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럽다'던 시(詩)의 역습...그 시를 몸에 새긴 독자도 생겼다 [이소호의 어쩌다 젠Z]
편집자주
자칭 ‘라스트 아날로거’, 88년생 호돌이 친구 이소호가 Z세대의 감각 속으로 들어가 본다. 그들은 짧고 빠르고 감각적인 언어와 문화를 만들었다. 기존 세대의 기준을 뒤흔드는 혁명 세대이기도 하다. ‘힙한 타인’이면서도 함께 살아갈 세대를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그들에 대한 체험기를 시인의 필체로 작성한다.

내가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촌스럽다”였다. 시가 너무 옛스럽다느니, 감각이 낡았다느니, 곧 사라질 거라는 서늘한 말까지 들었다. 한 선배는 대놓고 말했다. “이건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 그 말이 꽂혔다. 그래서 내가 한 일은, 지금 생각해도 웃기지만 ‘더 촌스럽게’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차피 비난받을 거면 끝까지 가보자는 오기였고, 동시에 기묘한 자신감이었다. 진짜 촌스러움이 극단까지 밀고 가면, 오히려 어떤 독자에겐 가장 진심으로 닿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
그 확신은 무명 시절의 침묵 속에서 점점 희미해졌다. 내 시는 아무도 읽지 않았고, 출판 제안은 오지 않았고, 반응은 없었다. 4년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다 제37회 김수영문학상(2018년)을 받았고, 운 좋게 첫 시집이 출간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시집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새롭다”였다.
촌스럽다더니, 새롭다니. 어떤 이는 “이게 시냐, 블로그 글이냐”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여성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라”고 충고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상처받았고, 책만 팔리고 읽히지는 않기를 진심으로 기도한 시절도 있었다. 비평도 리뷰도 바라지 않았다. 조용히 묻히고 싶었다.
하지만 신은 그런 기도는 잘 안 들어주신다. 이소호는 몰라도, '캣콜링'이라는 시집이 Z세대를 중심으로 점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지갑을 열어준 덕분에 내 시집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이유는 감동도 공감도 아니었다. “SNS에 올리기 좋은 문장이 많아서”였다. 어떤 독자는 말했다. “끔찍해서 좋았어요.” 처음엔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곧 이해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스친 문장이 굿즈가 되고, 마케팅팀의 손을 거쳐 스티커와 포스터가 되고, 독자의 손으로 넘어가 필사되고 북토크 포토존에 붙는다. 어느 날부턴가 Z세대가 내게 쏟아내기 시작한 질문들 속에서 나는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작가님은 루틴이 어떻게 되세요?” “향수 뭐 쓰셨어요?” “립 뭐 바르세요?” “이 파우치는 어디서 사셨어요?”
나는 시인인데요?
물론 시에 관련된 질문도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건 ‘장면’을 향한 궁금증이었다. 문장이 아니라 문장을 둘러싼 감각—그걸 입고, 들고, 냄새 맡고, 기록하는 나의 라이프스타일 전체가 궁금한 시대가 된 것이다.

요즘 ‘텍스트힙’이라는 말이 유행이라는데, 그 단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사실 책은, 작가는, 독자는 이미 ‘힙’한 존재였다. 중요한 건 책의 내용이 아니라 책을 들고 있는 나의 모습. 그 책과 잘 어울리는 배경 벽, 잔의 종류, 옷의 톤, 조명까지.
출판사는 영악했다. 나보다도 먼저 이 흐름을 눈치챘다. 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브랜드를 만든다. 문장 기반 굿즈 세트처럼 책이 출간되고, 한정판 엽서와 스티커, 포토카드, 향수, 만년필용 잉크까지 붙는다. 북토크는 아예 포토존이 되고, 책은 라이프스타일 전체의 일부가 된다.
놀랍게도, 나는 이 흐름에 찬성한다. 왜냐고? 나도 덕후였으니까. 누구보다 굿즈에 진심이었고, 마음에 드는 문장 스티커나 책갈피를 모으며 자랐다. 내가 쓴 문장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을 대변한다 싶은 문구가 있으면 다이어리 구석에 붙였다. 한 페이지를 꽉 채운 글보다, 마음을 콕 찌르는 한 줄이 훨씬 오래갔다.
어느 날, 한 독자가 내 문장을 키링에 새겨 선물해준 적이 있다. “‘쟤는 지옥에 갈 거야 우리를 슬프게 했으니까‘를 제일 좋아해서 만들었어요.” 그 문장을 몸 가까이에 두고 싶었다는 사실. 나는 그게 너무 감동이었다. 또 어떤 독자는 내 시를 형상화해 문신을 새겼다고 보여줬다. 내 글이 뭐라고, 한 사람의 몸에 평생을 남길까. 그날, 그 독자와 사진을 찍다가 처음으로 이런 말을 들었다. “작가님, 오늘 향기 너무 좋아요.” 그제야 깨달았다. 이 시대는 작가를 문장이 아닌, ‘장면’으로 기억한다는 걸.

그래서일까. '텍스트힙'이라는 말이 마냥 재밌지만은 않다. 조금 귀엽고, 조금 아련하고, 꽤 정겹다. 책은 이제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풍경이 되었고, 작가는 콘텐츠가 되었다. 요즘은 책보다 작가의 책상, 플레이리스트, 립 컬러, 파우치가 더 궁금한 시대다.
그래서 말하자면… 내 루틴은 무너지고→후회하고→다시 무너지는 중이다. 예쁜 커튼도 없고, 향기로운 디퓨저도 없고, 책상엔 물티슈 자국과 커피 얼룩이 주인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 없는 루틴조차 누군가에겐 재밌는 콘텐츠가 된다. 실패도 공유하는 시대니까.
얼마 전 트위터에서 ‘교환 독서’ 문화를 봤다. 서로 밑줄 친 책을 돌려 읽는다던데, 내 소설 '세 평짜리 숲'도 그렇게 돌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내가 공들여 쓴 ‘나는 아진을 끝끝내 들춰보지 않았다’는 깨끗했다. 대신 그냥 툭 던진 문장이었던 ‘할머니는 그릴 미래가 없으니 추억이라도 떠올린 것인데,’에 유독 별표와 코멘트가 쏟아져 있었다. 그때 확실히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장은 다르다. 그래서 텍스트힙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사람들의 진심이 흘러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젠, 작가보다 출판사를 더 사랑하는 독자도 많아졌다. 좋아하는 출판사의 신간이 나오면 바로 사고 굿즈를 모으고, 필사 인증샷을 올리고, 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위해 북클럽 회원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제는 출판사 팬덤의 시대다.
얼마 전 ‘문학과지성사’는 친환경 에디션을 중심으로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공간의 골조는 골판지로 만들었고, 벽면을 장식하던 파지는 관람 후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게 배치돼 있었다. 그곳은 서점이라기보다 하나의 감정 저장소 같았다. 책은 전시되었고, 굿즈는 팔렸고, 독자들은 인증샷을 찍으며 ‘오늘의 문장’을 해시태그로 남겼다.

그 모든 게 가벼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문장을 오래 붙잡고 싶은 진심, 자기 취향을 조용히 공유하려는 시도가 있다.
나도 거기에 기꺼이 발을 담근다. 포토존이든 립스틱이든 상관없다. 한 줄의 문장이 누군가의 방 한구석에 오래 붙어 있다면, 그걸로도 시는 충분히 살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남겨두고 싶다. 나는, 끝까지 촌스럽게 쓸 것이다. 누군가에게만은, 이 장면이 진심으로 읽히고 또 쓰이기 위해서.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2314460002846)
이소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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