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60살→70살로…‘선물과 형벌 사이’ 백세시대를 맞이하는 법 [.txt]

“우리 잘못하면 100살까지 살지도 몰라.” “아, 끔찍하다….”
또래와 대화할 때 나오는 흔한 푸념이다. 내 교제 범위가 좁아 그런지 몰라도, 거의 한 세기를 살 수 있다니 신난다는 사람을 아직 못 봤다.
초고령사회에 대한 암울한 시나리오가 팽배한 현실에서 수명 연장은 달갑지 않은 선물 같다. 아픈 부모를 볼 때면 나도 늙으면 저렇게 힘들어질까 싶어 두려워지곤 한다. 사실 부모의 노년을 참고하는 건 현재의 나에게 별 의미가 없다. 피할 수 없는 노쇠를 겪게 되긴 하겠지만, 기대 수명이 10년 단위로 거의 2년씩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길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100살이 된 나를 상상하려 해도 잘 그려지지 않는데,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까. 경영학자인 린다 그래튼과 앤드루 스콧이 함께 쓴 ‘100세 인생’은 “장수가 저주가 아닌 선물이 되도록 하려면 인생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지” 구체적 상상을 돕는 책이다.

인생 재설계가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100살까지 사는 시대에 ‘교육-일-은퇴’의 3단계 삶을 살고 60~65살에 퇴직하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재정적으로 불가능한 주문”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도 노후를 위해 계속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늙기도 전에 지치는 기분이다. 그 이유를 저자들은 “3단계 삶을 기본으로 둔 채 일하는 2단계를 길게 연장한다고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지금 하는 일을 계속 연장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사는 것 자체가 지겨워”질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책에서 저자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교육-일-은퇴’라는 3단계 삶의 제약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수명이 연장된 시대에는 “다양한 경력을 쌓을 수 있고 휴식과 과도기도 있는 다단계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사실 100살을 사는 시대에, 심지어 에이아이(AI·인공지능)가 인간의 일을 잠식하는 시대에, 왜 평균 수명이 60살 안팎이던 시대와 똑같은 이정표를 따라 살아야 하는지 의아할 때가 있다.
왜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대학 준비를 시작해야 하나. 청년들이 더 배우고 탐색 기간을 충분히 가진 뒤 노동시장에 천천히 진입하면 안 될까. 아이들을 낳고 양육할 때는 남녀 모두 유연한 노동시간을 갖는 게 기본이 될 수는 없을까. 퇴직 이후에 몰려 있는 여가를 몇달, 몇년으로 쪼개어 일하는 중간중간에 쓸 수는 없나. 진로를 검토하고 재설정할 안식년을 모두가 갖고 중년 이후 다시 대학에 가서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익히는 배움의 과정이 보편화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오래 일하다 70~80살에 서서히 은퇴하는 방식으로 삶의 이정표가 새롭게 쓰여야 하지 않을까.
늘어난 수명에 맞게 생애 전반을 재설계해야 할 텐데, 과거와 똑같은 획일적인 학령기, 20대 초반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고등교육, 여전한 연공서열 질서, 은퇴 이후 대책 없는 퇴직자들을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저자들이 말하는 다단계 삶의 보편화는 사회가 바뀌어야 가능하겠지만, 개인은 길어진 삶을 살아내기 위해 각자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다단계 삶을 설계할 때 필요한 무형 자산으로 저자들은 “생산 자산(기술과 지식), 활력 자산(우정과 사랑, 건강), 변형 자산(자기 인식과 개방적 태도 등)”을 꼽았다.
중년기에 새로운 기술과 전문 지식을 배워 생산 자산을 쌓고, 친밀한 관계와 건강을 핵심으로 하는 활력 자산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건 뭐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다.
눈에 띈 것은 변형 자산이다. 저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변형 자산은 “과도기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능력을 고양하는 자산”이다. “미래의 ‘가능 자아’를 개발하고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어가려는 자기 인식,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적 태도,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참여하는 역량” 등이 변형 자산의 주요 내용이다. 한마디로 ‘전환의 기술’이라 해야 할까.
다단계의 삶이 되면 과도기도 많아진다. 저자들은 과도기를 매끄러운 이행의 시기처럼 묘사했으나, 내가 경험하고 관찰한 바 삶의 전환을 꾀하는 과도기는 되레 시련의 과정에 더 가깝다. 여러개의 자아가 가능성을 띠면서도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고 정체성이 불확실한 시기라 혼란스럽기 일쑤다.
과도기에 우리는 내면 탐구가 아니라 작은 실험들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배울 수 있다. 새로운 ‘일’을 발견하려면 심사숙고보다는 행동에, 계획보다 실행에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한다. 세상을 관찰하고 자신에게 의미 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탐색과 실험을 해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과도기를 겪는 과정에서 특히 중요하다.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사람들은 일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은퇴와 같은 사건을 겪거나 역할이 바뀔 때 정체성의 위기를 느낀다. 그럴 때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과도기를 거치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문제는 과도기를 감당할 만한 능력과 기술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도 “과도기를 만들어낼 만한 소득과 교육을 갖춘 사람에게만 장수라는 선물이 돌아갈 위험이 크다”고 우려를 표했다. 새로운 상상, 정부의 관심이 중요한 이유다. 단순한 노후의 연장이 아니라 길어진 수명에 맞게 생애 이정표와 사회적 규범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어쩌면 인공지능 개발보다 이게 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김희경 |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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