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자·인민이 균형자 없이 결합하면 '여론독재'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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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고전으로 읽는 민주주의’]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고대 아테네인들은 자유를 권력으로 이해했다. 지배하고 통치하는 권력을 가져야 자유롭다고 여겼다. 그래서 민회에 참석하고 행정관과 배심원을 번갈아 맡아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적용하는 일을 인민이 직접 했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인들의 자유는 데모크라시, 즉 ‘데모스(인민)’가 ‘크라시(통치)’하는 민주주의와 같은 말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나 민주주의를 그렇게 이해하지 않는다. 자유는 권리가 되었고, 권력은 인민이 아니라 적법하게 선출된 정부에 위임된다. 권력을 가진 자의 권리는 제한된다. 재산 형성 과정은 물론 이해 충돌 가능성을 두고 엄격한 심사를 받고 공익에 봉사하도록 선서하며 위반 시 모욕과 처벌을 받는다. 주기적으로 파면과 재신임에 대한 인민의 평결도 거치며, 권력은 나뉘고 견제됨으로써 남용을 막는다.
현대 민주주의는 ‘인민 권력론’이 아니라 ‘제한 정부론’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권리를 가진 인민은 자유롭고 권력을 가진 정부는 책임을 지는, 일종의 ‘균형 정부론’이 필요했는데 이 일에서 몽테스키외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현대 정부가 만인의 평등한 자유를 위해 잉태되었음을 알게 해주는 사상적 기원에 대해 알고 싶은가. 그러면 당신은 『법의 정신』을 읽어야 한다.
![1787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독립기념관에서 9개 주 대표들이 미국 헌법에 서명하는 모습. 미국 화가 하워드 챈들러 크리스티(1873~1952)가 1940년에 제작한 유화. 삼권 분립을 강조한 몽테스키외의 정치 철학은 미국의 독립 선언과 헌법 제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앙포토]](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8/joongangsunday/20250818160826386elll.jpg)
몽테스키외는 1689년에 태어났다. 로크의 『시민 정부론』이 발간된 해다. 로크는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목적이며, 그 목적을 상실한 정부는 전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몽테스키외 역시 자유를 정부론의 기초로 삼았다. 다만 로크의 경우 잘못된 정부를 ‘뒤엎는’ 혁명론에 집중했다면, 몽테스키외는 지속 가능하고 균형 잡힌 정부론을 ‘세우려’ 했다.
몽테스키외에 따르면 “만물은 자신들의 법을 갖고 있다.” 신에게도 신의 법이 있고 자연에도 지키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법칙이 있다. 인간 역시 불변의 법칙에 지배되지만, 놀랍게도 인간만이 신이 정하고 자연이 부과한 법을 “끊임없이 위반하고 스스로 정한 법마저 바꿔 댄다.”
인간만이 “지성과 감성”을 가졌기에 “창조주”를 잊고 “타인의 존재”를 잊고 “자기 자신조차” 자주 잊는다. 그렇기에 “철학자들은 도덕의 법으로 경고”해야 했고 “입법자들은 정치 관련법과 시민 관련법으로 의무를 부과”해야 했다. “법을 통해 자유를 실현해야 하는” 인간만이 정부를 만들어 스스로 통치하고 스스로 통치받는 존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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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에게 정부는 필요악이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최소화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보기에 정부는 인간의 본질에서 발원한, 가장 인간적인 산물이다. 이 점에서 몽테스키외는 로크의 ‘최소 정부론’보다 홉스의 ‘최대 정부론’에 가까운 듯 보인다. 하지만 홉스와도 아주 다르다.
자연 상태 속 홉스의 인간은 힘을 추구하고 정복하고 지배하는 존재다. 그 귀결은 내전이고 혼란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리바이어던 국가다. 몽테스키외는 다르게 생각한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강한 존재가 아니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의 나약함과 열등함을 자각”한다. 그리고 그 귀결은 ‘국가’가 아니라 ‘사회’다. 그런데 사회를 이루자마자 인간은 자신이 나약하다는 감정을 상실하고 만물을 정복하려 한다. 지배하고 장악하려는 욕망은 자연적 본성이 아니라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전제 위에서 몽테스키외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첫째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고 발전시킨 사회가 문제라고 본 점에서 문명 비판의 주제를 열었다. 이 길은 훗날 장 자크 루소가 더 발전시키게 될 것이었다.
둘째는 개인의 자유와 생명, 재산의 보루인 사회로 돌아가자는 로크의 길과는 달리, 좋은 사회를 위해서도 정부가 중요하다고 보는 길이다. ‘최대 사회와 최소 정부’의 짝이 아니라 ‘좋은 정부와 좋은 사회’의 짝을 발전시키려 한 이 길은 훗날 미국의 건국자들이 이어갔다. 1787년 미국의 “헌법제정회의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의 모든 논쟁은 몽테스키외 이론의 주해(注解)를 방불케” 했다고 프랑스 출신의 정치학자 베르나르 마넹은 말한다.
