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포커스] 정후야, 우린 너의 타구 방향을 알고 있다

강우석 기자 2025. 7. 26.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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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속터지게하는 야구 ‘시프트’의 세계

한국 최고 교타자로 꼽히는 이정후(27·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요즘 큰 고민에 빠져 있다. 잘 맞았다고 생각한 타구조차 안타가 될 만한 코스에서 번번이 수비에 걸리고 있기 때문이다. 3월 타율 0.286, 4월 0.324 등 시즌 초반만 해도 MLB(미 프로야구) 2루타 전체 1위에 오르며 올스타 후보로까지 거론됐지만, 상대 팀들의 분석이 구체화된 5월에는 0.231로 떨어졌고, 지난달에는 월간 타율이 0.143까지 추락하며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 그의 부진은 이른바 ‘이정후 시프트’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좌타자인 이정후는 방망이를 몸 가까이 붙여 휘두르는 특유의 당겨 치기 타법을 주로 구사한다. 시속 160km에 달하는 빠른 공이라도 몸쪽이라면 능숙하게 받아치지만, 그 결과 타구가 오른쪽으로 쏠리는 경우가 많다. MLB 분석 사이트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이정후의 올 시즌 타구 방향은 오른쪽 58%, 중앙 15%, 왼쪽 27%다. 좌타 거포인 오타니 쇼헤이의 오른쪽 타구 비율(71%)보다는 낮지만, 같은 교타자로 분류되는 MLB 타격왕 출신 루이스 아라에스(45%)보다는 훨씬 높은 수치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이정후의 장타 대부분은 우측에 집중돼 있다. 2루타 20개 중 14개가 오른쪽에 떨어졌고, 홈런 6개와 3루타 8개는 모두 우측으로 향했다. 바깥쪽 공을 밀어 치기도 하지만 힘이 충분히 실리지 않아 땅볼이 되거나 장타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픽=이철원

이정후의 이러한 뚜렷한 타구 패턴은 빅리그 무대에선 손쉬운 공략 포인트가 된다. 상대 팀은 내야수들을 가능한 한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MLB는 2023년부터 야구 재미를 떨어트린다는 이유로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금지했지만 완전히 폐지한 것은 아니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 내야수 전원이 내야 흙 위에 서 있고, 2루를 기준으로 좌우에 각각 2명씩 배치돼야 한다는 기본 규정만 지키면 된다. 이 때문에 이정후를 상대로 3루수와 유격수를 2루 쪽으로 바짝 붙이거나, 외야수를 내야로 불러들이는 변형 시프트를 여전히 사용할 수 있다. 한국 프로야구 역시 2024시즌부터 이러한 MLB 규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시프트를 제한하고 있다.

이정후는 시프트를 뚫기 위해 3루 방향으로 기습 번트를 대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3루수가 전진 수비로 대응하면서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KBO리그에서 뛸 때도 시프트를 당한 경험이 많았지만, MLB는 상대 투수들의 구위와 구속이 훨씬 뛰어나 기존 타격 방식만으로는 극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올 시즌 타율은 0.246에 그치고 있다.

MLB에서는 이정후뿐만 아니라 수많은 강타자들이 ‘전용 시프트’의 희생양이 됐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바로 ‘테드 윌리엄스 시프트’다. MLB의 마지막 4할 타자인 테드 윌리엄스를 막기 위해 1940년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루 부드로 감독은 1루수와 2루수, 유격수를 1루와 2루 사이로 몰아넣고, 3루수를 유격수 자리로 이동시키는 극단적인 내야 시프트를 구사했다. 외야수들 또한 모두 우측으로 치우치게 배치해, 윌리엄스가 때리는 오른쪽 방향의 타구에 철저히 대비했다. 시프트의 시작은 1910~1920년대 MLB 강타자로 군림했던 사이 윌리엄스로 알려져 있다. 통산 251홈런을 친 그를 막기 위해 상대 팀들이 외야수들을 깊숙한 오른쪽으로 옮기는 전략을 썼다고 한다.

2014년에는 LA 다저스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연장 12회 말 1사 만루 상황에서 외야수 한 명까지 내야로 불러 1·2루 사이에 야수 4명을 두는 이른바 ‘4백 수비’를 펼쳤다. 한 점만 내줘도 끝내기 패배를 당하는 위기에서 당겨 치기에 능한 좌타자 세스 스미스를 잡기 위한 과감한 전략이었다. 결국 다저스는 1·2루 사이로 향하는 땅볼을 유도해 홈에서 아웃을 잡는 데 성공했다. 다저스는 시프트 제한이 시행된 올해에도 중견수 토미 에드먼을 내야로 불러들이는 변형 시프트를 시도해 병살타를 유도하기도 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선 2015년 KIA 김기태 감독이 KT와의 경기 9회에 폭투 상황을 대비해 3루수 이범호를 포수 뒤에 세우는 파격적인 시프트를 시도한 적이 있다. 비록 규정 위반으로 제지돼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지만, MLB닷컴 등 외신은 이를 두고 “혁명적인 수비”라고 비꼬았다.

☞시프트(shift)

야구에서 타자의 타구 방향 데이터를 활용, 내야수나 외야수를 보통 위치에서 벗어나게 배치해 수비 효율을 높이는 전략이다. 당겨치는 경향이 강한 타자의 경우 좌타자를 상대할 땐 우측, 우타자를 상대할 땐 좌측으로 수비 위치를 더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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