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긴급회의…“농산물도 협상 포함”

김원.김기환.윤성민 2025. 7. 26.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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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세협상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를 일주일여 앞두고 터진 ‘2+2 통상협의’ 불발로 한국은 벼랑 끝에 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압박 강도를 높였다. 한국을 포함한 협상 대상국을 겨냥해 일본처럼 “돈을 내고 관세를 낮추라”고 했고, 시장 개방도 강조했다. 한·미 협상의 물꼬를 트려면 농산물 시장 개방 등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울 만한 확실한 ‘트로피(명분)’를 제시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준비제도(Fed) 본부를 방문해 “(일본처럼) 돈 내고 관세를 낮추는 것(buy it down)을 허용하겠다”며 “경제(시장) 개방은 일본이 낸 5500억 달러(약 760조원)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이상 기류가 흐르고 있는 한·미 관세 협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000억 달러 정도로 논의하고 있는 한국의 대미 투자를 더 확대하고, 농축산물 등 시장 개방 수준을 높이라는 압박이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조기 합의한 영국·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 등지는 농축산물을 포함한 시장 개방을 협상 리스트에 올렸다. 아직 협상 타결 전인 호주도 소고기 시장 문을 먼저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호주와 협상 소식을 알리며 “우리의 훌륭한 소고기를 거부하는 다른 나라도 (개방) 요구를 받은 상태”라며 “(거부하는) 나라들을 두고보겠다”고 적었다. 이와 관련, 한 외교소식통은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 농축산물을 어떻게 얼마나 수입할지 정확한 숫자를 제시하라는 요구도 있었다”고 전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쌀·소고기 시장에 대해 한국 정부가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자 미국 측이 불만을 표시하며 ‘2+2 통상협의’를 돌연 취소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흘러나온다. 또 다른 경제·통상 전문가는 “사실상 농축산물 시장 개방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의 성과를 홍보하는 전리품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실은 25일 오후 긴급 통상대책회의를 열고 처음으로 농산물 시장 확대 개방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연 브리핑에서 “협상 품목 아래에 농산물도 포함돼 있다”고 했다. 김 실장은 다만 협상 테이블에 오른 농산물 품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또 이날 브리핑 후 ‘축산물 포함’ 여부에 대해 본지 기자가 따로 문의했지만, 김 실장은 답하지 않았다.

한편, 트럼프는 25일(현지시간) 오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부분의 관세 협상은 다음 달 1일까지 끝낼 것”이라고 언급했다.


전리품 원하는 ‘소고집’ 트럼프…협상타결 5국 농축산 개방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만나고 있다. [사진 산업통상자원부]
정부는 일단 쌀 수입 확대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레드라인’(한계선)으로 꼽고 있다.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은 국내 농가는 물론 정치권까지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어 시장 일부를 개방하는 게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선 시장을 개방하더라도 미국산이 우려한 만큼 밀려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협상을 마친 일본만 해도 미국산 쌀과 자동차 수입을 확대하기로 했지만, 실제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란 관측이다. 쌀의 경우 수입 총량(연간 77만t)은 그대로 두고 미국산 비중만 늘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일본의 미국 쌀 수입 비중은 약 45%(35만t)였는데, 이번 합의에 따라 비중이 78%(60t)로 올라간다.

최근 미국산 쌀 거래 가격(t당 353달러)으로 단순 계산하면 일본의 미국산 쌀 수입액은 9550만 달러(약 1330억원)에서 1억6376만 달러(약 2300억원)로 늘어난다. 시장 개방 효과는 연간 1000억원 수준에 그치는 셈이다. 자동차·트럭 시장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기준 미국에서 일본으로 수입된 승용차는 1만6000대 수준에 불과하다. 기존 판매량이 워낙 적어 일본 내 자동차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은 사실상 미미하다는 게 중론이다.

일본이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자동차는 140만 대에 이른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이 국민 경제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을 시장을 개방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과시할 수 있는 5500억 달러 투자안을 제시해 협상에서 비교적 선방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도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를 홍보할 수 있는 제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일 관세협상 합의 내용 그래픽 이미지.
대미 투자 규모와 관련 한·미 간 간극도 크다. 정부는 미국과 협상에서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을 중심으로 1000억 달러 이상의 미국 내 투자 계획을 제시하는 걸 검토 중이다. 방위산업과 조선업 등 한·미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제조업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미국 내 인프라 건설 사업, 첨단 장비와 에너지 구매 확대 등이 대미 투자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미국 측은 4000억 달러 이상의 투자 약속을 요구하고 있다. 4대 그룹의 한 대관 담당 임원은 “그동안 짜낼 만큼 다 짜냈는데 더 해보라고 한다면 난감하다”며 “미국 투자가 늘어난다면 결국 국내 투자 여력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2+2 협의’ 취소에도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워싱턴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을 만나 협상을 이어갔다. 이날 한·미 산업장관 회담은 80분간 진행됐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실도 25일 오후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긴급 통상대책회의를 열고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회의 뒤 “러트닉 장관의 경우 뉴욕 개인 사저에서 만나기로 돼 있다”며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협상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원·김기환·윤성민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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