 서퍽(Suffolk) 주 레스턴에 위치한 서머힐 학교(Summer Hill School)에 두 차례 들른 적이 있다. 전형적인 시골 풍경, 관리가 덜 된 듯한 교내 시설, 그곳에 왜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고 학생들의 지원이 끊이지 않을까.
학교가 도회지 문명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인간 본연의 품성과 잠재력을 깨우고 소통과 공동체성을 일으키는 교육, 우리 학교의 일부에서는 이런 교육이 지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충북 은여울(초중고)학교와 같은 강변학교, 서머힐이나 솔터초등학교와 같은 산마을학교를 다시 제안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