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욘드 스테이지] 프로무대 데뷔하는 16세 발레리노 박윤재 K발레리노 전성시대다. ‘발레계 아이돌’ 전민철은 17일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주역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올해 세계 최고 권위의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서 우승해 한국 발레사를 다시 쓴 16세 소년 박윤재는 18일 중국 AEDC(아시아 엘리트 댄스 컴피티션) 갈라에서 첫 해외 초청 공연을 치렀다. 9월엔 미국 ABT 발레단 산하 JKO 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국내선 영상으로만 볼 수 있던 박윤재의 무대를 26~27일 성남아트센터 ‘발레스타즈’에서 보게 됐다. 사실상 국내 프로무대 데뷔다. 테크닉이 화려하기로 유명한 ‘돈키호테’ 결혼식 그랑파드되를 선보인다.
16세 소년 발레리노 박윤재. 26~27일 성남아트센터 ‘발레스타즈’ 공연 이후 싱가포르·일본 공연까지 예정돼 있다. 김정훈 기자
21일 만난 소년은 조금 지쳐 있었다. 콩쿠르도 생글생글 웃으며 소화하는 ‘무대체질’이지만, 중국에선 공연 전 잠을 못 잘 만큼 긴장했단다. “해외에 저를 아는 분이 많을 줄 몰랐는데 공연 전부터 호텔에서 같이 사진 찍자는 사람들이 몰려왔어요. 혹시 실수하면 주최 측에 폐를 끼칠까 걱정도 됐죠. 하지만 무대에선 제가 제일 잘났다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웃으면서 했어요. 웃어야 발레도 잘되거든요.”
21일 오후 발레리노 박윤재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인터뷰 했다. 김정훈 기자. 2025.07.21.
중국에서도 ‘돈키호테’ 그랑파드되를 했단다. 16세 소년·소녀의 파드되라니, 흔한 일이 아니다. “중3때 학교예술제에서 해본 적 있는데, 그때 리프트를 좀 변형했었거든요. 이번에 처음 제대로 도전해본 것이라 너무 재밌었어요. 주인공 바질은 요즘 말하는 ‘테토남’ 캐릭터인데, 어린 나이의 제가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표현해야 해서 어렵긴 하죠. 중국에선 잔 실수가 많았는데, 파트너랑 ‘우리가 성남서 얼마나 잘하려고 이렇게 실수를 했냐’는 얘길 했어요.(웃음)”
18일 중국 상하이 AEDC 갈라에서 돈키호테 결혼식 그랑파드되를 추는 박윤재. [사진 SNS 캡처]
묵직하고도 유연한 흑표범 한 마리. 로잔 콩쿠르 파이널 중 하나였던 컨템포러리 무대 ‘레인’에서 받은 인상이다. 아기 흑표범이 생전 처음 맞는 비에 놀라 비 사이로 움직이는 모습 아닐까 싶게 음악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움직임이 그루브 넘쳤는데, 알고 보니 본능이 아니라 피 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인터뷰 날도 여독에 몸살 기운까지 있었지만 개인 레슨을 받고 올 정도로 열심이다. “동물적 감각으로 움직이라고 배워서 표범이나 사자 같은 동물을 상상했던 게 맞아요. 시에서 출발한 작품인데, 비에 담긴 감정을 느끼는 시였어요. 호기심으로 탐색하는 느낌을 표정이 아니라 몸으로만 표현해야 해서 어려웠죠. 사실 제가 몸치라서, 다른 장르로 가면 몸이 굳더라고요.”
21일 오후 발레리노 박윤재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인터뷰 했다. 김정훈 기자. 2025.07.21.
그렇다면 발레를 위해 태어난 몸이 틀림없다. 소년의 시그니처는 ‘말벅지’다. 타고난 혈통이라는데, 발레리노의 세계에서 웬만해선 말벅지의 탄력을 이길 수 없다. “아무것도 안 해도 허벅지가 두꺼운 집안인데, 또래보다 키가 커서 무거워 보이지 않으려고 열심히 뛰다 보니 근육이 더 커졌어요. 전엔 제 다리가 싫고 민철 형처럼 예쁜 다리가 부러웠는데, 로잔 선생님들이 제 다리를 좋아해 주셔서 제 생각도 바뀌었죠. 제 다리도 매력적이라 생각합니다.”
21일 오후 발레리노 박윤재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인터뷰 했다. 김정훈 기자. 2025.07.21.
네 살 위 누나가 먼저 발레를 시작한 덕에 5살 때부터 발레를 놀이처럼 익혔다. 입시에 지쳐 발레를 접었다는 누나에 대해 “누나가 시행착오를 해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어른스럽게 말하지만, 그에게도 발레는 “애증의 관계”다. 아이돌이 될까 고민한 적도 있다고. “연습실에선 뼈를 깎을 만큼 힘들거든요. 너무 지쳐 있던 중3때 학교 앞에서 캐스팅이 됐고, 고1때도 기회가 왔죠. 그런데 로잔 우승을 하는 바람에 당분간 한눈 못 팔게 됐어요. 좀 아깝기도 해요.(웃음)”
발레 무용수에겐 밤낮없이 연습실을 지키며 ‘오직 발레’를 외치는 이미지가 있지만, 소년은 ‘젠지세대’답게 쿨했다. 발레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고, 힘들면 한 달 쯤 발레를 쉬기도 한단다. “안 풀릴 땐 오히려 초기화 시키면 잘 되는 스타일”이라서다. 세계 유수의 발레단에서 받은 러브콜 중 ABT를 택한 것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큰 이유다. “뉴욕에서 춤출 생각을 하면 너무 좋아요. 1년에 두 번 링컨센터에서 공연을 한다는데, ABT 무용수들이 사용하는 홀에서 연습하는 것도 설레고요. 공연을 보면 ABT 무용수들이 가장 활기차고 행복해 보이는데, 저도 무대만 서면 소름 끼치게 행복하거든요.”
발레리노로서 로망은 ‘지젤’의 나쁜 남자 알브레히트. “나쁜 놈 맞지만” 비극적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해보고 싶단다. “(알브레히트의)죽을 때까지 춤추는 벌도 마음에 든다”니, 박윤재가 뛰어오를 고탄력 앙트르샤 시스(공중에서 발을 빠르게 교차시키는 고난도 연속 점프)가 벌써 눈에 선하다.
21일 오후 발레리노 박윤재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중앙SUNDAY가 인터뷰 했다. 김정훈 기자. 2025.07.21.