셋째는 정부의 문제를 나라마다 달리 발전시킨 다양한 사회적 조건 위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한 것에 있다. 각각의 사회가 가진 역사와 문화, 풍속은 정부의 형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발상은 훗날 알렉시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1835)에서 더 심화 발전됐다.
몽테스키외는 법을 소중히 여겼다. 법이 강제하지 않는 영역을 자유의 공간으로 보았던 로크와는 달리 자유는 좋은 법으로 실현된다고 몽테스키외는 보았다. 그래서 입법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쓸모없는 법은 법의 필요를 없앤다”라며 법을 함부로 만드는 것을 경계했다.
자유의 적은 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집중과 남용에 있다는 것도 몽테스키외가 강조한 주제다. 몽테스키외는 개인의 이익 추구나 야심, 권력욕을 나쁘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열정을 좋은 정부를 만들고 운영하는 활력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중요한 것은 누구라도 권력을 남용하려 할 경우 그것을 어렵게 하도록 다양한 욕구가 정부 안에서 서로 달리 대표되게 하는 데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남용하고…한계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을” 우리는 늘 경험한다. 그런 현실의 타개책을 ‘철인 정치’나 ‘선한 권력’에서 찾을 수 없다면 대안은 “권력이 권력을 제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덕분에 오늘날 누구나 존중하는 권력 분립과 견제와 균형이 정부론 안에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미 헌법 모든 논쟁은 몽테스키외 해석”
권력과 권력 사이만이 아니라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에도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과거 프랑스의 군주정에서는 귀족이 인민과 군주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했다. 영국과 같은 입헌 군주정에서는 귀족원과 평민원이 같은 역할을 했다. 이제는 그 역할을 귀족이 할 수 없는 바, 이를 대신할 근대적 대체물로 몽테스키외는 다양한 “중간 집단”과 “결사체”의 역할을 중시했다. ‘이익집단 다원주의’에 대한 최초의 발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법의 정신』
「 몽테스키외가 익명으로 검열을 피해 제네바에서 낸 책. 2년 만에 22쇄를 찍었 다. 6부 31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장(章)의 제목까지 나열하면 목차만 30쪽이고 본문은 우리말 번역서로 1200쪽에 이른다. 법 일반에 대한 논의(1권)에서 시작해, 공화정·군주정·전제정으로 나뉜 세 정체(政體)의 원리(2~3권)와 각각의 정체 원리에 따른 교육(4권)·입법(5~7권)·부패(8권)·안보(9~10권)의 문제는 물론이고, 권력 분립과 정부 구조(11권), 형벌의 부과(12권), 조세와 공공 수입(13권), 풍토와 풍속이 법에 미치는 영향(14~19권), 상업 정신(20~23권), 종교(24~26권), 상속(27~31권)에 이르기까지 한 나라의 정부를 이끌 사람이 알아두어야 할 것들을 이처럼 포괄적으로 다룬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빼고는 없다.
」
과거 인민이 직접 통치하던 소규모 도시 공화정 때와는 달리 현대 공화정은 대의 정부여야 한다는 것도 몽테스키외의 중요한 기여였다. 인민은 통치할 수 없다. 통치는 인민이 적법하게 선출한 대표에 맡겨야 한다. 인민의 탁월함은 통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표를 잘 뽑는데” 있다. 몽테스키외는 통치자와 인민이 대표나 매개, 균형자 없이 직접 결합하면 그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고 보았다. 그러면 인민도 통치자도 더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민주주의가 온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여론 독재’나 ‘팬덤 민주주의’에 대한 경고다. 권력은 책임의 사슬로 묶어야 하는데 인민을 권력자로 만들면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폭정이 온다.
몽테스키외는 그의 매우 긴 이름(Charles Louis Joseph de Secondat, Baron de la Brede et de Montesquieu)이 말해주듯, 전형적인 법복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법학은 물론 고전에서 신학문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22세에 보르도 고등법원의 판사가 되었으며, 27세에는 사망한 백부의 유언으로 재산과 작위는 물론 보르도 고등법원장이라는 관직까지 물려받았다. 이른 나이에 경력의 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인간과 정치, 사회를 분석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법원장 12년을 끝으로 관직을 팔아 돈을 마련한 뒤 파리로 떠났다. 관직 매매가 합법인 시대였다. 그 뒤 영국과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보고 연구하며 본격적인 저술가의 길을 걸었다.
『법의 정신』의 서문은 라파엘로의 그림 앞에서 기죽지 않고 “나도 화가다!”를 외친 코레조 이야기로 끝난다. 몽테스키외 역시 앞선 위대한 철학자들이 쓴 저작을 보면서 “감탄했지만, 결코 용기를 잃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몽테스키외에게 『법의 정신』은 “20년의 작업”이었다. 나중에는 백내장으로 눈이 급격히 나빠져 3명의 조수를 구해 구술로 집필을 완성해 냈다. 그때 그는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이제 나도 정치 철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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