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가 온다, 사이렌을 울려라

이송희일 영화감독 2025. 7. 2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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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의 견문발검]

[미디어오늘 이송희일 영화감독]

▲ 7월5일 YTN '미국 텍사스 100년 만의 기습 폭우… 어린이 등 참변' 보도 갈무리

천 년에 한 번 올 법한 대홍수가 美 텍사스 과달루페 강을 덮친 7월4일 아침, 컴포트라는 강변 마을에 사이렌이 다급하게 울려퍼졌다. 동심원을 그리듯 길게 퍼져나가는 3분짜리 경보음. 재난문자를 확인하지 못한 주민들에게 즉각 대피하라는 최후의 경고였다.

그 사이렌은 2024년에 설치됐는데 그날 처음으로 울렸다. 과달루페 강은 '홍수 골목'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물재난에 취약한 지역이다. 여기에 기후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홍수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고 있었다. 새로 설치된 사이렌은 그에 대한 발빠른 대처였다. 덕분에 2200여 명의 주민들이 대피했고 한 명의 피해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인근의 커 카운티에선 사이렌이 울리지 않았다. 10여 년 전부터 사이렌 설치 노력이 번번히 좌초됐다. 비용과 소음 때문에 일부 주민과 공무원이 반대하는가 하면, 텍사스 주에서도 두 번에 걸쳐 예산 편성을 거절한 터였다. 결국 그날, 캠핑하던 어린 소녀들 수십 명을 비롯해 116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대 피해 지역이 되고 말았다.

사이렌의 유무가 운명을 가른 것일까? 비록 재난 자체를 막지 못하지만 사이렌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예방책이다. 기후위기 시대, 전 세계에 사이렌이 속속 설치되는 까닭이다. 전국적 시스템을 갖춘 스위스에서부터 히말라야 고산과 아프리카 우간다에 이르기까지 홍수 대응 사이렌이 등장하고 있다. 그에 따라 세계 옥외 사이렌의 시장 규모가 2025년 1억7000만 달러에서 2035년 2억8000만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 와중에 홍수 참사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유일한 대응이라곤 백악관에 목사를 불러 기도를 올리며 “홍수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는 변명을 늘어놓는 것뿐이었다. 물론 우리는 텍사스 홍수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다.

▲ 7월1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주 커빌의 힐 컨트리 청소년이벤트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flickr

화석연료 기업들로부터 천문학적인 대선 후원금을 받은 트럼프가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외치며 모든 규제를 철폐하고 석유와 가스 추출을 독려하는 그 잔인한 화석 파시즘이 홍수의 근본 원인이다. 또 국립기상청과 해양기상청에 대한 인력과 예산 감축이 재난을 키운 결정적인 조건이다. 무려 예보 인력 600명을 감축했다. 텍사스의 주요 관련 직책이 죄다 공석이었다. 그뿐 아니라 인력 축소와 지출 삭감 때문에 연방재난관리청의 시스템도 거의 기능 부전 상태였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대기 중 수증기는 7퍼센트 증가한다. 지구온난화를 넘어 이제 지구열대화에 돌입한 2025년 7월, 미국 텍사스는 물론 중국, 인도, 파키스탄, 브라질, 그리고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가 홍수 재난에 휩싸인 이유다. 트럼프 같은 위선적인 정치인과 화석연료 자본들만 이 간단한 인과관계를 모른 척한다. 예측불가능의 재난이니 기도를 올리는 게 전부라는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을 뿐이다.

자명하게도 텍사스 홍수 참사는 온실가스로 인한 돌발 홍수, 그리고 기업과 부자의 이윤을 위해 사회의 공공성을 산산조각 분해하는 권위주의 정부. 바로 이 두 개의 더러운 손이 연출한 복합재난이다.

그러면 기후 재난을 대응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컴포트 마을이 그랬듯 사이렌을 설치해야 한다. 다시 말해,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 동안 성장과 축적을 위해 부단히 망가뜨려왔던 공공성의 회복이 시급하다. 상하수도, 도심 녹지, 수문 시설 등 재난 인프라를 구축하고 나아가 보건, 식량, 돌봄, 교통 등 필수서비스의 공공성을 높여 사회 전반의 기후 회복력을 구축해야 한다. 그동안 공공 지출을 줄이고 부자 감세와 공공재 민영화를 통해 불평등을 양산해 온 신자유주의, 그리고 축적에 매달려야만 삶이 존재한다는 성장주의의 망령과 결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에너지 부문의 공공성을 높여 신속하게 화석연료를 근절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전략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전환을 민간자본에게만 맡겨놓으면 전환의 속도가 느릴 뿐 아니라 기업 주도의 전환 과정에서 지역 사회와 노동자들이 배제될 수밖에 없다. 특히나 한국처럼 햇빛과 바람 에너지의 90퍼센트 이상을 민간자본이 독점하는 기형적 구조는 또다른 공공성의 파괴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왜 태양과 바람이 민간자본의 소유가 되고 시민들이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가?

▲ 7월24일 오전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와 정의로운 전환을 통한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 2025 공동행동(약칭 정의로운전환 2025 공동행동)이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을 위한 5만 국민동의청원 운동에 돌입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홈페이지

비상사태는 당연히 비상하게 대응해야 한다. 지금 진보진영이 추진하는 '공공재생에너지법' 청원운동이 그래서 중요하다. 신속한 전환과 정의로운 전환, 정곡을 찌르는 해법이 담겨 있다. 청원운동이 한참 벌어지는 동안에도 여봐란 듯이 광주며, 산청이며, 충남이며 한반도 도처에 홍수 재난이 사정없이 몰아쳤다.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당장 사이렌을 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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